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인 일상이라는 뜻으로 Routine 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에게 일상은 늘 있었지만 반복적인 일상은 거의 없었다. 매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직장 일로 대부분 불규칙한 일상을 아주 오랫동안 하고 있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나를 두고 만든 말이다. 매년 새 달력을 펼쳐서 시간표를 근사하게 짜도 삼일을 못 넘겼고, 맛있는 음식도 삼일째면 지루해졌다. 심플한 짜장면보다 복잡한 짬뽕을 더 좋아한 나였다.
그런 나에게 코로나로 하늘길, 바다길 통행이 다 막히자 답답함에 몸부림을 치다가 아침 산책으로나마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했다. 사흘 지나면 포기할 줄 알았지만 낮에는 찌는 더위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해가 져야 밀린 일을 후다닥 하는 타이밍이 생겨서 아침 산책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 사흘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되었다. 처음으로 나도 Routine이라는 반복되는 일상이 생겼다.
눈을 뜨면 자동으로 운동복을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어제 아침에는 한 송이 밖에 못 봤는데 오늘은 세 송이 꽃이 피고, 매일 보는 강아지들도 생겼고, 스쳐가는 익숙한 얼굴들도 알아보게 되었다.
일찍 출근하는 총총걸음도, 금방 나온 싱싱한 야채를 사러 가는 부지런한 주부들, 긴 빗자루를 들고 간밤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는 고마운 청소부들, 아침부터 바쁘게 배달하는 사람들~~ 금방 나온 신문을 챙겨가는 어르신들, 운동인지 서 있는지 구분이 안 되는 느린 동작을 하시는 할머니들, 알 수 없는 열매를 쪼아대는 새들도, 느릿느릿한 달팽이들도 아침에 만난다.
땀을 흘리면서 아침 산책을 끝나고 오면 식구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어젯밤 저온숙성 지켜놓은 반죽을 성형해서 오븐에 넣으면 따뜻한 모닝빵이 준비된다.
코로나 전에는 모두들 각자 출근하고 바쁜 동선으로 우리 가족은 생사만 확인되면 괜찮은 정도로 조용한 가족이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자택근무가 시작되고, 온라인 학교가 시작되자 같은 공간에 보내는 많은 시간들로 불필요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질보다 양으로 대화는 확대 되더니 서서히 민낯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가장이어서 듬직하게 의지한 남편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당과였고, 뭔가 항상 분주한 딸은 우유부단해서 오라는 곳은 다 가고 보는 눈치 없는 푼수기를 보았다.
난 또 종일 삼시세끼 촬영하듯이 매일 부엌에서 유튜브를 보며 온갖 국적도 원조도 없는 생계유지용 음식을 만들어 내는 칠푼이 아줌마로 전락했다.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사는 가정생활은 처음에 너무 낯설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루틴이 생기자 나도 남들처럼 동선을 만들고 업그레이드 중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루틴도 만들고, 뒹굴며 쉬는 휴식 루틴도 만들면서 오늘도 진화 중이다.
글, 사진 : Misa Lee, 위클리홍콩 여행기자 weekly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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