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8호]
눈물 젖은 빵
그 다음날도 로이다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맘, 맘, 엉엉엉..., 로이다 왜 그..
[제58호]
눈물 젖은 빵
그 다음날도 로이다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맘, 맘, 엉엉엉..., 로이다 왜 그러는데 또?, 맘 배...배가...고.파.요. 로이다는 흐느껴 울었다. 배가 고프다면서. 순간 나는 Fee가 겪었다던 악몽이 되살아나며 어지럼증을 느꼈다. 맘, 주인이 밥을 안줘요. 아니 음식을 안줘요. 배고파 죽겠어요. 엉엉엉... 그녀가 사뭇 그렇게 엉엉 거리고 울자 나도 울컥하고 울음이 나왔다. 저 어린게 배 곯아가며 남의 집 생활하기가 얼마나 서러울까 싶은 생각, 철딱서니가 손톱만큼 없어도 내가 정말 도 닦는 셈 치고 데리고 살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자책감. 로이다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감정이 한 층 격해져서 계속 울어댔다. 로이다, 너 그러지 말고 나가서 빵이라도 사먹고 바람 좀 쐬고 와, 했더니 로이다가 맘, 주인은 내가 나가는 거 다 체크하구요, 내가 내 돈으로 뭐 사먹어도 야단쳐요. 허락을 받지 않고 밖에 나가면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대요. 그러면서 로이다가 오늘 저녁 주인 들어오면 자기 계약 파기하겠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네가 그렇게 못살겠으면 할 수 없이 나와야지 어쩌겠니, 그래 마음 정하기 전에 나하고 한 번 만나자, 했더니 그녀가 그 다음날로 짐을 싸들고 나오겠단다.
다음 날 저녁때가 다 돼서 로이다가 나타났다. 로이다는 우리 집을 나간 지 2주일 만에, 그 집에 들어가 일 한 5일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 통통하고 이쁘던 아이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데다 큰 눈은 두려움과 불안에 차 까만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로이다가 나를 보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엉엉, 울다 참다 다시 울며 그녀는 간신히 그동안 자기가 겪은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로이다에게 들은 로이다의 수난의 나날, 그 길지도 않은 5일 동안 겪은 수모는 이렇다.
로이다는 우리집을 나간 후 사촌언니들이 있는 보딩 하우스에서 지내다 계약된 집으로 갔다. 로이다가 계약돼 들어간 집은 홍콩 경찰부부였다고 한다. 서진이 보다 한 살 적은 7살 여자아이가 하나 있는데 이 여자 아이는 로이다를 걸핏하면 때렸다. 너 나를 자꾸 때리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더니 꼬맹이가 신고해봐, 우리 엄마아빠가 경찰인데 어서 신고해 봐, 라며 비웃더라나... 참다못해 주인에게 그 얘길 하니 알았다고 얘기 하겠다고 말만 해놓고는 그만이었다. 로이다는 그럴 때 마다 서진이와 진호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주인들은 로이다에게 먹을 것을 극소수의 양만 줬다.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끝내는 이들은 로이다에게 역시 우유 한 잔만 주고 하루 종일 일을 시켰다. 점심에 배가 고파서 밥을 지어먹었더니 그날 저녁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꾸지람을 들었다. 누가 맘대로 밥 해 먹느냐며, 전기세에 가스비는 네가 낼 거냐고. 로이다가 배고파서 그랬다고 하니 주인은 어디서 났는지 빵을 하나 꺼내 개에게 주듯 툭 던져줬다. 울컥 울음이 나는 걸 참고 빵을 꺼내 먹으려고 보니 빵에는 곰팡이가 퍼렇게 펴 있었다. 유효기간을 살펴보니 1주일이나 지난 것이었다. 로이다는 빵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배가 너무 고파 나중에 다시 쓰레기통을 뒤져 그 빵을, 곰팡이를 떼어내고 멀쩡한 부분만 골라 엉엉 울면서 그야말로 눈물 젖은 빵을 씹어 삼켰다. 그 다음날도 로이다는 배가 고파 주인 몰래 나가 빵과 음료수를 사왔다. 먹다남은 빵은 자기 방에 숨기고 음료수는 냉장고에 넣어 놨다. 그런데 주인이 갑자기 방에서 빵을 꺼내와 이건 뭐냐고 물었다. 배가 고파 빵을 사왔다고 했더니 너는 왜 허구한 날 배가 고프냐면서 짜증을 내고, 앞으로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삼가라는 엄명을 내렸다. 냉장고에도 어떻게 감히 네 개인물건을 넣어놓느냐며 호통을 쳤다. 로이다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물만 마셔댔다. 그러다 물이 다 떨어져 물을 끓였더니 주인 여자가 쫓아와 왜 물을 끓이느냐고 물었다. 배가 고파 마실 물을 끓인다고... 말도 채 끝내기도 전에 주인여자는 대뜸, 너는 왜 하루 종일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내 앞에서 그 배고프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 같지 않은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로이다에게는 썩은 빵과 우유 한 컵만 주고 하루를 보내게 하고, 자기네는 매일 저녁마다 외식을 하고 돌아왔다고 하니 어찌 서럽지 않을 수가 있으랴.
우리집에 있을 때, 로이다는 이른 아침부터 수북한 밥 한 사발을 깨끗이 비울 정도로 식성이 좋은 아이였다.
이미 얘기한 바 있지만, 그 비싼 조기도, 왕갈비도 눈치보지 않고 제가 먹고 싶은 양 만큼 실컷 먹으며 지냈는데..
그리고 더운 여름날, 닭 세 마리 사다 삼계탕을 끓이면 한 마리는 나와 아이들이 먹고 한 마리는 로이다가,
나머지 한 마리는 남편이 먹을 정도로 나보다 더 잘 챙겨 먹던 아이였다. 필리핀에서 왔을 때 시커멓고 비쩍 말랐던 아이가 우리집에 와서 통통해지고 하얘지면서 얼마나 이뻐졌는데, 그런 애를 어떻게 저런 몰골로 만들 수 있을까 한달도 아닌 단 5일 만에 말이다. 정말 지독하고 또 지독한 사람들이다.
방 수색작전
그뿐 아니었다. 주인들은 로이다의 방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며 수색작전을 벌였다. 가방이란 가방을 다 뒤지고, 옷가지에 침대 매트리스 아래까지 다 들쳐 의심나는 것만 있으면 추궁을 해댔다. 몰래 사다 먹던 빵도 제 방에 숨겨둔걸 주인이 뒤져서 꺼내온 것이다. 딸아이는 로이다가 전화를 몇 번을 했는지, 몰래 뭘 먹었는지 고자질하기 바빴다. 로이다는 그들이 경찰 가족이라 그런지 유독 뒤지는 데와 감시하는데 선수라며 몸서리를 쳤다.
'치신' 이란 말, 로이다는 평생 '치신'이란 말을 그렇게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집에는 차가 한 대 있었다. 주차장까지 가기에는 적어도 10분 이상 걸렸는데 주인 남자는 세차를 20분 만에 끝내라고 했다. 20분 후에 나타나다 안돼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치신으로 시작해 치신으로 끝나는 욕을 끝도 없이 해댔다. '치신' 이란 말,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다. 미쳤다, 정신 나갔다는 의미인데 홍콩사람들은 아무 때나,
아무 사람에게나 쓴다. 남편한테도 아내한테도 애들한테도, 친구들한테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미쳤다는 의미는 상당히 무겁고 심각한데 이들이 느끼는 미쳤다는 의미는 우리가 '정말 웃겨~~' 하는 정도로 가벼운 것 같다. 그런 홍콩사람들이니 메이드에게야 수 만 번을 썼어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꼈으리라.
로이다는 치신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치신 그러면 웃고, 치신 그러면 또 웃었단다. 아마 자기 별명이나 애칭인가 보다고. 자기 사촌언니한테 전화 걸어 주인들이 자기를 치신이라고 부른다고 했더니 언니가 아연실색 하더란다고.
그렇게 인간대접 못 받으며 살자니 얼마나 우리 집이 그립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었으랴. 로이다에게 물었다. 그러게 로이다, 내가 너한테 마음 다잡고 일 잘 하면 우리집에 있게 한다고 했을 때 너 왜, 허구헌 날 전화통 붙들고 있고, 집안 관리 점점 엉망으로 했느냐고. 경고를 줬을 때 알아듣고 했으면 이런 불행 없었을 거 아니냐고. 로이다는 모든 주인은, 모든 애들은 다 우리집 사람들 같은 줄 알았다고. 아니 우리 동네 살면서 한국 가정에서 생활하는 메이드들과 어울리다 보니 다들 비슷해서 홍콩 주인들도 매양 한국 주인들과 마찬가진 줄 알았다고. 그땐 자기가 너무 어리석었다고... 그리고는 다시 흐느껴 울었다.
로이다는 주변 메이드들이 홍콩사람들에 대해 적대심을 갖고 치를 떠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단다. 그러나 그녀는 메이드들이 과장해서 주인들을 싸잡아 욕한다고 생각하고 믿지를 않았다고 했다. 이제는 믿겠다고, 누구보다 더 믿는다고. 그네들은 메이드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노예로 본다고.
그녀는 또 홍콩에 오래 산 메이드들이 아주 약아질 뿐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강해지는데 이제는 이해를 한다고. 필리핀 사람들이 처음 홍콩에 왔을 때 그런 사람들은 없단다. 순박한 메이드들이 와서 악독한 홍콩사람들에게 당하고 또 그들과 싸워 이기거나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보호막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난 난, 정말이지 홍콩 사람들이 밉다고. 정말 밉다고 몇 번이고 증오에 차서 중얼댔다.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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