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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정치·행정 중심지 가스미가세키의 '관청가' 전경 |
'탈(脫) 관료화'를 선언했던 일본 집권 민주당이 다시 관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본병(病)의 주원인을 관료주의로 진단하고 '관가 개혁'에 나선지 1년여 만에 백기 투항한 셈이다.
지난 2009년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를 종식시키며 정권교체에 성공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은 집권 첫 역점사업으로 관료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이같은 작업은 도쿄의 정치·행정 중심지인 가스미가세키의 이름을 따 '가스미가세키 개혁'이라 불렸다.
민주당 정권은 '정치 주도'를 선언하고 정치인 출신을 내각 전면과 부처 일선에 내세웠으며 관료들로부터 인사권 등 기득권을 가져와 행정 효율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기존에 국정을 좌지우지해 왔던 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일례로 새 정권이 추진했던 법무·검찰 개혁은 무기력하게 역공을 당하면서 사실상 실패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중도 사퇴했으며 오자와 전 간사장은 검찰심사회로부터 강제기소를 당했다. 검찰총장의 민간인 기용 등 개혁안도 결국 물 건너가게 됐다.
간 나오토 내각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치 주도의 깃발이 내려지고 국정이 다시 재무성을 비롯한 관료사회의 손 안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우선 간 총리 스스로 관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간 총리는 최근 관저로 각 부처 사무차관들을 불러 모았다. 주로 직업 공무원들인 사무차관은 일본 정부 부처의 최고위직이다. 겉으로는 총리가 이들에게 '훈시'를 하겠다는 자리였지만 사실상 정치 주도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관료들의 힘을 빌리겠다고 선언한 자리였다.
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정치 주도는 현실적인 국정운영에서 지나치거나 부족하거나, 여러 가지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권교체 1년을 되돌아보고 보다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관료들에게 정권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다.
산케이신문은 간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의 관료 배제 태도가 바뀌어 이제는 관료의 힘을 활용해야 정권 운영이 가능하다고 인식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 총리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이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민주당 집권 직후 관료주의 상징인 사무차관회가 폐지됐다. 대신 정치인 출신의 대신, 부대신, 정무관이 참석하는 정무3역회의가 정책을 결정해 왔다. 그러나 간 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이 회의에 사무차관들도 참석케 했다. 정무3역만으로는 부처를 효율적으로 조정하지 못하고 행정지연 사태마저 발생하자 결국 관료들의 힘을 다시 빌리게 된 것이다.
'탈 관료' 선언이 무색해질 정도로 간 총리의 태도가 변하면서 간 총리는 '관(官) 나오토'라 불리기도 했다. 특히 최근 그가 주도하고 있는 소비세 인상 논의를 두고서도 '관료 주도의 증세를 목표로 한 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 경제지 겐다이비즈니스는 세금 징수가 본연의 임무인 관료들은 일반적으로 증세를 지향한다며 탈 관료를 외치는 정권이 관료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증세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모순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모순이 부각되면 간 나오토 정권의 붕괴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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