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0호] 온기를 찾아 헤매는 아이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삭이는 보아구렁이를 그린 아이의 그림으로 시작됩..
[제60호]
온기를 찾아 헤매는 아이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삭이는 보아구렁이를 그린 아이의 그림으로 시작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그린 것이 구렁이가 아니라 모자라고 말합니다. 구렁이 뱃속에 든 코끼리까지 다시 그려가며 설명에 열을 올리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말합니다. 속이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보아구렁이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 낙심한 아이는 훌륭한 화가로서의 장래를 그 자리에서 포기해버립니다.
어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순간 떨어뜨려 깨진 접시처럼 아이들의 마음에 금이 가게 합니다. 자기가 해놓고도 기억 못하는 말, 사람들 앞에서 웃자고 내던지는 아이를 소재로 한 농담들과 단번에 뿌리를 뽑을 작정으로 던지는 협박조의 말투는 아이의 살갗에 불을 가져다 대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불에 데는 것은 일 초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그 상처가 흉터 없이 아물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머, 이 집 딸은 외모만 예쁜 줄 알았더니 커피도 너무 맛있게 잘 만드네요."
"예쁘긴 무슨, 당신 수준이 엉망이라 그렇지. 쟤 다리통을 보면 그런 소리 못할 걸? 그리구 커피는 기계가 뽑았지 지가 만들었나 뭐. 티나게 잘하는 건 별루 없다구 봐야지."
아이의 부모란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부모보다 그 아이의 존재를 더 귀하게 인정해 줄 타인은 없습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하는 말들은 그런 당신의 애정을 얼마나 반영해줍니까. 애들 버릇 나빠진다는 이유 때문에 겸손을 가르칠 양으로 애써 칭찬을 아끼는 동안 본의 아니게 '칭찬에 굶주린'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없는지요. 집에서 받지 못하는 칭찬과 한 조각의 다정함을 찾아 집밖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요즘입니다.
온기와 칭찬이 절박한 아이들은 달콤한 빈말과 진심의 차이를 구별해낼 줄 모릅니다. 애정 어린 한마디가 아쉬운지라, 마음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따르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만난 생판 모르는 사람을 겁 없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깊은 관계에 빠지는 케이스들은 이미 주변에서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아이들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가진 상태로 어른이 되어 살아갑니다. 언제 없어져버렸는지 알쏭달쏭하기 만한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고전하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원조 교제를 하는 일본의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기억납니다. 그런 여학생들의 대부분이 원조 교제를 하는 이유는 꼭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외롭고 공허할 때 주의를 기울여주는 누군가를 갖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을 테지만, 마음의 교류가 부족한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없는 온기를 찾아 집밖을 헤매다 그렇게 먼 곳에까지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린 당신을 본다면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하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이냐? 형제는 몇이냐? 몸무게는 얼마냐? 그 친구 아버지는 얼마를 버느냐?' 하는 것이 고작 묻는 말이다. 그래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곱고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 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1억 원짜리 집을 보았다' 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야, 참 훌륭하구나!' 하고 부르짖는다…”
틴에이저들을 만났을 때, 저도 위에 나온 어른들 스타일을 무심코 따라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질문을 고쳐 묻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은 실망스런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종이에 끄적일 수 있는 개인 정보 이상인 존재이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신상명세서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른을 만나면, 어디 사세요? 직업이 뭔가요? 어느 회사에 다니세요? 등등을 물어봅니다. 어린이를 만나면, 어디 사니? 학교는 어딜 다니니? 부모님은 뭐하시니? 버전만 반말로 바꾼 똑같은 질문들을 물어봅니다.
당신이 나누는 대화 중에 어떤 종류의 질문이 오가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당신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합니까? 그 내용은 날마다 어떻게 다릅니까? 당신은 아이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구체적인 질문을 합니까, 아니면 아이의 하루를 보고받기 위한 추궁조의 단순한 질문으로 일관하는 편입니까? 아이가 다니는 학교, 배우는 과목들, 부모와 사는 동네 이름. 그런 신상 정보 외에 당신이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양은 얼마나 됩니까? 어쩌면 아이들의 정수는 신상명세서 빈 칸에 적을 수 있는 정보망의 바깥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한때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당신이 어렸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서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길 좋아했는지를. 신나서 들뜬 마음으로 한껏 재잘대던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이 있었습니까? 당신이 만나는 어린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 시절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더욱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당신의 관심과 귀 기울임이 그들의 영혼을 밝혀주고 가슴을 훈훈하게 감싸줍니다. 내면의 등불을 가진 그들은 애정을 찾아 집밖을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라이프 코치 이한미 (2647-8703)
veronica@coaching-zone.com
www.coaching-zone.com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4)
ⓒ위클리홍콩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