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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인터뷰] 홍콩한인사회에 기부 문화 선도하는 원로교민 이내건 씨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10-21 12:56:15
  • 수정 2010-11-04 10: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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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8호, 10월22일
여기 이사람
홍콩한인사회에 기부 문화 선도하는 원로교민 이내건 씨


 지난해부터 한국국제학교(KIS)에 장학금 50만불과 발전 기금 5만불 등을 기부하며 화제가 되었던 원로교민 이내건(흥아해운 명예회장 겸 Kong Hing Agency 명예고문)씨가 이번에는 홍콩한인상공회 건립기금으로 20만 홍콩달러를 쾌척해 홍콩한인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홍콩의 유력 선박·해운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던 이내건 씨는 수년 전 홍콩한인회에서 이사로 봉사하기도 했고, 홍콩한인상공회 7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는 KIS 발전기금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3일 상환에 있는 코스코타워 14층 Kong Hing Agency LTD 사무실에서 만난 이내건 씨는 "지난 40여 년간 함께 성장해 왔고 몸담아 온 홍콩한인사회에 나는 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받은 게 큰 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청한 기자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위클리홍콩 기자가 "오랜 세월 홍콩한인사회 발전에 이바지해 온 이내건 씨가 한인회(한국국제학교)와 한인상공회 등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홍콩교민사회에 기부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나보다 먼저 박병원 씨를 비롯, 많은 홍콩의 원로들이 이미 그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내건 씨는 이어 "한국국제학교는 특히 우리 아이들이 홍콩에서 학교를 다녔었고, 집사람이 토요학교 교사를 맡은 적도 있어 마음이 가는데,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2세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국국제학교만큼은 잘 돼야한다"며 홍콩 교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다음은 이내건 씨와의 일문일답.

홍콩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는지.
▶ 1970년대에 홍콩에 들어왔다. 초기에는 중국 심천과 동관 등에 현지 공장을 세워 무역업을 했었고, 현재는 흥아해운의 명예회장이자 콩힝에이전시(Kong Hing Agency)의 명예고문이다. 해운업계의 일을 한지도 벌써 38년째다.

이번에 상공회관 건립기금으로 20만불을 쾌척하셨는데, 상공회장을 역임한 전임 회장으로서 지난 일을 회상해 볼 때 가장 의미 있는 일을 꼽는다면?
▶ 내가 회장을 맡을 당시인 1987년도에는 상공회의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당시는 한국과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기 전이었는데, 그때 상공회에서 중국과 투자 유치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다. 중국과 한국이 만나는 첫 공식 회의였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한국의 모든 매체들이 인터뷰를 요청해 왔는데, 한국 정부에서 '이게 중국 중앙 정부의 방침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너무 일찍 매스미디어에 정보를 흘리면 안 된다'고 입장을 밝혀 물밑에서 행사를 진행했었다.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중국 지방정부 및 기업을 공식 접촉하고 투자 유치 캠페인을 벌였던 것에 아주 큰 의의를 두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모습을 그린 소설 '피아노 교사(The piano teacher)'의 작가 '재니스 리(Janice Lee)'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성공적인 자녀 교육을 위해 한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 내가 사업으로 바쁘다 보니 교육은 집사람이 대부분 신경을 썼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 이후로 미국을 수시로 오가며 아이들의 친구관계부터 학교 공부까지 일일이 점검을 했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들로부터 관심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된다.

또 무역과 해운업을 해온 나는 중국이 지금처럼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북경어를 철저하게 가르쳤다. 북경어 교사를 찾아보기 힘든 미국에서 어렵사리 교사를 구해다 배우도록 했는데, 지금 사업에 뛰어들어 200%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잠재력은 무한하다. 아이들의 북경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바란다.

홍콩에서 40여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는?
 ▶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하기 전 수출 무역이 먼저 됐는데, 당시 화물 수송을 대부분 내가 했다. 중국 정부에서 보면 불법 교역이라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굉장히 조용하게 무역을 했는데 이 때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재판이 발생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이 중국 천진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원료를 파는 계약서를 만들어 한국에 팔았다. 선장이 화물 5000톤을 싣고 마닐라로 가지 않고 부산에 다녀왔는데 그게 로그 북(log book)을 통해서 밝혀졌다. 중국 정부 측에서는 계약을 위반하고 다른 장소로 갔으니 밀수라고 주장하면서 화물을 압수하고 선장을 구속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커지는 일이라 회사 직원이 가서 선장을 내보내고 재판을 진행했다. 결국 지방 법원, 고등 법원을 거쳐 국무위원회로 가게 됐다. 국무위원회 재판을 하게 되면 언론이 알게 되는데, 중국정부가 '이 재판을 통해 중국과 한국 모두 얻을 게 없다'면서 절충안을 내놓아 해결이 됐다. 아마 한·중 법률 투쟁의 첫 사례일 것이다.

이내건 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홍콩의 더위도 예전 같지 않아 버티기가 힘들다"며 "세상 여기저기 다니며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또한 한인회나 상공회에 대해 선배로서 조언을 해달라고 주문하자 "사업하면서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치 내 일같이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하며 홍콩한인회와 상공회의 봉사자들에 감사를 전했다.

<인터뷰어 : 위클리홍콩 인턴기자 유경진(ykjrach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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