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릴 때에는 ‘얼음보숭이’ 대신 아이스크림을, ‘손전화’ 대신 핸드폰을 사용하는 우리말의 외래어 도입 체계에 대해 굉장히 효율적이며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얼음보숭이’ 같은 동물이나 괴물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영어 어휘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광둥어를 배우면서 이러한 외래어 도입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조금씩 자각하게 된 것 같다.
우선 이러한 외래어 도입법이 우리의 외국어 어휘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 문제이다. 일단, 외래어 중에 우리가 영어 단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는 영어가 아닌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나 ‘깁스’는 영어가 아닌 독일어이다. 독일어 어휘력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영어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 부분을 백번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 ‘비닐’, ‘팬티’ 등도 사실 영미권에서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영어 단어들이다.
둘째로 이렇듯 모든 물건이나 현상, 사상 등을 도입할 때마다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고유어의 영역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대로 100년, 200년이 지나게 되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언어가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전에 없던 개념이나 정의를 포함한 현상이나 물건은 우리말로 순화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바나나’를 우리말로 순화하려고 시도하는 작업은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그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할 확률이 높다. ‘딥러닝(deep learning)’이라 불리는 A.I.의 학습 방법 또한 우리말로 순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북 아트’는 ‘책 꾸미기’ 정도로 어렵지 않게 순화시킬 수 있고, ‘등재’라는 단어 또한 ‘목록에 올리다’ 정도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처럼 외국어 혹은 외래어의 도입에 대해 국립국어원에서는 국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우리말 순화 작업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20,000여 건에 이르는 단어들의 순화를 시도하였다. 그 중에는 ‘I.C.(인터체인지)’의 순화어인 ‘나들목’처럼 우리 삶에 제대로 안착한 단어들도 있지만, ‘금리차’라는 순화어가 어색해 ‘마진(Margin)’이라는 영어 단어가 아직 더 널리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로의 순화는 국제화 시대라는 커다란 흐름 앞에 필요악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표준어에 한정지어 우리말 어휘 분포를 살펴봤을 때, 한자어가 약 55%, 고유어가 약 40%, 외래어가 약 5%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 거기다가 고유어의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외래어의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함께 깊이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것, 대국의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극찬했던 점, 우리의 가요, 영화,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점, 씁쓸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김치, 한복 등을 자기들의 것으로 가져가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등은 우리의 것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세계화 시대에 나와 우리나라를 더욱 세계적으로 빛내는 길은, 우리의 고유의 특성과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우리말 순화어들 몇 가지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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