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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 17 - 그대 아직도 상처 받고 있는가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12-14 12: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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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4호, 12월15일]   "밥 못 푸는 엄마가 나쁜 엄마냐!"   초등 저학년의 급식을 위해 학부모들이 자발..
[제154호, 12월15일]

  "밥 못 푸는 엄마가 나쁜 엄마냐!"

  초등 저학년의 급식을 위해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돕기 시작한 것이 슬그머니 당번제로 강제성을 띠면서 부담을 느끼는 엄마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급기야 교육청에서 지침을 내려 자원봉사제로 바꾼 학교가 많지만 무늬만 달라졌을 뿐 엄마들의 고충은 여전하다는 몇 달 전 본 신문기사 내용이다.


사랑의 찬[饌] ~상처의 찬[饌]
  내가 속한 공동체에선 소모임 별로 돌아가며 식사봉사를 한다.  내 의사완 상관없이 내 이름이 구성원 명단에 들어갔지만 지난 2년 동안 식사봉사에 빠진 적은 없었다.  재료 다듬어오라면 씻어 다듬었고 몸이 좀 안 좋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그러나 이번엔 미리 예정된 스케줄과 시간이 겹쳐 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첫 번째 받은 전화에 "죄송하지만 이번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감기몸살로 앓고 있었지만 엄마 노릇은 멈춤 표시가 없어 내가 할 일 다 해가며 근근이 버티다가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금요일이라 자리에 누워있던 중 다시 같은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 들려왔다.  재료라도 좀 준비해 오라는 말...  '이번엔 도저히' 란 생각이 들어 역시 "죄송하지만 못 거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모임 구성원들 하나하나에게 전화해 미안하다고 직접 말하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른 이에게 그렇게 떠넘겨 부담을 주면 되냐"는 훈계였다.  얼마나 황당한지 미안하단 맘 대신 어느덧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뻗쳐 올라왔다.  뭐 그리 죽을죄를 졌다고 이 몸을 해갖고 일일이 전화해 사죄를 해야 한단 말인가.  설명하고 반박하며 대꾸할 기운도 없어 평소 같으면 그렇게 전화를 마무리하지 않는 나였지만 "아파 누워있던 중이라 그만 끊어야겠다."고 했더니 "아하, 그러세요" 빈정대는 상대방의 말로 그날의 사건은 끝이 났다.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차지 말랬다고 아픈 몸에 '소위[所謂]' 아는 이로부터 불쾌한 일까지 겪고 나니 주말 내내 맘이 따끔따끔했다.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을 만큼 열심히 조리법을 받아 적고 만들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 땐 비슷한 국이나 찌개만 상에 올리는 이들을 보곤 무척 한심하게 생각했다.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싱싱한 주부란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난, 요리에 대한 무한한 도전정신으로 잔뜩 무장하고 있었다.


요리는 즐거워~요리가 두려워
  근데 어느 날인가 손톱 끝이 갈라지며 아프기 시작했고 손바닥과 손등이 코끼리 피부같이 마르고 갈라졌다.  세 식구 살림에 뭘 그리 고된 일이 있었을까 마는 문제는 특별한(?) 내 손에 있었다.  피부과에서 받아온 연고를 바르면 괜찮아지는 듯해서 발랐다 말았다 하며 살다가 언젠가부터 달고 살게 됐고 세월이 흘러 가장 강한 연고도 전혀 약발이 안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니스 칠한 것 같은 손은 얼굴을 씻을 때조차도 "악" 소리 나도록 아팠고 딸이 춤추고 노래하며 집에서 리사이틀을 해도 박수도 못 치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고통이 가족들에게 미치는 파장은 대단했다.  엄마 손이 그 모양이니 아이들은 영 못 얻어먹었고 이리저리 도와보려 하지만 역불급[力不及]한 남편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른 집안일은 웬만큼 기계화할 수 있어도 요리는 손을 이용해야 하고 외국인 가정부를 둬볼까 해도 혼자 알아서 하게 하려면 오랜 기간 가르쳐야 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심난한 시절이었다.  

  급기야 인터넷을 뒤져 서울의 전문병원을 알아낸 남편은 내 손도 사진 찍어 보내고 편지도 보냈다.  급기야 서울까지 날아가 약을 지어다가 먹으며 연고를 끊고 '탈 스테로이드 현상'으로 고통스런 몇 달을 견딘 후 거짓말같이 회복되면서 연고를 다시 꺼낸 적은 아직은 없다.

  재발을 방지하려면 난 물을 손에 되도록 적게 묻히고 살아야 한다.  세수나 샤워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설거지는 물론 요리 빨래 그 밖에도 손을 더럽히거나 자극을 주는 일을 할 때엔 1회용 장갑이나 면장갑+고무장갑은 필수다.

  남편이 서울출장 길에 사오는 품목 중엔 크린장갑 덕용[德用]품이 꼭 들어있다.  이 곳 비닐장갑은 잘 안 맞아 야채를 다듬고 씻다보면 자꾸 벗겨지고 물 들어가고 구멍이 나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1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에는 기가 막힌 역행이지만 어쩌랴.  나와 내 가족이 살고 봐야지.

  내 손 덕(?)에 우리 집 식탁은 참 단출하며 좋든 나쁘든 반찬도 이미 되어진 것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주부가 손에 물 안 묻히고 집안일 하려니 제대로도 못하면서 벌어지는 그 번거로움과 느림이 어떨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런 사정을 비친 적도 이미 있건만, "무조건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다고 괘씸죄로 몰아 찔러댈 때는 이렇게도 속이 쓰리다.


원더풀 Korean Mom~그 뒤안길에서
  학교마다 열리는 Fair엔 우리나라 음식코너가 꼭 있다.  통상[通常] 한국 booth는 인기최고, 수익도 짭짤한 효자상품이다.

  보통 딱 당해 fair 이틀 전 연락책의 전화를 받는다.  낼 모레 아침 몇 시까지 음식 하나 골라 이만큼 해오라며 재료를 쫘악 불러준다.  부탁이 아니라 통보 내지는 완곡한 명령에 가깝다.  우리 집은 어디든 시장 가려면 차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야채는 무겁게 어찌 다 들고 오며 또 일부러 고기 사러 그 동네까지 가야하고 그 많은 양을 언제 다 잴 것인가 머리가 무거워 온다.  그러나,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 하는 맘에 '네' 대답한 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음식 낑낑대면서 해가면 다됐냐면 그게 아니다.  당일 가서 거들어야 눈밖에 안 난다.  안 그러면 가장 만만한 엄마 골라 면박을 주기도 하고 지자식 학교 일에 봉사 안하는 게으른 엄마로 치부하기도 한다.

가정부가 알아서 다 양념하는 집도, 식모더러 애들 보라하고 엄마가 만드는 집도, 애보기도 만들기도 엄마 혼자 다해야 하는 집도 있을 것이다.  척척 작업하는 엄마도 있겠지만 비닐장갑 여러 개 바꿔 껴가며 몇 시간씩 서서 깔짝거려야 하는 나 같은 이도 있을 것이다.  같은 학교 다니는 애가 둘이라고 1.5배내지 2배로 음식 해오라는 주문도 없었으면 한다.  아이가 둘이어도 엄마는 1.5명이나 두 명이 아닌 단 한 명 아닌가.

  몸만 왔을 뿐 슬슬 놀며 온종일 돕는 둥 마는 둥 하는 이들도 없었으면..  열심히 집중해 판매하고도 자기 볼 일 보러 간다고 중간에 나오려면 뒤 꼭지가 괜히 따가운 이도 없었으면..  shift를 정해 번갈아 팔면 해결될 일이다.  자신의 순번이 아닐 때는 바자회 구경도 좀 하고 물품도 사야하지 않겠는가.

  참여도가 낮을 것 같으면 규모를 줄이고 수익을 좀 적게 잡으면 될 것이지 "한국 엄마 원더풀!" 소리 듣자고 애먼 사람 아프게 하지는 말았으면... 학교에서 할당량 정해주고 나라별로 등수 매기는 것 아니라면 이익이 좀 적더라도 서로의 입장이 이해되는 진정한 손님 치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진정 기꺼운 맘으로 봉사하는 것이라면 자신만큼 안 한다고 다른이 흉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무리[無理]가 있으면 아름답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알리고 학교 기금도 마련하는 행사를 열심히 계획하고 봉사하는 엄마들의 노고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보람된 일 뒤안길에서 상처를 보듬는 엄마들이 이제는 없기를 정말 바란다.

  어지른다고 내 애들 잔뜩 족쳐 집안 윤기 나게 해 놓곤 "살림을 어쩌면 이렇게 잘 하세요" 손님에게 칭찬 듣고 좋아하다면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 아닌가.


'떨어진 기온만큼 체온을 높여 주는' 영화
  작년 초겨울 개봉되었던 '가족'이란 영화의 광고 카피다.  유쾌한 얘기만 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그렇지 못한 것이 실제 삶인 것 같다.  쌀쌀해진 날씨만큼 서로의 사연이 이해되는 따스한 만남이 오늘은 더더욱 그리워진다.

<글 : 진 주 영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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