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댐, 비닐, 빵, 미라, 망토, 고무, 냄비, 고구마...
이 단어들 중에 순우리말은 몇 개나 있을까?
정답은 0개이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 중 순우리말 같지만 순우리말이 아닌, 순우리말 같지 않지만 순우리말인 단어들을 같이 확인해 보려고 한다.
[시소, 댐, 비닐은 영어 표현]
우선 우리가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기구인 시소는 영어 표현인 ‘See-Saw [씨-쏘우]’에서 그대로 가져온 단어이다. 요즘에는 학교에서 이 단어 자체를 영어로 많이 배우기 때문에 젊은, 혹은 나이가 좀 어린 독자분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겠지만, 필자는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을 막아 두는, 홍수와 가뭄을 대비하는 용도로 만든 댐도 영어 표현 ‘dam [댐]’을 그대로 사용한 단어이다. 비닐은 영어로 플라스틱 합성수지를 뜻하는 ‘Vinyl [바이널]’을 가져다 쓴 표현이다. 그래서 당연히 영어권 국가에서 비닐을 달라고 ‘Vinyl’을 말하면 발음도 다를뿐더러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좀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영어권 국가에서 비닐을 원하면 ‘Plastic Bag’을 달라고 하면 된다.
[빵, 미라는 포르투갈어]
한편 빵과 미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단어이다. 빵은 포르투갈어 ‘pão [빠오]’에서 유래되었다. 포르투갈에서 아시아권으로 전파되어 ‘빠오 혹은 빵’로 부르던 것이 우리나라로 전해져 빵이 되었다고 한다. 썩지 않는 시체를 뜻하는 미라는 포르투갈어로도 역시 ‘mirra [미라]’이다. 포르투갈어 발음이 거의 그대로 전해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망토와 고무는 프랑스어]
망토는 모자가 달린, 걸쳐 입는 형태의 외투를 뜻하는 프랑스어 ‘manteau [모뚜]’를 어원으로 한다. 서양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망토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가해자가 됐든 피해자가 됐든, 대부분 범죄와 연관이 됐던 기억이 있다. 얘기가 좀 삼천포로 빠졌었는데, 순우리말일 것만 같은 고무도 프랑스어 ‘gomme [꼼]’의 일본식 발음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 단어 발음을 보니, 일본 사람들이 ‘꼬무’로 발음했을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여서 잠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냄비, 고구마는 일본어]
우리가 요리할 때 사용하는 냄비는 일본어 ‘なべ [나베]’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19세기에는 ‘나베’와 발음이 좀 더 유사한 ‘남비’가 널리 사용되었지만, 점차 ‘ㅣ’모음 역행 동화를 거친 ‘냄비’가 일반화되어 현재는 냄비가 표준어가 되어 있다. 사실 ‘ㅣ’모음 역행 동화는 우리나라의 남쪽, 그 중에서도 동쪽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거의 모든 단어들은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단어의 경우는 왜색을 좀 빼기 위해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표준어를 변경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말 외래어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단어인 고구마는, 일본 대마도에서 처음 들여오며 쓰시마 지역의 표현인 '孝行藷 [코고이모]'가 같이 들어와 전해진 단어이다.
[외래어 같은 우리말도 있다?!]
위의 사례들과는 반대로, 얼핏 보기엔 외래어 같지만 실제는 순우리말인 단어들도 있다. 원래의 가격보다 물건 값을 더 보태거나 깎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인 ‘에누리’는 짐짓 외래어의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은 순우리말 표현이다. 또한 사람의 몸을 던져 올리고 다시 받는 행동을 뜻하는 ‘헹가래’는 영어 표현 같지만 역시 순우리말이고, 짐 등을 어깨에 걸어 메는 끈을 뜻하는 멜빵도 우리말 같지는 않지만 순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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