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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홍콩 '우산혁명' 시위대에 물었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4-10-16 17:14:21
  • 수정 2014-10-16 17: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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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시민들의 완전 보통선거권 요구 시위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약속했던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사실상 친 중국 인사로..
홍콩 시민들의 완전 보통선거권 요구 시위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약속했던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사실상 친 중국 인사로 후보자를 제한하는 선거안을 발표하면서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수십만 명이 정부청사와 의회, 금융기관이 밀집한 정치경제 중심지 센트럴의 도로를 점령했다.

오큐파이 센트럴(Occupy Central; 占中) 시위대는 비폭력 평화 집회를 천명했지만, 홍콩 경찰은 9년 만에 처음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제 해산에 나섰다. 현장의 청년들은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들었고, 이 상징적 장면을 포착한 외신은 이번 시위를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으로 명명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경진압은 어른들까지 분노하게 만들면서 시위 규모를 키웠다.

홍콩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처음이 아니다. 수년째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운동이 반복돼왔다.

 20127, 홍콩정부가 '중국식 국민교육' 도입을 결정하자 학생과 시민 9만여 명이 거리로 나와 거세게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정부는 중국의 현재 상황과 역사 문화를 알리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시민들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편향된 정치 세뇌교육이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당국은 결국 국민교육 도입을 철회했다. 당시 시위의 중심에는 대학생과 교육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있었다. 이 때 등장한 중·고등학생운동단체가 바로 이번 오큐파이 센트럴 시위의 주축 세력 '학민사조(學民思潮)'.

지난해 10월에는 지상파 개국을 준비하던 홍콩TV(HKTV)의 방송 허가가 거부되자 3만 명 넘는 홍콩시민이 반발하며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사실상 독과점 상태인 현지 TV방송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신규 면허를 부여키로 하고 심사에 들어갔지만, 3개 방송사 가운데 친중국 성향의 채널 두 곳만 허가했다. 홍콩TV의 왕웨이지(王維基) 주석이 과거 통신 업계에서 가격 파괴로 물의를 빚은 전력이 문제가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민주화 시위 현장에 나온 시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펑모씨는 "인터넷으로 미리 방영된 드라마의 반응이 좋았고 당연히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심사 기준과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자유 민주 성향의 방송국 설립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 세 번의 큰 저항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홍콩정부의 수장은 바로 렁춘잉(梁振英) 장관이었다. 오큐파이 센트럴 시위대는 렁 장관이 지나치게 중국 입장을 대변해왔다며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가 행정장관 간접선거에서 689표를 얻어 당선된 것을 두고 '689'라 비꼬는가 하면, 선거 당시 자택 불법 구조물을 두고 거짓말을 한 것에 빗대 '늑대'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등 시위대의 불만과 분노가 렁 장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렁춘잉 장관을 689로 조롱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선전물이 시위 현장 곳곳에 붙어 있다.

    렁춘잉 장관을 689로 조롱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선전물. 7은 남성 성기를 뜻하는 
        광동어 속어로
,  숫자 순서대로 나열된 689에는 7이 빠져있다.

중국-홍콩 간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누적된 반중 감정

그러나 이번 시위가 단순히 '직선제 쟁취'만을 위한 운동은 아니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직선제 규정 논란은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장기간 누적된 홍콩인들의 사회경제적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위 명칭이자 지도부 역할을 하는 민주파 단체명이기도 한 오큐파이 센트럴은 경제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미국의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에 동참했다."고 말하는 시민들조차 수년간 중국인이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벌어진 갈등을 언급하며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4일 저녁 대규모 집회가 열린 애드리럴티(Admiralty). 현장에서 만난 31살 크리스틴은 중국 임산부의 홍콩 원정출산과 분유 파동을 예로 들었다. "의료시설과 홍콩 영주권 때문에 원정출산을 오는 중국인 임산부가 많아 홍콩인이 누울 병상이 없을 정도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중국인 부모가 아이를 낳아 홍콩의 복지 혜택을 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08년 중국 본토에서 멜라민 분유 파동이 났을 때 중국인들이 홍콩 분유를 싹쓸이 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했다. 홍콩 부모들은 오히려 분유를 구하느라 고생했다.“

2011년 홍콩에서 태어난 신생아 95,000명 가운데 중국 임신부의 아이가 44,000명에 달할 정도로 원정출산이 기승을 부렸다. 홍콩인의 출산율 저하에도 불구하고 홍콩 병원은 중국인 임산부의 원정 분만 때문에 오히려 업무 과중에 시달려왔다. 중국인 임산부 중 일부가 병원비도 내지 않고 잠적해버리는 통에 의료 재정 손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홍콩정부는 외지인의 의료비를 인상하고 출산 인원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했지만, 문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2013년부터 원정출산을 전면 금지했다.

몽콕(Mong Kok) 시위 현장에서 만난 쩌우모씨는 "본토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홍콩은 침체된 상태다. 중국인들이 홍콩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임대료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홍콩 번화가에서 2살 아이에게 노상방뇨를 시킨 사건이 보도되며, 이를 비난하는 홍콩 네티즌과 반박하는 중국 네티즌 간에 온라인 설전이 벌어졌다. 자녀를 홍콩에 유학 보내는 중국인이 늘면서 중국 접경 지역 홍콩 학교의 교실이 부족해 홍콩인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거듭된 정치·경제·문화적 갈등은 홍콩인들의 반중 감정을 키워왔다.

몽콕 거리에서 만난 알렉스는 "현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영국 소속이던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시는 '식민지'였고 행정장관 역시 영국이 파견한 외국인이었다. 정치는 물론 기업에서도 최고 자리는 외국인 몫이고, 홍콩인은 돕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인과 홍콩인 비율이 5:5는 된다. 홍콩인도 일인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큰 변화다." 그는 또 "홍콩인들 사이에는 서구화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글로벌 도시 시민이라는 우월감 같은 것이 있다."면서 "우리보다 못한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받아들이기 싫은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시위대 협상 결렬 ... 강경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시위대 대표부는 홍콩 정부와 협상이 결렬된 후 더욱 강격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번 시위가 '반중국' 혹은 '분리독립'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즈베이웨이의 상점가에서 만난 스테파니는 "시위 현장을 방문하거나 지지 선언을 하는 연예인은 있지만, 경제 분야의 명사 중에는 아무도 발언하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홍콩은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루탄 진압 소식을 듣고 젊은이들에게 빚진 마음이 들어 매일 시위 현장에 나온다는 58살 렁모씨는 시위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정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12체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중국 뜻에 따라 언젠가 홍콩도 사회주의 체제로 편입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의미다. "1997년 반환 당시 많은 친구들이 이민을 갔다.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홍콩인들도 서서히 자유와 자기 자신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이민을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진 것 없는 지금 젊은이들은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는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이미 자신감을 잃은 듯 보였다.

이 글은 1012<프레시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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