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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22) - 애진교회 만다린 교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11-24 12: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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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애진교회 만다린 교실 (2)   헤매고 헤매다 도착해 보니 1시간이 늦었다.  많아봤자 10명이겠거니 ..
[제57호]

애진교회 만다린 교실 (2)

  헤매고 헤매다 도착해 보니 1시간이 늦었다.  많아봤자 10명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려 15명 정도의 아줌마 학생들이 자상하고 고운 서진영 선생님과 함께 데일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었다.  사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나는 1년 이상 틈틈이 만다린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중급반을 만만히 보고 들어 갔는데 그리 녹녹치 만도 않아 당황스러웠다.  가뜩이나 머리가 어지러운데 장문의 문장들을 듣고 머리에 넣었다 문장을 만들어 내 뱉어야 하는 고도의 학습방법 앞에서 까딱하다가는 망신살이 뻗질 지경이었다.  차리자,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지만 한 귀로 들어온 문장은 한귀로 그대로 흘러 나갔다.  '쇠기에 경 읽기'가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간신히 신고식을 마쳤다.
  한 텀 동안 정성을 다해 가르치시는 서진영 선생님께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고, 아줌마 학생들의 열성에도 느낀 바가 많다.  등록은 해놓고 중국 간다 뭐 한다, 이래저래 변명만 늘어놓고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선생님과 또 나와 함께 공부했던 여러 학생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별곡의 한 귀퉁이를 빌려 죄송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 돈 300불

  만다린 교실에 신고식을 마쳤다기 보다는 머리를 다쳤다는 신고식을 했다고 해야겠다.  그때부터 나는 공식적으로 실내에서건 실외에서건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눌러쓰고 홍콩이 좁다고 돌아 다녔다.  남들은 아마도 저 아줌마가 때 아니게 왠 멋을 부리고 다니나 하고 생각했겠지만 내겐 그런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우....
  내겐 그때 300불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까무룩 쓰러지던 날, 한 손에는 시대에 한 참 뒤떨어진 낡디 낡은 핸드폰을, 다른 한 손에는 출근하는 남편으로부터 받아놓은 돈 300불이 들려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 주변에 있는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내 손에는 전화기만 있었고 돈은 없었다.  쓰러져 있는 내 옆의 300불을 어떤 몹쓸 인간이 낼름 주워간 것이다.  내가 그렇게 까무룩 넘어간 것만큼 기가 막혔던 것이 바로 많지도 않은 300불에 인간성을 팔아버리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홍콩을 좋아하고 또 사랑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홍콩에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신랄한 비판을 늘어놓으면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홍콩에 강한 애착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얼토당토 못한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 내 가까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홍콩도 한 때나마 정나미가 "뚝" 떨어져 나갔다.


두 메이드들의 갈등

  며칠 후 어머님이 서울에서 오셨고, 필리핀으로부터 새로운 메이드 에드나가 도착했다.  
  나는 로이다에게 에드나가 아무것도 모르니 네가 알고 있는 것 다 알려주라고 일렀다.  그런데 참 이상한건, 로이다나 에드나, 아니면 그 이전의 메이드들이 집안 살림을 인수인계 받을 때 내 생각대로 기꺼이 알려주고 기꺼이 받아 들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티격태격했다.  가장 심했던 커플이 FEE와 넬리 커플이었다.  FEE는 조용하지만 머리가 명석하고 사리분별이 정확했고 자존심 또한 강했다.  넬리는 언제나 목소리가 나보다 컸고, 의기양양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니 섣불리 건들지 마시오'라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메이드였다.  이들 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티격태격 하다못해 때로는 큰소리도 났다.  그리고는 각자 나한테 와서 서로를 나무라느라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었다.  그런데 순하지만 약삭빠른 로이다와 느리고 우직한 에드나도 상황은 비슷했다.  로이다는 내게 와서 맘, 큰일 났어요.  내가 아무리 이건 이렇게 해라고 해도 애드나가 말을 안 들어요, 하며 나를 걱정했다.  에드나는 또 내게 와서 로이다가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 나이도 어린게 자꾸 면박을 준다고 시무룩 했다.  나는 일단 에드나에게 지금은 네가 배워야 하는 처지니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두말 말고 배우라고 못박았다.  
  로이다에 이어 애드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잖이 있지만 애드나에 관한 얘기는 안하려 한다.  늘 나와 함께 성당도 가고 외출도 하는데 이런 애드나에 대해 이렇네 저렇네 써 놓는다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고 못 알아듣는다 해도 얼굴 맞대고 사는 이상 큰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떠나간 로이다 그리고...

  로이다는 서진이 만한 여자아이 하나 있는 홍콩 부부에게 고용되었다.  떠나는 날, 그 달치 월급과 추가근무수당 그리고 휴가비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비행기 티켓대신 비행기티켓 값에 해당하는 돈을 정산해서 줬다.  이래저래 적잖은 돈이 나갔다.  로이다는 저녁에 떠났다.  울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렇게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도 눈물이 났다.  같이 살 수도, 그렇다고 떠나보내기도 쉽지 않은 이런 생활에 점점 염증이 났다.  
  로이다는 떠난 그 다음날부터 우리집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댔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애드나에게 손톱만큼의 정도 주지 않고 로이다만 찾았다.  그런 상황에서 로이다가 전화를 걸어오면 아이들은 한 층 더 애드나를 차갑게 대했다.  특히 우리 진호는 애드나를 사정없이 내쳤다.  근처만 오기만 해도 짜증을 내고, 나는 너 싫다며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진호는 애드나가 와 있기 때문에 로이다가 잠 잘 방이 없어 나간 줄 알고, 밤만 되면 로이다가 자야 한다며 애드나더라 집에 가라고 성화를 댔다.  그런 진호를 타이르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하며 애드나에게 적응을 시키느라 하루하루 진땀을 뺐다.  서진이는 이미 메이드 바뀌는데 이골이 나서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해 나갔지만 마음에는 영 들지 않는지 애드나에게 한 번도 웃어주질 않았다.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 며칠 후, 아침 일찍부터 로이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애드나가 통화를 하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주더니 받아보라고 한다.  어머니는 자기와 별반 말이 통하지도 않는데 자꾸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뭐라고 한다고,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라고 걱정을 하셨다.  전화를 달라고 해서 들어보니 아닌게 아니라 로이다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왜그러니 로이다, 왜 울어? 하고 물으니 갑자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맘, 맘, 나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도 보고 싶고, 동생들도, 오빠도 보고싶고, 내 고향 필리핀도 너무 그리워요"
  "로이다, 왜 갑자기 필리핀이 그리워?  우리집에서 있을때 휴가보내준다고 가라고 해도 안갔잖아"
  "맞아요 맘.  맘네 집에 있을 때는 필리핀이 그립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그리워요.  엉엉엉...  그리구여, 서진이 진호도 너무 보고 싶어요.  엉엉엉"
  "로이다, 너 무슨 일 있니?  왜 그래?  거기도 서진이 만한 여자 애 하나 있잖아"
  "근데요 맘, 난 서진이 진호가 더 좋고 얘는 내 말도 안 듣고 이상해요"
  "알았다 로이다.  어쩌겠니, 너 거기서 적응 못하고 자꾸 울고 하면 주인이 싫어하니까 잘 지내봐, 일주일만 잘 지내면 문제없을 거야"
  "알았어요 맘, 또 전화해도 돼요 맘?"
  "그럼, 전화 해.  괜찮아"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아이들은 들뜨고 애드나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때문에 사실은 그녀의 전화가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철딱서니 없어 저렇게 적응 못하고 엉엉 울고 지내는 것을...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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