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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편집국장의 뉴스레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7-11-23 10:55:07
  • 수정 2017-11-23 1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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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한국경제신문 11월20일자 A2면 ‘이 아침의 시’로 소개된 김선우 시인의 <이런 이유>는 첫 문장부터 눈길을 잡아 끕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푸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로 이어지는 산문시(散文詩)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시의 화자(話者)인 행인이 걸인과 연결하는 감성으로 꼽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당신’은 한경 11월17일자 A27면 기사 <쉬지 않고 1만㎞… 북극 물떼새의 목숨 건 귀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미국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귀소성에 주목해 동물의 이주와 귀향을 추적 관찰한 책 《귀소본능》을 소개한 기사입니다.

“북극 근처에 사는 물떼새 큰뒷부리도요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알래스카에서 호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먹이는커녕 물도 마시지 않고 잠도 안자면서 1만㎞가 넘는 태평양 상공을 날아간다. 체지방은 물론 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 부분을 소진해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는 봄이 오면 이 기나긴 거리를 날아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생명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의 본능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상당수는 1970년대 즈음 고향을 떠나왔다. 배움을 위해서든, 먹고 살기 위해서든 저마다 보따리를 싸 도시로 나왔다. 결혼해 새 보금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뒤 장년기를 맞은 이들에게서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드물지 않게 나온다. 먼 삶의 길을 돌아온 ‘귀소 본능’이다.“

‘귀소 본능’과 ‘이런 이유’는 훌쩍 지나가고 있는 올 한해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지난 며칠 한겨울 같은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감하게 해줬습니다. 천재지변을 만난 포항의 이웃들은 우리들이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시 《이런 이유》의 한 대목을 새깁니다.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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