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는 것에도 서열이 존재합니다. 수 많은 법들 중 가장 으뜸이 되는 최고 법규는 단연 헌법 (Constitutional Law)입니다. 모든 국가의 법의 체계적 기초로서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을 책임지는 나라의 근본이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헌법 아래 존재하는 것이 입법부가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통해 통과시키는 법령이고, 그 아래 존재하는 것이 개인간 법률상의 관계를 규제하는 사법 (Private Law)입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간 논했던 계약법도 이론상 사법의 한 분야일 뿐입니다. 서열로 따지면 막내자식 정도 된다는 뜻입니다.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몇년 전 서울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법의 서열에서 헌법보다도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필자가 내린 답은 "자본주의"였습니다. 영국이나 홍콩같은 보통법 (Common Law) 국가들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돈으로는 안되는 것이 없다"는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낸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판사님이 알려주신 답은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가 국가의 최고 법규인 헌법보다 높은 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장판사님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사법부에 다시한번 감명을 받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2항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헌법 위에도 역시 국민이 존재하고, 결국 그 국민의 감정과 정서를 반영하는 "국민정서법"이 국가의 최고 법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양 철학의 창시자 중 한명인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가 기원전 4세기에 쓴 "정치학" (Politics)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옵니다.
"No democracy can exist unless each of its citizens is as capable of outrage at injustice to another as he is of outrage at injustice to himself" (자신이 겪는 부당함에 내는 화만큼 남들이 겪는 부당함에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나와 아무런 상관 없는 남이 겪는 부당함에 화를 내는 국민의 감정과 정서가 곧 민주주의라는 것의 존재와 직결된다는 뜻입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진정한 지혜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주 전 본 법률칼럼의 계약법 편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계약법이 이러한 국민정서법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서론에서 계약법이 매력있는 이유가 "지킬 수 없거나 또는 처음부터 지킬 의도가 없는 약속을 하는 사람들을 근절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한 나라를 존재 가능하게 하는 헌법, 그 위에 국가 최고 법규로서 존재하는 국민정서법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계약법이 매력있는 이유는 지난 몇 주간 보았듯 우리 옆에서 묵묵히 정의를 실천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홍콩같은 보통법 체계 국가에서 계약법은 실로 국민정서법처럼 정의의 실현과 부당함의 방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15째주 칼럼에서 다뤘던 형평법 (Equity)이라는 것과 함께 개인간의 약속에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고, 반대로 누군가 계약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하는 경우엔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계약법의 중요성은 계약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매달 일정한 월급을 받는 대가로 노동을 해주기로 계약을 했는데 월급날 입금을 하지 않고 고용주 마음대로 아무런 법적인 제제없이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라면 국가와 사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무정부 상태, 난장판 (Anarchy)인 것입니다. 이처럼 계약법은 자신이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철학적 타당함과 별개로 사회라는 것의 기본적인 작용에 있어서도 필수적으로 존재하여야 하는 법 분야인 것입니다.
무언가를 제공하겠다는 청약 (Offer), 그리고 그러한 청약을 받아들이겠다는 상대방의 승낙 (Acceptance)을 시작으로 약속이 형성되고, 그러한 약속을 통해 필수적으로 거래되어야 물건 또는 돈, 즉 약인 (Consideration)의 존재로 인해 계약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계약의 위반 시 그 계약의 해석은 클래펌행 버스를 탄 사람, 즉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보통 사람 (Reasonable Person)"의 관점에서 판사가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계약법 기본 원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또, 우리는 아무리 완벽하게 작성된 계약서도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허위진술 (Misrepresentation)이나 강요 (Duress), 실수 (Mistake) 또는 차질 (Frustration) 등 법을 악용해 이득을 취하려고 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법원은 그 계약을 파기하거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 주간 계약법에 대해 논하면서 필자 역시 다시한번 계약법의 소중함을 되새김질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약법의 존재 이유는 역시 돈으로는 안되는 것이 없는 사회가 아닌 정의가 부도덕함 위에 존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계약법 편을 일시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독자분들의 실생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길 바랍니다. 이어서 다음주에는 홍콩의 성범죄법에 대하여 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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