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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특집] 로사의 청도 기행 1 - 떠남.... 그 흔들리는 설렘을 위하여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08-05 12:16:44
  • 수정 2010-08-12 1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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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7호, 8월6일
 떠남.... 그 흔들리는 설렘을 위하여


사람들이 묻는다. 올해는 어디를 가실건가요? 러시아는 작년에 다녀왔고, 이집트도 다녀왔던데 왜 몽고는 안가세요? 아프리카는요? 참, 중국은 왜 한 번도 안 가시는 건가요?

대화만 엿들으면 딱 프리랜서 여행가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어느새 내가 우리 교민들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아주 자유로운 여행가로 자리매김 한 모양이다.

아, 난들 왜 또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얽히고 설켜 숨통을 조여 오는 일들, 미묘한 인간관계, 불끈거리며 치솟는 울화를 억누르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불쑥불쑥 여행이야기를 하면 내 속에 단단히 매어놓은 몹쓸 놈의 고삐가 스르르 풀리고 마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이 다 자라서 이제 사춘기가 됐다. 그래서 세상을 불태우고도 남을 생생한 불씨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춘기 애들을 집에 남겨두고 감히 훌쩍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오매불망 엄마가 올 때만 기다리던 나이, 어릴 때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내 아이들과 남편이 내 마음을 간파했는지 한꺼번에 한국으로 갔다. 나 혼자 집에 남았고, 천우신조로 우리 위클리홍콩도 딱 휴간이다. 이건 떠나라는 신호탄이다. 자, 떠나자!!


가자 칭다오로
몇 년 전부터 약속을 했었다. 여름이 되면 꼭 한 번 찾아뵙겝겠노라고... 그리곤 아직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럴듯한 공약만 무성하게 내세워 국민들을 현혹시켜온 정치인처럼 여기저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칭다오로 전화를 건다. 이번 주말에 갈 건데 문제없으시겠느냐고, 스케줄을 체크해 보신 그분은 다행히 이번 주말만 빈다며, 걱정 말고 오라신다.

부랴부랴 하루 전날 칭다오로 가는 드라곤 에어 비행기 표를 한 장 구해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정신없이 가방을 꾸린 후 야반도주하듯 집을 나선다.

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고, 더러는 캐세이 항공, 아주 가끔은 타이 항공도 이용해 봤지만 드라곤 항공은 난생처음이다. 청도로 가는 홍콩 국제공항의 탑승게이트가 4번이다. 우리나라 항공기가 대충 10번 이상의 게이트를 배정 받고, 태국 항공의 경우 기차까지 타고 가서 탑승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하는데, 역시 자국항공기에게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게이트를 배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4번 게이트 앞에 무수한 중국인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다. 시·끄·럽·다. 참 신기하다,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건 중국인들은 참으로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인내심이 많은 나도 많은 걸 잘 참아내지만 이렇게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정말 참아내기가 힘든데 그들은 그렇게 계속 떠들어 댄다. 내가 그동안 중국 여행을 꺼려왔던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드라곤 에어
비행기는 10시40분 출발이다.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린다. 출발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른다. 11시를 훌쩍 넘긴 후에야 비행기는 신경질적인 굉음을 내며 이륙을 한다.

수면제라도 먹은 양 잠이 쏟아진다. 나는 왜 이 굉음만 들으면 이다지도 잠이 쏟아지는 걸까.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질색을 하면서도 이 무미건조하고 날카로운 기계소리만 들으면 잠의 나락으로 깊숙이 빠져드는 건 왜일까. 언제나 그렇듯 짧은 시간 깊은 잠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을 자다가 딸그락 대는 소리에 서서히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한 순배 돌리난 후, 지금은 점심을 준비하나 보다.

 철가방, 아니 철구루마를 끌고 승무원들이 등장을 하고, 생선과 감자 or 돼지고기와 밥 중 어떤 걸 먹겠느냐고 물어온다. 이것저것 다 맘에 안 든다. 돼지고기와 밥을 달라 하여 도시락 뚜껑을 연다. 밥 한 주먹에 돈가스처럼 튀긴 돼지고기 몇 점이 나온다. 양상추 몇 장과 마요네즈 드레싱에 할 말을 잃는다. 힘이 갑자기 쭉 빠진다. 넓은 그릇에 뜨끈뜨끈한 밥을 부어서 참기름과 고추장을 듬뿍 넣고 쓱쓱 비벼먹는 우리나라 항공기의 푸짐한 기내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국적기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곤 하는데, 아무 주저함 없이 "기내식 때문에요"라고 대답하던 이들의 말이 생각난다. 그럴 만도 하겠다.

 밥을 먹으며 영화라도 보려고 이어폰을 꺼낸다. 이어폰 커버가 헤져서 너덜댄다. 매우 당혹스럽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어폰이라도 있고, 의자에 개인 화면이 달려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다며 위안을 삼는다. '그래 매 순간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자.’

잠시 후, 면세품 판매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여자용 선물을 구입하지 못한 게 생각이 나서 한 가지를 골라 주문한다.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사라진다. 5분쯤 지났을까, 미안하다며 재고가 없다고 한다. 다시, 한참을 뒤져 또 다른 화장품(립스틱)을 찾아 주문을 한다. 상황은 같다. 재고 확인하러 간다, 5분 후에 돌아온다, 재고가 없다. 미안하다. 끝.

휴, 이건 면세품을 팔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그러고 보니 이 항공기 내에서 면세품 사겠다는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왜일까? 나만 빼고 이들 모두는 드라곤 에어에 기내품 재고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님, 나 이외에 면세품을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아예 탑재도 안하고 다니는 걸까? 기내 면세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 항공기와 참 많이도 다르다 못해 신기하다.

2시55분에 칭다오 국제공항에 도착했어야 하는 비행기는 3시 30분께 도착된다. 창 밖에 서 있는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이 눈에 들어온다. 저 푸른색, 저 태극 마크를 보는 것만으로도 웬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온다.

칭다오 국제공항은 매우 깔끔하고 한적했다. 공항 직원이나 이민국 직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잔잔히 흐른다. 수없이 심천과 광주를 오갔지만 공항에서 중국 관료들이 이렇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건 처음이다. 매우 신·기·하·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가는데, 아주 예쁘고 깔끔하게 생긴 젊은 남자 공항직원이 활짝 웃으며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기에 영어로 길을 물어봤더니 계속 활짝 웃기만 한다. 공항 직원이 영어를 전혀 못·한·다. 그렇지 여긴 중·국·이·지.... 잠시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깜빡 홍콩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린다. 칭다오 공항에 한국인들이 꾸역꾸역 모여 든다. 머리모양을 다 같이 뽀글하게 볶은 한국 아줌마들과 후덕한 인격을 배와 허리에 투덕투덕 붙인 한국 아저씨들이 칭다오 국제공항을 가득 메운다. 우리의 아줌마 아저씨들의 고함 소리도 중국인 못지않게 참으로 우렁차고 크다는 걸 홍콩사는 동안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중국 칭다오 공항이 한국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로 분위기로 바뀐다. 여긴 중국이 아니라 한·국·인 듯 하다.

내 짐은 왜 이리 더디 나오는 건지. 30분을 기다려서야 저쪽 끝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다. 공항에 누굴 보내 나를 기다리게 한다고 했는데, 그를 어떻게 찾는담... 그런데 이건 또 뭘까.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커다란 한글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네모난 종이 안에는 "위클리홍콩 권윤희 대표"라고 떡 하니 써있는 게 아닌가. 잘생긴 한국인 젊은 총각 하나, 중국인 기사 하나가 우두커니 기다리다 내가 다가서자 반색을 하며 시커먼 자가용으로 나를 안내한다. 서귀성이라는 그 젊은이가 건네준 일정표에는 이렇게 써있다.

"위클리홍콩 권윤희 대표 청도방문일정"

아, 이건 아닌데.... 나는 완전 '무수리' 과라서 그 나라에서 죽으나 사나 돌아다니며 온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질퍽한 여행을 해야 하는데, 그분은 차량에 직원까지 동원해 2박3일 동안의 내 일정을 모두 책임질 모양이다.

하루아침에 숙종의 승은을 입어 승은상궁이 된 동이의 심정이 이러했으려나?...

/계속....

<글·사진 로사 권(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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