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2호, 8월26일] 스핑크스와 나폴레옹에 대한 전설 멀리서 세 피라미드를 조망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물을 마시며 잠..
[제92호, 8월26일]
스핑크스와 나폴레옹에 대한 전설
멀리서 세 피라미드를 조망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물을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면서 또 하나의 신비를 향해 이동했다. 피라미드 뒤쪽으로 쭉 뻗은 길 위로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이 오밀조밀해 보일 만큼 그 자태는 웅장하다.
파라오의 머리와 사자의 몸 형상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과거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우뚝 솟아 있으면 더 강해 보였을 스핑크스 코에 대해 여행 가이드 인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점령 당시에 스핑크스의 코를 과녁으로 삼아 사격을 해서 코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도인 나폴레옹에게 스핑크스는 한 낮 우상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서 부하들을 시켜 사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까? 여행을 다녀와서 자료를 찾아본 바에 따르면, 두려움의 대상인 스핑크스 근처에 다가서지도 못하는 이집트인들을 위해 세임 엘 다르(Saim El Dahr)라는 사람이 코를 떨어뜨렸다는 설도 있다. 이 설이 신빙성은 있겠지만 스핑크스 코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 하다. '수수께끼'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그러나 스핑크스 코가 왜 떨어졌는지에 상관없이 떨어진 코와 그 턱수염은 현재 대영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스핑크스는 '교살자'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며 원래 이집트 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의미로 불려졌다고 한다. 이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처럼 단을 쌓아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서 만들었다. 전체가 하나의 석회암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주변을 골짜기 같이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스핑크스는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변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기원전 1400년경 투트모세 4세가 왕자시절, 사냥 후 지쳐서 잠깐 잠든 새 꿈을 꾸었는데 스핑크스가 '숨 막히는 모래에서 나를 꺼내주면 왕이 되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 모래 제거작업을 통해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스핑크스 말대로 왕이 된 투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의 두 발 사이에 이 꿈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카이로의 한국식당
이집트의 날씨는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덥다. 사막 한 가운데 있으면 피부는 빠삭빠삭 마른다. 땀은 나자마자 말랐다가 말랐다 싶으면 다시 줄줄 나온다. 피부에는 말라붙은 흰 소금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잘못 스치면 까슬까슬하고 따갑기까지 하다. 게다가 모래바람까지 불어오면 모래가 다시 소금 위에 엉겨 붙어 한 꺼풀 뒤집어쓴다. 어디 이게 사람 사는 덴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 싶어서인지 가이드는 묻지도 않고 카이로에서 가장 맛있게 하는 집이라면서 한식당 '하나'로 우리를 안내 했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이, 일단 우리는 여행객이고 어디서 어떻게 돈이 빠져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절약에 또 절약을 해야 한다. 해외에 있는 한국식당들이 어디 여행객들이 만만하게 드나들 만한 곳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동안 몇 나라를 다녀 봤지만 홍콩에 있는 한국식당들 만큼 한국음식을 맛나게 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고 값은 홍콩만큼이나 비쌌다.
가이드는 냉면을 시켜 먹고, 서진이는 짜장면, 나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미역죽을 시켜 먹었는데, 홍콩에서 길들여진 탓인지 그곳에서 직접 재배해 만든다는 김치나 밑반찬, 기타 음식 맛이 영 입맛에 맞지 않아 반도 안 먹고 남겼다. 갑자기 피라미드 앞에 있던 캔터키 후라이드치킨 집이 생각이 났다. 그곳에 갔더라면 맛있고 저렴하게 한 끼를 가뿐히 해결하고 남았을 텐데...
이집트에는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한국식당이 7개라고 한다. 나는 외국에 있는 한국식당 이름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데 카이로에 있는 한국식당들의 이름은 이렇다.
홍콩에서 간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게 들리나 한국식당 이름치고는 의아스러운 '구룡관', 현 이집트 한인회장이 운영하고 있다는 '산마리노', 이 역시 의아스럽긴 마찬가지다. 왜 산마리노가 이집트에 있지? 현지 이집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 '아몬' 그리고 식당 이름하고는 좀 거리가 먼 듯한 '하나', 아! 그곳에도 '가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다지 특이하지는 않았던 이름 '청솔'과 '부일갈비'도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하나'와 우리가 지금 묵고 있는 뉴마디의 '산마리노'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감히 홍콩의 한국 식당들과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소년왕 투탕카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감흥을 그대로 안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1897년에 만들기 시작해 1901년에 완성된 이 박물관은 30개 왕조의 이집트 역사를 담고 있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작은 연못을 하나 만나게 된다. 연못에는 파피루스와 연꽃이 심어져 있는데 각각 이집트의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상징하는 식물을 심어놓은 것이다. 비록 자그마한 시도이지만 지역간의 화합을 이루려는 그 순수한 의도가 사려 깊게 느껴진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바로 투탕카멘의 유물들과 왕들의 미라.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한 투탕카멘. 사인조차 분명하지 않다지만,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만으로도 그의 영생은 현존했을 때보다 더 큰 호사를 누리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례를 관장하는 아누비스의 입상이 묘 앞을 지키고 있다. '땅'을 상징하는 검은 피부를 가진 그를 지나, 발걸음을 옮기면 죽은 투탕카멘을 미라로 만들기 위한 과정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펼쳐진다.
넓은 장례용 침대, 내장들을 꺼내기 위한 도구, 그것을 따로 담아 보관하는 대리석 단지, 미라를 담는 관, 관을 넣는 커다란 가마가 있다. 미라를 만드는 데에는 72∼75일 정도가 걸린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투탕카멘은 재위기간도 짧아서 아홉 살에 즉위해 열여덟 살에 사망했다. 별 볼일 없이 일찍 죽은 왕이라 무덤도 초라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다른 파라오의 무덤공사를 하느라 파낸 흙더미에 묻힐 정도였을까. 그 바람에 투탕카멘은 도굴을 면했고, 엄청난 부장품을 쏟아내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됐다. 가장 별 볼일 없던 왕의 가장 화려한 부활, 이게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글 : 로사> rosa@weeklyhk.com
계속....,>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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