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를 떼다 : 자기가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짐짓 모르는 체 하다]
우리말에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이 있다. 자기가 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거나 짐짓 모르는 체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사실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을 모른다거나 용례를 잘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고, 오늘은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시치미를 떼다’는 매의 시치미를 떼고 자기 것이라고 우기던 것에서 유래한 표현]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에서 ‘시치미’는 일종의 매의 이름표이다. 매를 키우는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나 다리에 매어 둔 것이 바로 시치미이다. 보통 매는 새장에 가둬서 키우지 않고 풀어놓고 키웠기 때문에 이 시치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매가 어쩌다 자신의 집으로 넘어왔을 때, 그 매가 탐이 나서 돌려주지 않고 시치미를 떼고 나서 자신의 것이라 우기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 말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시치미를 떼다’인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2,000년 전부터 매 사냥법 발달]
우리가 가끔 몽골 지역이나 중국의 중원, 유럽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매를 전령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이 지역들에서 일찍이 매를 새끼 때부터 키우면서 훈련시키는 매 사냥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전 2,000년 전부터 매사냥이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부터 매사냥 시작, 본격적으로 성행한 것은 고려시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매 사냥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 만주 동북부 지방에서 수렵 생활을 하던 숙신족(肅愼族) 때부터 매를 키운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며, 그 이후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매 사냥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매 사냥 기술은 나중에 중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속된 말로 ‘국뽕’이 좀 많이 들어간 기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백제인들이 일본에까지 전승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고려 시대에는 이 매 사냥이 본격적으로 성행하면서, 충렬왕은 매의 사육과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따로 설치해 매사냥을 관리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여 궁에 내응방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늘의 왕자, 매의 주요 서식지는 추운 지역과 해안가]
매는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종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반도는 매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 매의 서식지가 발견되고 있고 송골매와 참매 등 매 중에서도 그 신체조건과 능력이 뛰어난 매들이 한반도 서식종으로 분류되지만, 현재는 그 수가 미미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현재 매가 주로 서식하는 지역을 살펴보면 한반도 북부나 만주,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 등 주로 추운 지역과 해안가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까지 산발적으로 행해지던 매사냥이 고려시대에 국가가 관할하는 사업이 된 것은 그 배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려의 권문세족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시치미를 뗐다]
칭기즈칸을 위시한 몽골 제국이 전 세계에 그 위용을 뽐내던 시절, 우리나라는 고려 무신들이 정중부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이미 중국과 유럽을 집어삼킨 몽골의 기마부대는 작은 한반도로까지 그 세력을 뻗어 오다가 삼별초의 강화도 최후 항전까지 짓밟고, 마침내 고려의 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고려에서는 원나라의 복식과 풍습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때 유행한 풍습 중 하나가 바로 이 매 사냥이었던 것이다. 특히 원나라와 직간접적으로 결탁하여 고려의 신하인지 원나라의 신하인지 분간이 불가능했던(사실,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냥 원나라의 신하였다고 보는 편이 맞는다고 본다.) 권문세족들 사이에서는 매사냥이 굉장히 중요한 정치 사업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 매를 키워내 원나라의 대신들에게 조공처럼 바쳐야 했고, 그것이 고려 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니, 어찌 중요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남의 좋은 매를 자신의 매로 둔갑시키기 위해 ‘시치미를 떼’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 명약관화한 일인 것이다.
[‘시치미를 두다’, ‘시치미를 붙이다’라는 표현도 널리 사용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며칠 전이 한글날이었다. 전 세계에서 자기나라의 말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 또 그 문자의 창제 원리와 창제자, 창제 목적 등이 명확하게 밝혀진 글자를 가진 나라가 얼마나 될까? 코로나로 한국이 어려움을 겪는 중에서도 ‘K-방역’이 세계에서 방역의 모범사례로 언급되고 있고, BTS가 제 2의 비틀즈로 전 세계에 'K-Pop'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모바일과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전 세계 1위 기업으로 'K-Tech'(필자가 만든 표현인데, 앞으로 널리 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를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나친 ‘국뽕’은 현실에 안주하게 하며 자만심을 키워 발전을 저해하지만, 잘하는 것을 굳이 폄훼하고 큰 나라의 것만이 좋다고 여기는 사대주의의 모습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행태이다. 고려시대의 권문세족,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자,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등, ‘시치미를 떼’는 방식으로 나라를 둘로 분열시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자들이 지금은 더 이상 우리 주변에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있다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한 의심이라고 본다. 이제는 이들의 교란전술에 휘둘리지 말고 오히려 ‘시치미를 두다’, ‘시치미를 붙이다’ 등의 행동으로 사회를 더욱 넉넉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하나로 단결시키는 힘을 우리 스스로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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