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본인의 직업을 소개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아래로 스크롤을 쭉 내리면 필자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지만, 솔직한 마음에 거기까지 내려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여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서두에서 필자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필자는 중등 교육 과정 국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다년간 홍콩에서 특례 국어를 가르치다가 현재는 한글 및 논술 교육, 그리고 정규 국어 교육 과정을 가르치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있는... 그야말로 국어와 관련해서는 안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서두부터 장황하게 필자의 이력을 소개한 이유는, 물론 학원을 광고하려는 목적도 조금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의 내용을 위해 필자가 하는 일을 공개하는 선행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K-POP이라 불린 한국 가요의 인기를 시작으로 음식, 관광, 드라마, 영화, 화장품, 전자 제품 등, 요즘은 정말 전천후로 한국의 문화와 산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 상승 추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 필자와 달리 매주 3-4편 정도의 드라마를 요일마다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는 홍콩 사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 문화에 관심과 열정이 넘치는 한 학생이 필자의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먹이다’와 ‘멕이다’가 뭐가 달라요?”
물론 처음에는 이 학생이 ‘멕이다’라는 표현까지 접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홍콩 사람이 이 정도로 우리말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필자는 보통 한국어 수업 시간에 문법 용어들은 가급적 피하려고 하지만, 질문에 답을 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ㅣ’모음 역행동화라는 문법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연히 문법 용어 그 자체가 아닌, 그 용어의 뜻과 현상을 중점적으로 설명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ㅣ’모음 역행동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 홍콩 학생은 정말 한국 문화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질문도 가능한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자국의 언어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일상의 대화와 글쓰기 속에서 언어 사용이 부적절하여 조금만 고쳐주려고 들면, 필자를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몰아가며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오히려 필자를 면박주기 일쑤이다.
간혹 사람들이 ‘ㅣ’모음 역행동화를 사투리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물론 방언에서 ‘ㅣ’모음 역행동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편한 발음을 중시하는 지방의 소리 중심 언어관으로 인해 방언에서 이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일 뿐, 그것을 사투리로 한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ㅣ’모음 역행동화를 설명하자면, ‘ㅏ, ㅓ, ㅗ, ㅜ’ 모음이 뒤에 오는 ‘ㅣ’모음의 영향을 받아 ‘ㅏ, ㅓ, ㅗ, ㅜ’에서 ‘ㅐ, ㅔ, ㅚ, ㅟ’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중세 국어까지는 일어나지 않던 이 현상은 임진왜란 이후 가속화된 ‘아래 ㅏ(•)’ 모음의 소실로 인해 ‘ㅣ’ 모음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근대 국어에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발생 초기에는 발음에만 국한되던 현상이었지만, 그 이후 점차 표기에도 영향을 미쳐 지금의 표준어 규정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ㅣ’모음 역행동화를 적용한 단어는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기 → 애기 (ㅏ+ㅣ=ㅐ), 어미 → 에미 (ㅓ+ㅣ=ㅔ), 아지랑이 → 아지랭이, 학교 → 핵교, 손잡이 → 손잽이, 고기 → 괴기, 먹이다 → 멕이다’ 등은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표준어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비 → 냄비’와 출신을 뜻하는 ‘-나기 → -내기’가 있다. 따라서 ‘서울내기, 시골내기, 뜨내기, 동갑내기, 신출내기, 풋내기’ 등이 모두 표준어가 된다.
또한 ‘ㅣ’모음 역행동화가 어휘 분화를 가져온 경우도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장이’와 ‘-쟁이’이다. 이 경우는 ‘-장이’와 ‘-쟁이’를 선택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문성이나 직업적 특성을 표현할 경우에는 ‘-장이’를, 특징이나 특성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쟁이’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미장이, 대장장이, 유기장이’ 등 직업을 뜻하는 단어는 ‘-장이’를 ‘멋쟁이, 심술쟁이, 욕쟁이’ 등 특징이나 특성을 표현한 단어는 ‘-쟁이’를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조금 더하여 말하면, 생물적 특성으로 이름을 표현한 ‘담쟁이, 소금쟁이’ 등도 모두 ‘-쟁이’를 사용해야 한다.
필자도 이제 홍콩에서 15년을 살다 보니, 어휘력과 문장력이 조금씩 쇠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국제화 시대에 꼭 우리말을 고집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말 능력이 성숙된 단계에 접어들지 않은 사람은 사고력도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사고는 형이상학적 단계의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모나 뿌리만 한국인이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을 제외하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진 화자는 한국어 능력을 지속적으로 성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함은 자명한 논리이다. 아무리 A.I.가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사람에게 인간성을 상실하고 로봇이 되라는 말이 어불성설임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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