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13편(폴리와 버티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6-07 12:40:04
기사수정
  • [제177호, 6월8일] 보고싶은 놈... 폴리   그 다음에 키우게 된 놈은 "폴리"였습니다.  이놈은 시내에 살고 ..
[제177호, 6월8일]

보고싶은 놈... 폴리
  그 다음에 키우게 된 놈은 "폴리"였습니다.  이놈은 시내에 살고 있던 어느 사람이 키우던 강아지로 IMF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키우기가 힘들다고 여동생을 통해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온 놈이었습니다.  이놈의 혈통은 세퍼드입니다.  독일 케쉬타포들이 수색할 때 앞장서서 사람들을 찾아내는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보셨지요?  바로 그 놈입니다.

  이놈은 얼마나 빨리 크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순식간에 어른 개가 되었는데 덩치가 얼마나 큰지 송아지만 했습니다.  그런데 혈통은 좋지만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아서 덩치만 컸지 강아지처럼 착하고 순한 놈이었습니다.  가끔씩 아내가 밥을 가져다주면 자기 딴에는 좋다고 앞발을 훌쩍 들고 아내에게 안기려 하는데 조그만 놈이면 귀엽다고 안아주겠지만 덩치가 송아지만한 놈이 안긴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고! 무거워! 여보!... 도와줘요..."
  아내는 비명을 지르면서 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만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불감당이었습니다.

  덩치가 크다보니 목에 묶는 줄도 점점 굵어져 갔습니다.  웬만한 줄은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는데 가끔 줄이 끊기면 좋다고 마당을 미친 듯이 뛰어 다니면서 난리를 치는데 그렇다고 밖으로 도망은 가지 않았고, 자기 집 근처에 앉아 "폴리"하고 부르면 몇 번 꽁무니를 빼다가 못이긴 척 하면서 주인에게로 다가옵니다.  바보 같은 놈.  나 같으면 저 멀리 도망가겠다.  매일 목에 줄을 묶어두는 주인이 뭐 좋다고...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땅바닥에 굵은 쇠말뚝을 깊게 박아서 줄을 매 놓았는데 어떨 때는 그것조차 견디지 못하고 빠져서 몇 번 다시 박은 기억도 납니다.

  우리는 주인인데다가 폴리의 성질이 착하고 강아지 같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 집에 처음 온 사람에게 폴리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우선 처음 보기에 덩치가 송아지만하고 귀가 수직선으로 서 있고, 얼굴이 위협적으로 보이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지는 이유는 폴리가 짖을 때의 소리입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짖는 소리가 스캔스픽 우퍼보다 더 웅장하고 확장성이 굉장해서 지축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컹! 컹!"
  그러니 폴리가 '반가워요'라는 뜻으로 짖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고함을 지릅니다.
  "새댁! 와서 개 좀 잡아 도고! 아이구 무섭다!"
  그런데 사실 폴리는 덩치만 송아지만 했지 알맹이는 강아지인데 말예요.  가끔 우체부가 와서 부탁을 합니다.  
  "아저씨! 저 개 잘 묶어 놓으세요.  겁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오려다가 폴리를 보고는 줄행랑을 치고 맙니다.  그리고 전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새댁... 개 좀 꼭꼭 묶어놔! 개가 너무 무서워서..."
  아내와 저도 폴리 때문에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묶은 줄이라도 끊고 뛰쳐나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면 어쩔까하는 걱정 때문에 매일아침마다 목의 줄이 잘 묶여져 있는지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팔아 치워야 하나?... 잡아먹어야 하나?..."
  거의 매일 갈등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언제 보아도 '폴리'는 우리에게 착한 식구였습니다.
  비가 와서 땅바닥이 질펀한 날 반갑다고 우리 품에 안기려고 그 큰 덩치를 사정없이 우리 가슴에 던질 때를 빼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더 이상 우리에게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토사구팽을 하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개장수 아저씨에게 18만원을 받고 이별을 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가끔씩 "폴리" 생각이 나고 그 큰 덩치로 우리에게 안기려고 흙이 잔뜩 묻은 발을 하늘 높이 올리며 몸을 던져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폴리... 보고 싶은 놈..."


버티기야... 미안하다
  그 다음에 키운 놈이 "버티기"였습니다.  이놈은 불독과 보통개의 잡종으로 우리 집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분이 기르고 있던 어미가 낳은 새끼 2마리 중 한 마리였습니다.  어느 저녁에 강아지를 가져가라고 하기에 아내와 같이 가서 데리고 온 놈인데 이름을 "버티기"라고 지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강아지였지만 덩치가 있어 무거운 이놈을 제가 양팔로 안고 왔습니다.  왜냐하면 어미가 있는 집에서 도통 나오려고 하지를 않아서 억지로 안고 데리고 왔는데 집으로 와서 마당 입구에 내려놓으니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더라구요.  엉덩이를 툭툭 발로 차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 어서 집으로 가자... 하고 달래 보아도 시골 나이 많은 옹고집 할아버지마냥 버티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아서 이름을 버티기로 짓게 된 것입니다.

  이놈이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난 뒤 여러 번 저에게 혼이 났었습니다.  이놈이 글쎄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낑낑대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골의 한밤중은 조용함의 극치를 이룹니다.  그 조용함이 얼마나 큰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데 이놈이 밤새 낑낑거리고 있으니 그 소음의 크기가 얼마인지 도시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야 전혀 이해를 못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몇 차례 제가 밖으로 나가서 혼줄을 내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어미에게서 떨어진 새끼의 입장을 생각하니 한편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다음날에는 아내더러 버티기를 어미에게 데리고 가서 마음의 위안을 받아오라고 시키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실랑이를 하면서 점점 괜찮아져 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동네 몇몇 사람들과 새벽 5시에 만나서 뒷동산으로 등산을 갔다 오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는데 버티기를 그때마다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새벽마다 등산을 하니까 좋은 점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며칠간 정신없이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새벽 5시가 되면 아내와 저는 일어나는데 그때 버티기는 이미 눈치를 채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목의 줄을 풀어 주면 좋다고 시속 300km의 속도로 마당 구석구석을 뛰어 다닙니다.  그리고 벌써 우리부부가 나가기도 전에 등산 회원들이 모이는 장소인 언덕 밑 창고 앞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창고에는 이미 도착한 이웃집 아저씨가 따뜻한 녹차를 끓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창고에 모인 사람들은 따뜻한 녹차 한잔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산으로 출발을 합니다.

  등산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등산을 하는 동안 버티기는 우리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우리 부부가 집으로 돌아와서 밭으로 가서 일을 하고 있자면 이놈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30분정도 있어야 슬며시 집 앞에 나타나 우리를 힐끔힐끔 보면서 저울질을 합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0
스탬포드2
홍콩 미술 여행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aci월드와이드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