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5분 전’의 어원 살펴보기]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상황, 통제가 불가능한 아수라장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흔히 ‘개판 5분 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이 표현에 나오는 ‘개’는 당연히 우리에게 친숙한 멍멍이라고들 흔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표현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은 ‘개판 5분 전’의 어원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때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공군과 러시아군을 통해 막강한 화력을 지원받았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의 전쟁 준비를 통해 남한보다 뛰어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북한은, 전쟁 시작과 동시에 파죽지세로 낙동강 일대까지 치고 내려와 무력 통일의 기운을 맘껏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우리 국군도 낙동강 벨트를 끼고 배수의 진을 친 채,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이처럼 전선에서는 군인들이 나라의 존립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면, 전선 이남에서는 피난민들이 자신과 자신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총칼을 들고 싸웠던 것은 아니고, 이들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바로 숟가락과 식판이었다.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는 배식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중요한 시간이었으리라. 당시 공동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에게 배식 시간을 알리기 위해 일종의 타종 알림 방식을 사용했는데, 보통 배식 5분 전에 타종을 하여 알렸다고 한다. 타종 소리를 들은 피난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배급받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는데, 그 이후의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사실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전쟁 중, 그리고 그 중에서도 피난민들이 배식받기 직전인 아수라장 상황을 가리켜 ‘개판 5분 전’이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여기에서 나온 ‘개판’은 ‘개판(犬版)’이 아니라 ‘개판(開版)’ 즉, 배식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에는 우리 민족의 동족상잔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굶주리고 고통받았던 피난민들의 삶의 비애와 애환이 담겨 있어, 우리가 보통 이 표현을 사용하는 많은 상황과는 잘 맞지 않는 듯 보인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개판(犬版)’이 ‘개판(開版)’이 되면서 전달력이 많이 약해진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하다. 우리 주변, 우리 사회를 보면 ‘개판(犬版)’ 정도는 돼야 표현 수위가 좀 맞는 듯 보이는 상황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사수 혹은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행해지는 각종 집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행해지는 각종 파업과 집단행동, 국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본인들의 정치 생명 연장 및 권력 유지를 위한 각종 법안의 입법화를 두고 벌어지는 국회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 다툼 등... 이런 행동들과 상황들은 이미 ‘개판(犬版)’으로 형용하기에도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래서 필자는 오히려 언중들이 이미 많이 그렇다고 여기고 있는 ‘개판(犬版)’을 이 표현의 어원으로 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결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 ‘개판(犬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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