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제3회 한글사랑 글짓기 공모전 대상作 - 돌아서서 걷는 길 (2)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3-11-03 22:37:06
  • 수정 2013-11-03 22:37:29
기사수정
  • 홍콩한인여성회 & 위클리홍콩 주최

한지수


녀석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녀셕이다. 초등학교 때 가끔 나를 찾아와 자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며 친한 척을 하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고 돌아서곤 했다. 나는 그런 동호가 다가올 때면 위축 되었고, 만날 때 마다 나는 오늘은 또 무슨 꼬투리를 잡고 짜증을 낼지 걱정스러웠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에서 그럭저럭 적응해 가고 있는 내 앞에 다시 동호가 나타났다. 내가 홍콩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그 친구가 우리 교실로 찾아와 교실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날 불렀다.
“어이, 친구! 반가워! 홍콩 가서 잘 살줄 알았는데 왜 다시 왔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필기에 집중하는 것 마냥 노트에 샤프를 그어 댔다.
“야! 넌 내가 반갑지도 않냐? 짜슥이 홍콩 갔다 왔다고 한국말도 다 까먹은 거야?? 그런 거야? 중국어로 해 줄까? 아님 영어로?”

반 친구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저 녀석이 빨리 돌아가기만을 바랬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타박타박 교실 안으로 들어와 내 책상 옆에 섰다.
“야! 윤민수! 너 외국 물 먹더니 좀 건방져 졌구나? 친구랑 인사 할 줄도 몰라? 야! 친구를 만나면, 일단 눈을 마주쳐야 하는 거야. 그래야 어떤 친구가 널 부르는지 확인을 하지. 야! 니 친구가 이 공책이냐! 엉? 이 자식 완전 친구와의 인사법부터 가르쳐 줘야겠네! 야!! 눈 깔지 말고 쳐들어!!!”

갑자기 살벌해진 분위기에 얼음처럼 온몸이 딱딱해진 나는 눈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그때 반장이 일어섰다.
“최동호! 쉬는 시간에 남의 반에 와서 뭐 하는 건데? 니 친구 인사법 가르쳐 주려면 교실 밖에 나가서해. 우리 공부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그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야! 윤민수! 내가 나중에 제대로 된 인사법을 가르쳐 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라. 알겠냐?” 하며 내 머리에 딱 밤 두 대를 때리고 후다닥 자기 반이 있는 쪽으로 뛰었다.

그날 이후에 나는 동호를 계속 피해 다녔다. 점심때는 매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혹시 매점에서 만나게 될 까봐 물도 간식도 집에서 가져오고, 쉬는 시간엔 내 자리는 비워 놓고 맨 앞줄 창문 쪽에 빈자리가 나면 거기에 엎드려 있었다. 동호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장인의 손길로 높은 성벽을 쌓아 올려 이젠 장엄하고 예술적인 미가 흐르는 나만의 성에 엄청 큰 망치를 들고 와 한방에 깨 버릴 것만 같은 무서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내 성을 지키기 위해선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게 동호였다. 그렇지만 동호를 다시 만난 건 결코 피할 수 없는 곳에서였다.
“오호~ 윤민수! 니 오늘 오줌 빨 좀 선다?”

동호를 피하기 위해 우리 교실보다 한 층 아래에 있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내 뒤통수에 대고 동호가 외쳤다. 나는 참고 참다가 몰아서 한 번에 소변을 보는 버릇이 있어 동호의 말을 고스란히 들으며 오랫동안 소변기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 너 다시 한국 다시 온 이유가 니 네집 쫄딱 망해서라매? 예전에 살던 집도 날리고, 지금 지하에서 산다메.. 아, 그리고 어쩌다가 니 아빠는 다리 병신이 됐냐? 쯧쯧쯧 딱해라. 인생 모르는 거네. 잘나가던 윤민수가 홍콩 가서 완전 거지새끼 된 거잖아!! 거지새끼!!!!”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동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등을 휙 돌려 눈을 부릅뜨고 동호를 쳐다보는데, 동호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말했다.
“야야야!!! 이 새끼야! 오줌을 어디다 싸!!! 내 바지에 니 오줌이 다 묻었잖아! 이 개자식!! 너 일부러 그랬지? 야! 이 오줌 지린내를 어떡할 거야?”
‘앗, 이런, 큰일이네. 어떻게 하지?’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변기에 소변을 보던 내가 몸을 그대로 뒤로 돌려 동호에게 소변을 보고 있었다. 동호랑 같이 있던 애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구역질이 나는 듯이 “우웩”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속으로 어떻게 하지를 수십 번 외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내가 저지른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교실로 도망갔다.

동호는 집에 전화를 걸어 새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고, 동호 어머니는 단숨에 달려 왔다. 담임선생님이 부른다고 해서 내려간 교무실에는 화장을 덕지덕지 한 동호 엄마가 선생님과 함께 있었다. 동호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셨다.

“너니? 우리 아들 바지에 오줌 싼 애가?”
담임선생님은 예의바르지만 단호한 어조로 동호 어머니를 말렸다.
“어머니, 소리 지르지 마세요. 여기 다른 선생님과 학생들도 있잖아요. 민수한테는 제가 잘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에요? 저렇게 정신 이상한 애랑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리병신 아빠에 식당에서 설거지 하는 엄마 밑에서 뭘 배웠겠어요. 애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야 말을 해도 알아 쳐 먹는 거죠!”

우리 집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내 뱉으며 가정교육까지 들먹거리는 동호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머! 쟤 좀 보세요, 선생님. 지금 내 말이 듣기 싫다는 거죠? 그래서 귀에 이어폰을 슬쩍 꽂고 있잖아요. 어이없네요. 저런 애는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큰 사고 칠 놈이라고요. 완전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얼굴 실릴게 뻔해요. 지금이라도 따끔하게 벌을 주지 않으면, 저 버릇은 결코 고칠 수 가 없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 흥분 가라앉히시고 나가서 말씀 나누시죠.”
담임선생님은 동호 어머니를 데리고 나가시며 나에게 단호하게 “책상에서 반성문 쓰고 있어!”라고 말씀 하셨다. 반성문을 쓰고 있는 동안, 영어 선생님이 다가왔다.

“너가 홍콩에서 전학 온 애지? 오자마자 말썽이냐? 동호 어머니 화 나셔서 어떻게 하냐? 학교 시끄러워 지겠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아라. 너희 담임선생님께서 공정하게 잘 처리해주실 거다. 너도 알지? 진짜 좋은 분인 거! 완전 천사야.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이쁘다. 대한민국에 최고야! 너네 선생님이 너 전학 올 때 적응 못할까봐 신경을 많이 쓰셨다.”

정말 그랬다. 처음에는 학기 중에 갑자기 전학을 온 나에게 별 말씀이 없던 터라 나 같은 애한테는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전학 서류를 갖고 상담을 온 어머니와 오랜 시간 예전 가정 분위기와 현재의 가정형편, 내 성격 등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상담을 했다고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내가 마음 문을 열 때 까지 그냥 지켜봐 준 것이다.
“너가 먼저 시비를 걸진 않았다는 거 잘 알지만 그렇다고 친구한테 오줌을 누다니, 그건 잘못한 거야. 알지?”
“네에.”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거란다. 선생님은 민수가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선생님과 함께 용기 내어 보자꾸나.”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홍콩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다니던 국제학교에는 규칙과 규율이 정해져 있다. 이 규칙 안에서 모든 학생들이 보호를 받으며 지내게 된다. 그렇지만 어떨 때는 그 규칙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정(情)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어 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근함을 느끼는 정. 결코 혼자가 아닌 함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느끼며, 함께 웃을 때 더 커지는 정. 나는 선생님을 통해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조금씩 알아 가는 것 같았다.

/계속....

ⓒ 위클리 홍콩(http://www.weeklyh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홍콩 미술 여행
본가_2024
홍콩영화 향유기
굽네홍콩_GoobneKK
신세계
NRG_TAEKWONDO KOREA
유니월드gif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