우리말에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일이 잘 되어가다가 결국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결과나 헛수고가 됨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럼 왜 잘 되어 가던 일이 아무 소득 없는 결과를 낳았을 때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때는 조선 선조 시대, 임진왜란이 장기화되면서 나라는 온통 피폐해지고,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왕조차도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려워져 피난 생활을 전전하던 때이다. 왕은 피난길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신하들을 시켜 음식을 청하였는데, 전 국토가 황폐해져 먹을 것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던 터였다. 그래도 신하들은 임금에게 뭐라도 바쳐야 했기에 바닷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구워 임금에게 진상하였는데, 임금은 그 생선을 먹고 맛이 너무 좋아 신하들에게 이름을 물었다고 한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임금에게 ‘목어’ 혹은 ‘묵’이라 한다고 대답하였더니, 임금은 그 이름이 이 생선의 맛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친히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 생선을 ‘은어’로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고, 이순신 장군 및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장들의 활약과 함께 임진왜란도 상처뿐인 긴 전란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라는 다시 안정을 찾게 되고, 선조는 어느 날 문득 피난 때 먹었던 ‘은어’의 맛이 그리워져 신하들에게 은어를 대령할 것을 명하게 된다. 하지만 더 좋은 상품을, 더 좋은 요리사가, 더 좋은 재료와 방법으로 요리해 낸 은어는, 선조의 입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데, 왕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은어뿐만이 아니었다. 왕은 이런 특색 없는 생선에 ‘은어’라는 이름이 아깝다며 도로 묵이라고 하라는 명을 함께 내린다. 이리하여 ‘은어’로 신분 상승을 이뤘던 ‘묵’은 다시 ‘묵’으로 강등(?)되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도로묵’은 후에 모음조화를 통해 ‘도루묵’이라는 단어로 바뀌게 되었고, ‘묵’이 겪은 이야기와 비슷한 경우를 겪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피난길에 먹었던 ‘은어’도, 안정기에 먹었던 ‘묵’도 결국 같은 생선이건만, 그 맛을 결정한 것은 ‘은어’인지 ‘묵’인지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것을 맛보는 사람의 상태였던 것이다. 나의 현 처지를 보며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그 처지를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나 마음 자세가 그때와 같은지,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오늘은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의 유래를 함께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표현, 우리 조상들의 삶의 냄새나 지혜가 묻어 있는 표현들 찾아서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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