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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20) - 빠져나갈 궁리를 마련하고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11-10 18: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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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호] 빠져나갈 궁리를 마련하고   나는 그녀에게 고용주 허락도 없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겨놓지 않은 채 몇 시간씩 무단 외..
[제55호]


빠져나갈 궁리를 마련하고

  나는 그녀에게 고용주 허락도 없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겨놓지 않은 채 몇 시간씩 무단 외출을 하는 것은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고, 너가 사라졌다고 경찰이나 이민국에 신고를 해도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몇 시에 나갔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무단이탈 하지 않겠다고 반성문과 서약서를 쓰라고 했다.  로이다는 알았다면서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녀를 불러내 쓴 종이 좀 보여 달라고 하니 서진이가 쓰던 연습장을 아무렇게나 쭉 찢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마구 휘갈겨 써댄 문장들이 낙서들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반성문을 걸레조각 같은데다 써서 낸단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다시 깨끗한 종이에 옮겨서 내라고 했다.  잠시 후 그녀가 나왔다.  반성문은 겨우 4줄 이었다.  반성문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오늘 오후 맘이 밖에 나가면서 커튼 빨아 놓으라고 시켰는데 빨긴 했지만 마르지 않아서 걸어놓지 않았다.  커튼을 안걸어 논 것은 내가 잘못한 일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무단이탈이 큰 잘못인지 커튼을 안 널어놓지 큰 잘못인지, 그녀는 물론 무단이탈이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 반성문에 그것에 대한 일언반구가 없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그 일에 대해 종이에 남길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어이도 어처구니도 없었다.  순진하고 어리숙하게만 봐왔던 로이다가 이젠 더 이상 아니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주와 맞서겠다 이거다.  "너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그녀로부터 나의 모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고용계약 만료는 다가오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그녀로부터 마음이 떠났다.  나의 냉랭함 속에서도 로이다는 꿋꿋하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아이들과 쿠당탕 거리고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장난스런 생활을 계속했다.  그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로이다는 우리 고용계약이 다 돼 가는데 자기는 재계약이 되는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사실 처음 그녀를 필리핀으로부터 우리 집에 데리고 올 때,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간다고 할 때까지 함께 지내고자 했다.  이미 내 마음이 떠나긴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앞으로 한 달간 기회를 주는데 최선을 다하는 너의 모습을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바로 계약이 끝난다고, 그녀는 알았다고,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집은 그다지 변하지가 않았다.  구석에는 먼지가 그대로 있었고, 짝 잃은 양말들은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 짝은 내 농에 한 짝은 남편 농에 각각 뒹굴러 다녔다.  허구한 날 표백제는 어디에 그렇게 쓰는지 일주일이 멀다고 표백제를 샀고, 그 표백제로 인해 남편의 와이셔츠는 성한 것 없이 점점이 흰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즐겨 입던 옷이 없어 찾아보면 구석에 꼭꼭 처박혀 있어 펼쳐보면 역시 표백제로 완전 망가져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가니 너는 아이들 없는 동안 집안 대청소를 좀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대청소로 인해 말끔해 졌을 집안을 기대했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거실 바닥의 먼지들이 그대로 발바닥에 늘어붙고, 방안 침대 구석으로는 먼지가 그대로 있었다.  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내가 어리석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그녀를 너무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 쉽게 메이드를 바꿀 수 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 다음주 토요일, 똑 같은 주문을 했다.  지난 주 내가 하라고 한 대청소 하나도 안했으니 이번주엔 다 해 놓으라고.
그러나 상황은 꼭 같았다.  너무도 꼭 같았다.  



계약 만료 통보

  그 무렵 메이드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우리 메이드에 대해 상의를 했다.  이런 상황인데 재계약을 해야 하느냐고, 에이전트에서는 계약기간이 끝나 가는데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만약 2년간 재계약을 해주게 되면 그 아이가 어찌 변해가겠느냐며, 당장 계약만료 통보를 하라고 했다.  에이전트에서는 두 달 내에 더 좋은 메이드를 구해다 줄 테니 시간 있을 때 파일과 비디오를 보고 맘에 드는 메이드들 골라 보라고 했다.

  로이다에게 그동안 너도 알다시피 한 달 동안 기회를 줬는데 너는 전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동의 하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약속했던 것처럼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우리 집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는 의도로 받아들이고, 이것으로 우린 계약기간 만료에 맞춰 모든 상황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나는 그녀가 나의 통고에 충격을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알았다면서 부엌으로 들어가 하던 일을 했다.  

  그녀가 충격을 먹으면 어쩌나,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하면서 고민하고 걱정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로이다에게 이런 계약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하고 끝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새 메이드를 찾아서

  남편과 나는 동네 에이전트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얘기했다.  지금의 메이드처럼 너무 어려서도 안 되고, 나이가 또 너무 많아도 안 되며, 아이들 공부 봐줘야 하니 대학은 나왔어야 하고, 드센 남자애 봐줘야 하니 너무 연약해도 안 되고....  그러나 수백 장의 파일을 다 뒤져봐도 파일안의 메이드들은 어쩜 하나같이 그렇게 적응 안 되게 생겼는지, 고르고 또 골라도 맘에 드는 메이드는 없었다.  필리핀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의하면 필리핀의 여자들이 의외로 꽤 이쁘고 매력적이라는데 홍콩에 와 있는 필리피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에이전트에 그 이유를 물으니 주인 여자들이 이쁜 메이드 데려다 놓으면 불안해져 일부러 못생긴 사람들만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전트에서도 메이드들을 신청 받을 때 너무 이쁘거나 하면 제외시킨다고 한다.

  우린 상가 2층에 있는 인도네시아 메이드 에이전트도 가봤다.  인도네시아 메이드들은 이쁘고 싹싹하고 덜 계산적이며, 착하다고 하여 한 번 고려를 해볼 심산이었다.  그 에이전트는 컴퓨터에 모든 자료가 다 들어있었다.  메이드들이 동영상으로 자신을 부지런히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필리피노들과 친숙해져 버렸는지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다신교를 믿는 이들이 어떤 신을 믿는지도 모르면서 우리집에 두 신을 모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린 다시 우리가 거래하는 그 에이전트로 돌아가, 그 중 덜 부담스럽게 생긴 순박한 아줌마 한 명을 골라냈다.  그녀는 결혼을 했으며, 아이가 하나 있다더니 몸이 꽤 불어 있었다.  형제는 8남매쯤 됐다.  일단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남편이 있으니 밖으로 나도는 것에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테이프를 통해 본 그녀의 영어 발음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종교는 나와 같은 천주교인데다 음식을 잘 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 아줌마도 로이다처럼 춤이 특기라고 쓰여 있었다.  참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필리피노들이 특기란에 '춤'이라고 쓴다.  어떤 주인도 춤 잘 추는 메이드를 선호하지는 않을 텐데도 이들은 왜 꼭 '춤'을 적어놓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그 순박한 시골 아줌마가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에드나이다.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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