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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시위의 배경 및 전개과정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4-10-03 17:02:19
  • 수정 2014-10-03 18: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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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중국반환 이후 17년이 지난 홍콩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봉착해 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긴 하지만, 홍콩과 같이..
1997년 중국반환 이후 17년이 지난 홍콩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봉착해 있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긴 하지만, 홍콩과 같이 소득수준이 높고 나름 고도의 자유를 누리던 공동체의 민주주의 염원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한편 안타깝긴 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홍콩 시민이 홍콩의 최고 대표자를 직접 선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당국도 중국반환이 가시화되자 부리나케 중국계 주민을 대상으로 민주적 제반 시스템을 선사했지만 행정책임자(총독은 어쩔 수 없더라고 해도)를 직선으로 뽑게 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초기 약속
1984년 협정에서 영국과 중국은 홍콩에게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50년간 자본주의를 유지하며, 2017년에 홍콩인의 총투표로 지도자(행정장관)를 선출하고, 독립적 사법제도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변심(?), 본심(!): 껍데기만 남은 총투표 약속
그런데 2014년 8월말 중국 정부는 2017년 총투표는 보장하지만 행정장관 후보는 중국당국이 추천하는 인사로 제한하겠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판사도 애국적 인사들로 임명하겠다고 주장하면서 행정 및 사법 분야의 중국 통제를 공고히 하려고 하고 있다.
 
그럼 덩샤오핑이 당초 약속한 직접선거가 시진핑에 와서 어떻게 껍데기만 남았는지 아주 유사한 홍콩미인대회와 비교해 보겠다. 홍콩의 어느 시민이 자신의 페북에 상세히 비교를 했다. 
 
아래 그림의 왼쪽은 미스 홍콩을 뽑는 미인대회로 156,000명의 시청자가 투표로 미스 홍콩을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2017년 행정장관도 원칙적으로는 홍콩 유권자의 직접선거로 뽑는다. 하지만 두 선거 모두 후보 선출에 비밀이 있다. 미인대회는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투표에 붙일 3명의 최종 선발자를 가린다. 즉, 시청자들은 이들 세 명 중 한명을 골라야 한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도 1,200명의 선출위원회의 반 이상 추천받은 후보들만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선출위원회의 선출은 일반 직접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즉, 중국 당국의 입맛에 맞는 선출위원회가 거기서 거기인 후보들만 올리면 유권자의 선택은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 미인대회선발과 유사한 행정장관 선출 시스템
 
사실 홍콩반환 이후 행정장관은 계속 간접선거로 선출해 왔다. 그런데 행정장관을 결정하는 선출위원회를 홍콩시민이 뽑기는 하지만 인구비례가 아닌 직역이나 전직관료 그룹 등으로 할당하여 일반적 보통선거와는 거리가 있는 선거제도였다. 특히 친중국인 직역(동양의학 등)에서 더 많은 선출위원을 할당하여 결과적으로 친중국 인사가 행정장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불합리를 홍콩시민도 잘 알고 있었지만 2017년 직접선거 약속을 그나마 하나의 희망으로 보고 버티지 않았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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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행정장관과 선출위원회 정원: 중국당국은 선출위원회를 계속 늘려가면서 친중국 인사의 진입을 넓혀왔다.

센트럴 점령 운동의 태동

20131월 홍콩대학 법대교수였던 Benny Tai는 중국의 행정장관 직접선거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전면적 시민불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 베니 교수는 결국 2014620일부터 29일까지 비공식적인 총투표를 실시했다홍콩시민 792,808명이 참여한 이 투표운동을 기반으로 홍콩반환 17주년일인 71일 대규모 평화시위를 벌였다


*총투표 운동

          

                * 올 여름 센트럴을 가득 메운 시위대

 

* 센트럴의 야간 시위

 

*시위에 참가한 젊은 여성

 
하지만 센트럴 점령(Occupy Central) 운동은 8월말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홍콩시민의 직접투표는 보장하지만 미인대회식 선발을 고집하고 판사선출에도 개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방향을 잃게 됐다. 조금의 양보도 고려하고 있지 않은 중국을 대상으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97일 시위에는 불과 수십 명만 모여 물대포를 견뎌야 했다

 
 

친중국파의 반격
사실 홍콩 내에는 민주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97년 반환이후 홍콩경제는 중국경제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친중국 세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대륙에서 넘어온 이주민들도 친중국파의 주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관제데모의 성격이 크긴 했지만 2014년 8월 17일 침묵하는 다수 또는 홍콩을 염려하는 이들의 모임 등 친중국파가 주도한 시위에 수천 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 친중국 시위대

 

친중국파나 중국정부는 민주파에 대해 식민지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직접선거를 왜 지금에서 그토록 요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거나 또는 이들이 식민시절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아래 시위처럼 민주파 시위에 종종 등장하는 식민지 홍콩 깃발을 보면 친중국파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100년 이상의 영국인 지배기간 중에 민주적 선거제도나 홍콩시민의 정치적 지위 확대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반환이 결정되자 급하게 영국이 도입한 민주시스템을 제외하면 더욱 그렇다. 

* 일부 반중국시위대: 중국식 민주의자들은 나가라! 영국이 그립기까지 하다(?)  

 
홍콩 금융허브의 지위 변화
또 하나 고려하여할 것은 17년이 경과하면서 중국 속 홍콩의 역할이 변화되고 있는 점이다. 
우선 홍콩은 치솟는 집값, 중국 정부의 개입 노골화, 대기오염 등의 문제로 인해 금융허브의 매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 20084분기의 집값 수준을 100으로 놓고 보면 홍콩은 20142분기 현재 235.3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아직은 본격화 되고 있지 않지만 글로벌 금융기관의 아시아 본부를 이제 홍콩이 아닌 싱가포르에 두려는 시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 틈을 노려 도쿄도 아베노믹스의 활력을 바탕으로 그동안 이루지 못한 금융허브의 꿈을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마스조에 도쿄도지사는 최근 "홍콩에서 영어가 통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강점이다. 하지만 자유는 여기 일본이 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업은 홍콩 경제에서 15.9%나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홍콩의 금융허브 역할이 흔들리면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불안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4대 회계법인의 대표가 민주화 시위가 자칫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를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성명을 광고로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광고 직후 해당 회계법인 직원들은 별도로 아래와 같은 맞대응 광고를 냈다.
 
 
중국어를 못해 영어 표현에 근거하여 옮기면 "여봐요, 사장님들, 당신의 성명은 우리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아요." 라는 뜻이라고 한다.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단지 홍콩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17년 전에는 중국 공산당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자본시장은 홍콩이었다. 유일하기도 했지만 그 규모도 중국경제 대비 7%나 되면서 작지 않은 경제권이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홍콩의 금융허브로서의 중요성은 더 이상 중국공산당에게 그렇게 크지는 않다. 당장 상하이 시장을 오픈한다고 하면 홍콩의 역할은 크게 감소할 것이다. 중국경제 규모 대비 홍콩비중은 지금 2.7%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홍콩 반환 시점에는 중국이 보다 홍콩을 원했으나 지금은 홍콩이 보다 중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참고 그래프를 보면 홍콩의 GDP 성장은 반환이후 매우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또한 두 번째 그래프를 보면 상당수 홍콩 사람의 돈이 대륙에 투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제적 면만 보면 홍콩은 이제 중국과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낮아지던 중국에 대한 불신은 2008~9년을 저점으로 급격히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와 야당 정치인이 주도하는 Occupy Central에 대한 지지는 9월 초 까만해도 소수에 불과했다. 솔직히 학생들의 등장이 없었다면 Occupy Central은 흐지부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홍콩인과 대륙인의 뿌리깊은 반목
솔직히 홍콩의 반중국 흐름에는 뿌리 깊은 반목이 내재되어 있다. 단순히 자본주의 vs 사회주의 또는 민주주의 vs 일당독재 대결 이상의 문화적 충돌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첨밀밀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대륙에서 건너온 여명과 장만옥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대륙에서 이주하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홍콩인의 불만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 원정출산 쇄도와 유아 물품 싹쓸이 등 생활상의 스트레스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홍콩에서도 광동어의 지위는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미 홍콩 택시기사의 상당부분은 영어나 광동어가 잘 안 통하는 대륙인으로 바뀌었다.
 
이런 미묘한 긴장관계의 홍콩인들을 격노한 사건이 올 봄에 발생했다. 아래 사진은 올 4월 몽콕 거리에서 찍힌 것으로 대륙인 부부와 큰일에 충실한 아이의 모습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홍콩시민의 반중국 관광객 시위로 이어졌다.
 
                  * 인민복 모자(문혁시절 홍위병이 쓰기도 했던) 차림의 아저씨기 인상적이다
 
 
중국관광객의 몰상식에 분노한 홍콩시민들이 지역신문에 대륙인을 메뚜기에 비유한 광고를 싣기도 했다.
 
그런데 대륙인의 정서를 감안하면 홍콩인의 깔끔 떠는 모습은 사실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른다. 신화통신이 12만8천명의 중국인을 조사한 것에 따르면 63%의 중국인은 상황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쉬를 하는 것은 봐줄만 하다고 했다. 상황 따질 것 없이 괜찮다는 의견 24%를 합하면 87%의 중국인이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의 용변 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다. 
 
즉, 홍콩인과 대륙인은 문화적 정체성이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국양제든 뭐든 UK내 잉글리쉬와 스코티쉬 이상으로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았고 특히 홍콩인은 대륙인에 대해 문화적 우월성과 자부심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제 대륙에 의존하는 형국이지만 문화적 코드와 정서는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시위문제가 단순히 정치, 경제적 이슈로만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홍콩학생들의 동맹휴업으로 새로운 동력 발생
 하여간 Occupy Central이 힘을 잃어가던 시점에 극적인 변화가 생긴다. 바로 홍콩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동맹휴업이다. 
 
9월 22일부터 홍콩의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결의하기 시작했다. 최소 13,000명이 가담한 동맹휴업은 민주파 시위에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또한 운동의 구심을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은 지난 금요일(26일) 밤부터 센트럴 내 홍콩행정청 앞 광장을 점거하여 시위를 이어갔다. 
 
* 학생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수만 명이 이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최초로 경찰과 충돌했다. 
 
 
*홍콩 경찰이 수성하려고 하는 깜종(Admiralty) 지역의 행정청 바로 옆은 이 지명의 유래에 걸 맞는 군기지이다. 바로 인민해방군 기지이다.
 
 
금요일부터 시작되어 일요일에 이른 학생시위대는 9월28일 일요일 오후에 3만명 정도 모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위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 시위이자 가장 폭력적 충돌을 벌인 시위 또는 그 시발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제 시위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Benny Tai 교수 중심의 시민사회 또는 민주파 의원 중심이 아니라 17~23세인 고등학생부터 대학생의 시위대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실제 이들 지휘부인 홍콩학생연대(HKFS)는 베니 교수와 다른 독자적 요구를 하고 있다. 바로 단 하나의 목적 완전한 직접선거 요구다. 베니 교수 측은 직선제와 정치개혁이라는 2가지 요구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베니 교수가 제2의 운동으로 바라봤던 10월1일부터 예정인 전면적 시민 불복종을 일요일 새벽으로 앞당기겠다는 발표를 했다.
 
또한 교직원노조는 월요일부터 센트럴로 출근하여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처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시위에 익숙하지 않았던 홍콩 학생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끌고 갈지 손에 땀을 쥐어가며 지켜봐야겠다. 
 
* 일요일 오후 경찰의 무력진압 모습
 
 

하지만 무자비한 반동의 힘 
시위에 익숙하지 않기로는 홍콩 경찰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홍콩 경찰이 이번 시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중국당국은 대륙의 공안이나 인민해방군을 파견할 지 모릅니다. 
사실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한 것은 중국이 현재 권력질서의 재편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덩샤오핑이 수립해 놓은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면서 다시 일인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 시진핑이 반부패를 명분으로 상무위원들의 권력견제를 거두고 문화혁명을 일으켰던 마오쩌뚱이나 천안문 학살의 덩샤오핑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복원 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일요일 홍콩당국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 결과 홍콩 진압경찰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시위현장에 나타났다. 바로 라이플과 자동소총이다. 물론 해산하지 않으면 쏘겠다는 친절한 경고를 잊지는 않고 있다. 
 
* 경찰의 해산하지 않으면 쏘겠다는 경고.... 
 
 
* 라이플로 의심되는 무기를 가진 진압경찰들
  
* 수적 열세를 총기로 극복해 보려는 어리석은 홍콩 경찰들
  
* 결국 고무탄은 발사되었습니다. 아직 실탄이 발사되지 않은 것에 위안을 가져야 할지 고민이다.
  
 
9월29일 현재, 센트럴 지역이 은행가이다 보니 일부 은행의 지점들이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지역은 경찰의 봉쇄로 신분증이 없으면 직장으로 출입이 어려운 지경이다. 
홍콩금융감독청(KHMA)은 지금 은행망을 유지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자칫 사태가 장기화되면 아시아 금융허브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줄 가능성도 있다.
 
                * 길에서 밤을 보낸 학생 시위대 모습. 아침기온 28도인데 곧 30도를 넘을 것 같다. 
  
홍콩 당국은 더 이상의 충돌사태를 피하기 위해 경찰병력을 뒤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만 간헐적으로 중국 공안이나 군부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중국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시위구호는 원래의 완전한 직선제 관철에서 일요일 충돌부터는 현 행정장관 Leung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다른 구호를 압도하는 분위기로 보인다.  
 
 *29일 월요일 밤의 홍콩거리 속 두 학생: 희망은 인민에 있고, 개혁은 항쟁에서 시작한다(?) 화평항쟁, 불굴불?


현재 홍콩 시위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심각한 것은 단지 센트럴에 시위대가 많이 모였고 최루탄을 쏴대며 경찰이 진압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본론에서 언급했지만 지금 시위대 주력은 동맹휴업을 결의한 고등학생에서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시민사회 그룹에 비해 비타협적이며 시위진압 방식에 따라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크다.
 
또 하나는 홍콩 민주화 그룹이 제일 염려하는 상황인 중국의 개입이다. 즉 홍콩 경찰력으로는 이 시위를 막지 못하게 되고 홍콩 내 금융거래 안정성이 위협을 받을 때 중국 공산당이 어떤 조치를 취할 지에 대한 우려다. 더욱이 집단지도체제가 붕괴하고 시진핑 1인 독재체제가 중국에서 자리를 잡는 시점이어서 자칫 강대강의 유혈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지켜봐야 할 대목은 시위대 자체보다도(물론 중요하지만) 홍콩 내 은행 영업과 트레이딩의 지속성 이라고 생각한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느라 다소 두서없게 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인기 인터넷 포럼 클리앙(CLIEN)에 Santacroce님이 올리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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