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부당하는 에드나
지금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메이드 '에드나'는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카울룬통 갑부 할머니네 2층 저택으로 가서 하..
거부당하는 에드나
지금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메이드 '에드나'는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카울룬통 갑부 할머니네 2층 저택으로 가서 하루 종일 위 아래층을 오르내리며 청소하는 '로이다'의 후임이다. 에드나는 홍콩에 와 있는 대부분의 필리피노들처럼 키가 작고 얼굴은 검은데다 넓고 입술은 꽤 굵었으며 뚱뚱하기 까지 했다. 우리가 보기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그녀의 우직한 성격과 열심인 모습에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지만 서진이와 진호에게 있어서 에드나는 매우 기분 나쁜 존재였다.
우리 아이들은 에드나가 우리집에 옴으로 로이다가 직장을 잃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이런 저런 많고 많은 이유 때문에 로이다가 우리집에 있을 수 없어 필리핀으로부터 에드나를 오게 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질 않았다. 나와 남편이 없어지기만 하면 진호는 눈을 하얗게 흘기며 빨리 돌아가라고, 그래야 로이다가 올수 있다고 소리를 쳤다. 서진이야 돌아가는 속 사정을 훤히 알고 있으니 그게 아니란 걸 알지만 진호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안티를 구박해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그냥 내버려 뒀다. 대리만족을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안티가 실수라도 하면 미주알고주알 내게 다 일러바쳤다. 에드나에게 있어서 구박하는 진호보다 서진이가 훨씬 밉살스러운 존재였으리라. 아이들이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메이드 바꾼일을 후회하곤 했다. 우리 아이들에겐 그마저도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몇 개월이 흘렀다. 에드나는 진호와 서진이로부터 설움을 삭히고, 애들은 로이다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며 서로에게 억지로 적응을 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로이다가 나타나 공든 탑이 우르루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에드나는 아이들 뒤나 따라다니며 땀흘리면 땀 닦아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주며 보호자 역할을 했지만, 로이다는 아이들보다 더 신나게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있는 대로 up 시켜 놔 우리 아이들은 로이다와 놀면 바짝 오른 흥분상태가 도대체 가라앉을 줄 몰랐다.
로이다를 돌려보낸 후로도 우리 아이들은 계속 흥분된 상태로 소리를 지르고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모든 걸 뒤집어 놨다. 그러지 말라고 좋은 소리로 몇 번 타일러도 소용이 없어 몽둥이를 들고 설치니 두 아이는 입을 여든 댓 발은 내밀고 조용해 졌다.
급기야 남편으로부터 나도 있는 대로 핀잔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이다를 들이면 어떻게 하냐고, 모든게 물거품이 됐지 않느냐고... 그동안 잊혀졌던 로이다에 대한 부글거리는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래 그거였어. 내가 만일 그런 로이다와 같이 살다간 혈압으로 열 두 번도 더 쓰러질 거야... 잘 했어 잘 한거야...'
다음날부터 에드나에 대한 진호의 구박은 다시 시작이 됐고, 나와 남편이 설득도 해보고 우격다짐을 받아놓기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에드나를 완강히 거부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사내결혼과 강퇴
에드나는 결혼해 돌박이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나도 한 때 서진이를 서울에 떨어뜨려놓고 키워본 경험이 있어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남는다. 우리는 가끔 맥도널드에 앉아 아이들 얘기에 교육얘기, 집안얘기까지 나누곤 한다. 우리 에드나는 아들의 '아'자만 나와도 벌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아들 얘길하면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대는 통에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필리핀 풍습으로는 다소 늦은 29세에 결혼한 에드나에게 남편을 어떻게 만났고, 남편은 지금 무
얼하며 사는지 물었다. 아이얘기 나오기가 무섭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는 남편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발그레 해진다. 몹시 쑥스러워하며 '사내결혼'이라고, 사내에서 눈이맞아 결국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택시 비슷한 걸 몰고 있다고. 우리나라도 한 때 사내결혼을 꺼리던 시대가 있었는데 필리핀도 그렇구나 싶어 대체 무슨 회사를 같이 다녔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정유소'였다. 나는 막 웃음이 나는걸 간신히 참았다. 아니 무슨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아닌 정유소에서 둘이 눈 맞아 결혼한다고 눈총줘가며 내쫓나 내쫓길...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에드나는 정유소에 남아 계속해서 카운터 보는 일을 했고, 남편은 리어커 같은 것을 개조해 만든 택시를 운전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에드나의 친척 중 한 명은 홍콩에서 메이드 생활 4년을 하면서 집도 짓고 아이 교육비도 어느 정도 마련해 금의환향하여 친지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고, 그래서 자기도 은행으로부터 거금을 빌어 에이전트에 등록을 한 후 바로 우리 집에 계약이 되어 왔다고....
냉장고에 왠 그릇이
일전에도 한 번 얘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에드나는 깜깜한 시골에서 올라왔다. 우리집에 와서 도대체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젼트에서 모든 교육을 철저히 시켜놨다고 하여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에드나가 온 다음날, 그릇들이 없어져 찾아보니 이것들이 냉장고에 들어앉아 있었다. 아, 그 황당함이라니.
에드나는 냉장고를 처음 봤댄다. 그래서 물었다. 그러면 우리 집에 있는 것 중 처음 본거 다 얘기해 보라고...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자렌지, 가스렌지, 정수기, 수세식 화장실, 초인종, 이런저런 세제들, 연필 깎기, 노트북, 헤어드라이기 등등...
에드나는 끝없이 나열했다. 나는 에이전트에 화가났다. 모든걸 다 교육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체 무엇을 교육했다는 것인가? 자긴 에이전트로부터 교육받은 건 없고, 등록하고 서류내고 기다린 것밖엔 없다고. 에이전트에 찾아가 사기 당했다며 항의하도 하고 싶었지만 에드나의 얼굴이 뭐가 되겠나 싶어 꾹 참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중 에이전트를 통해 메이드를 계약할 때 모든 것을 다 믿지는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로이다도 몇 차례의 메이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라고 하여 데리고 왔는데 슈퍼마켓에서 일한 것이 전부였고, 에이전트로부터 과거에 메이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하라는 교육만 철저히 받았다고....
다른 메이드들은 속옷 팬티까지 빳빳하게 달여 고급상점 상품 진열해 놓은 것처럼 개켜놓는다고 하는데 에드나는 다 마르지도 않은 옷들을 둘둘 말아 집어 넣어놓고, 검은옷 흰옷 구분 없이 다 집어넣어 옷들은 다 비슷한 색들이 되어갔다. 모직으로 된 옷들은 빡빡한 갑옷으로 제다 변해 버렸고 아이들 교복과 남편 와이셔츠는 구깃구깃한 채 걸려져 있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처음부터 가르쳤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 또 은근히 한 성질 하는 내가, 입 벌리면 술술 나오는 영어도 아닌 상황에서 몇 달을 그렇게 붙들고 가르친다는 건 보통의 인내심을 요하는 게 아니었다. 여하튼 나도 그녀도 열심히 했다. 이젠 시원하고 얼큰한 김치찌개도 끓일 줄 알고, 청국장도 삼삼하게 끓여낸다. 애호박만 보면 호박전이 나오고, 닭 한 마리 사다주면 삼계탕도 그럴 듯 하게 고아낸다. 내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에 스넥, 음료 챙겨 학교 보낼 줄도 알고,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적당히 맞춰주고 다스릴 줄도 아는 것 같다. 에드나에게 가장 큰 장점은 꾸준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땀을 비질비질 흘려가며 일을 하고, 손 마디가 갈려져 피가 날 지경이 돼도 고무장갑 안끼고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아이들 학교 다 보내고 시간이 남을 만도 한데 낮잠한번 자지 않고 하루종일 일을 한다. 나도 우리집에 그렇게 할 일이 많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다. 시간 내서 책도 읽고 신문도 읽어가며 자신을 개발하라고, 자신을 개발하는 일은 무엇보다 자녀교육에 필수라고 충고를 해도 그녀는 그럴 시간이 없다며 강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엊그제 2박 3일에 걸쳐 어떤 교육을 다녀왔다. 그곳에서는 우리에게 "사랑은 결심"이라는 문구를 세뇌시켜 놨다. 배우자와의 사랑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결심'이 필요하다.
나는 메이드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마음을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을 해 줄 것이며, 내가 내 주위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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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메이드 별곡"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메이드별곡 35회로 이제 그 막을 내립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이야기들을 들고 다시 독자 분들과 만날 것을 약속드립니다. "메이드별곡"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끝.
“권윤희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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