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게 홍어 거시기’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내뱉는 푸념이다. 다시 말하면 홍어의 거시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의미이다.
홍어는 암컷이 크고 맛있으며 수컷은 작고 맛이 떨어져 별로 인기가 없다. 그래서 수컷은 가격에서도 암컷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수컷은 거시기 때문에 더욱 홀대를 받는다. 꼬리 양쪽에 돌출되어 있는 거시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나지 않으며, 가시까지 붙어 있어 잘못 다루면 손을 다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뱃사람들과 상인들은 수컷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으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홍어 거시기는 그 중요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항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겨울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겨울, 코가 뻥하고 뚫릴 정도로 푹 삭힌 홍어를 먹는 맛은 남도 맛의 진수이다.
남도 지방에서는 ‘날씨가 찰 때에는 홍어 생각, 따뜻할 때는 굴비 생각’이란 말이 자주 오간다. 지금은 사계절 음식이 되었지만 홍어는 가을과 겨울이 제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남도 지방에선 가을 이후의 잔치에 삭힌 홍어가 빠지면 그것은 곧 격이 없는 집안이고 차린 것이 별로 없다고 섭섭해했다.
충청도 밥상에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빠지면 양반의 밥상이 아닌 것처럼 “홍어 빠진 잔치는 귀 빼고 거시기 뺀 당나귀”라 했고 “홍어 빠진 잔치는 하나마나”란 말도 전해진다.
홍어를 비롯한 모든 발효음식은 공통된 특성이 있다.
한번 맛을 들이면 도저히 끊지 못하고 중독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김치가 그렇고, 된장이 그렇다. 치즈와 요구르트도 그렇다.
삭힌 홍어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코끝을 찌르는 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한두 번 맛을 들이면 특유의 풍미에 매료되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극은 즐거운 고통이 되고 만다.
삭힘 요리의 미학, 홍어삼합
홍어는 다른 물고기와 다르게 진화하였다. 특이하게도 바닷물 속에서 삼투압 조절을 위하여 근육 속에 요소(尿素)와 요소 전구물질(前軀物質)이 많이 들어 있다.
홍어가 죽으면 몸에 함유된 요소가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TMA)으로 분해되면서 자극성의 냄새를 낸다. 항아리에서 오래 발효시킬수록 톡 쏘는 매콤한 맛이 강해지고 살이 부드러워진다.
홍어하면 생각나는 게 바로 삼합(三合)이다.
‘삼합(三合)’은 명리학에서 유래한 말로서 한국에선 주로 성질과 맛이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기이한 조화의 묘미를 얘기할 때 쓰는 말이다.
홍어삼합은 먼저 잘 익은 묵은 김치에 삭힌 홍어를 양념에 살짝 찍어 올리고, 그 위에 껍질이 붙은 돼지고기를 한 점 얹어 보쌈처럼 먹는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쭉 들이킨다.
홍어의 구린 냄새와 듬직한 돼지고기의 맛을 품 안에 감싸는 김치 맛의 포용력은 강한 충돌 끝에 화해를 이룬 아이러니한 음식 맛의 극치 중 하나다.
참으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홍어는 정신을 각성시키고, 돼지고기는 육체를 살찌우며, 김치는 상반되는 둘을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가 바로 ‘홍어삼합’이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얼굴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각기 다르다고 한다.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어울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가짐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수협중앙회 홍콩무역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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