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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함께 백야나라로 떠나는 여행] 나는 지금 러시아로 간다 9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12-23 18:33:17
  • 수정 2010-01-07 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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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9호, 12월24일
제니퍼가 쭈뼛쭈뼛 그들에게 다가선다. 아래층 리셉션에서 받은 종이쪽지를 내밀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묻는다.

"여기가 리셉션이야? 여기서 우리 방 키 받는 거 맞아?"

그녀는 '맞다' 면서 방키를 우리 앞에 툭 던진다. 떨어진 무언가를 집기위해 엎드리는 그녀의 허옇고 큰 가슴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출렁거린다. 앞 단추가 채워진 것보다 안 채워진 게 많을 정도로 가슴의 반은 노상 드러내놓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문득, 이 리셉션에서의 서비스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인다.

큰 가방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 비쩍 마른 남자의 눈빛도 왠지 심상치 않다.

우리는 큭큭 튀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방으로 들어가다가 제니퍼가 한 소리 한다.
"언냐, 저 여자 가슴이 내 머리통 만하다. 밖으로 툭 튀나올까 억수로 겁났다 아이가."

모스크바의 밤거리
가방을 던져놓고 길을 나선다.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모스크바의 유명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Арбат)를 가기위해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아르바트스까야 역에서 하차해야 하는데, 우리가 움직이는 그 시간이 딱 퇴근시간인지라 지하철 안은 그야말로 인간압축기였다. 두 서너 정거장만 가면 될 터인지라 우리는 문간에 서서 수다를 떤다. 다음 정류장 문이 열리더니 슈퍼헤비급 여자가 올라탄다. 문간에 있는 우리-외소한 동양여자 둘-를 가볍게 쓰윽 밀어 넣자, 우리는 으악 비명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안으로 자꾸 밀려들어간다.

잠시 후 그녀가 내려야 하나보다. 그녀가 다시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문 쪽으로 밀고 나간다. 우리는 엄마야, 살려줘! 하며 비명을 질러보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결국 전철 밖으로까지 우릴 밀어낸 그녀는 히죽 웃으며 유유히 사라진다. 전철 안에 있던 모스바인들이 우리 둘을 보더니 키득키득 웃는다.

 알지도 못하는 전철역에 내려 두리번 거리다 다시 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닿아 밖으로 나가니 별천지다. 정말 아름다운 거리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의 실력은 홍콩필 수석바이올리니스트 이상 갈지 싶다. 너무도 아름다운 연주인지라 넋을 잃고 듣다가 감상료로 동전 두어 닢을 바이올린 상자에 넣어준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그들의 표정은 화난 듯 무섭고, 감사를 표하는 우리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연주만을 한다. 다시 불쾌한 기분이 스믈스믈 기어나오는 걸 억누르고 예술의 거리를 걷는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부터, 모스크바가 부서져라 두드리고 깨부수는 락스룹, 화가, 만화가, 조각가 등 온각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그들의 혼과 열정과 풀어낸다.

거리 끝으로 백설공주 성 같이 아름다운 성이 보인다. 꽤 긴 거리지만 혹시 성당일까 싶어 끝까지 걸어가 육중한 문을 삐죽이 열고 들어서려다 말고 뭔가가 이상해 알아보니 그곳이 외무성이란다. 정말 멋진 건물이고 외무성이다.

위험할 것만 같은 이 모스크바의 밤은 서울의 대학로와 비슷한지라 제니퍼와 나는 두려움으로 부터의 해방감에 취해 생맥주를 쭉쭉 들이키며 밤이 으슥해지도록 수다를 늘어놓는다.

 

밤이 매우 깊어, 우린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전철을 탄다. 올 때와는 달리 전철은 텅 비어있고, 50년대에나 있었을 법 한 낡은 전철이 유난히도 철커덩 철커덩 쇳소리를 내며 어두운 도시를 쓸쓸하게 달린다.

제니퍼가 많이 힘들었는지 꾸벅꾸벅 존다. 작년, 포르투갈을 여행 할 때 나를 따라 강행군하느라 몸살에 걸려 폴투갈 전차 안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후배 녀석의 모습이 그녀 얼굴 위로 오버랩된다. 허긴, 여행가 한비야의 이름 붙여 권비야라 불리는 나를 따라 하루종일 걷다보면 힘이 부칠만도 하다. 병나지 말고, 홍콩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해야 할텐데... 오늘은 푹 쉬게 하고, 내일은 쉬엄쉬엄 다녀야겠다. 조금만 참거라 제니퍼.

 

/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글&사진 로사 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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