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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홍콩유감 [有感](2) - 문(門) 나가면 시행착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4-12 15: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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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1호, 4월13일]   "Practice!  Practice!  Practice!"” ..
[제121호, 4월13일]

  "Practice!  Practice!  Practice!"”  Mary-kate & Ashley  비디오 시리즈에 나오는 발레 선생님의 말.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하인스 워드의 대답.  언어는 역시 '감각' 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 말은 발레나 운동에만 해당되는 말인지 나의 광동어 학습엔 그다지 부합되는 방법이 아닌 듯 싶다. 물론 꾸준히 진지하게 연습해보지도 않았지만.

  홍콩 안은 늘 시끄럽다.  이곳에 오기 전 만다린과 광동어가 다른 발음을 내는지도 모르던 나는 무슨 아프리카 원주민 말같이 들리는 TV 뉴스 진행자의 소리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집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서둘러 광동어 학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기본을 익혀가는 동안, 6가지 성조를 쓰는 홍콩말은 자근자근 말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잘 훈련된 앵커나 연설을 할 기회가 많은 정치인들의 공식적인 광동어는 좀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 특히 나 같은 외국인은 각각 다른 성조를 과장되게 강조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 그러다 보니 톤은 높아지고 힘도 들어가고 침도 팍팍 튀게 된다는 사실을.  따라서 이곳 사람들의 목소리가 도널드 덕 소리같이 들린다는 것, 닭 싸움터같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는 편이나 그런 요란함을 묵묵히 받아들이긴 좀 어려웠고, 서울 태생의 평이한 한글 표준어의 산 증인인 나로서는 그 과장됨을 실천하는 것이 못 추는 춤을 마지 못해 추는 것만큼 어색하기만 했다.

  내가 이제 막 말문 튼 아기처럼 지극히 낮은 수준의 광동어로 말해도 '백 번의 영어보다 한 번의 광동어가 낫다' 는 생각이 들게끔 "너 광동어 진짜 잘 한다"고 치켜세우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지만 못 알아듣고 인상 팍 쓰며 괴팍하게 꽥꽥대는 이를 만나면 나의 광동어는, 손대면 확 오그라드는 '미모사' 같이 한껏 움츠러들며 늘어지곤 했다.  반면, 영어를 좀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앵무새 영어라도) 내가 아무리 광동어로 얘기해도 광동어 쓰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 양 끝까지 자신은 영어로만 답하려고 해 황당한 적도 많았다.  

  이러다 보니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문만 나서면 매 순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연습 중이다.  미니버스를 타면 내가 내릴 곳을 누가 나보다 먼저 외치면 잘 들어 두었다가 내리자마자 성조를 고개 흔들어가며 연습해보고 택시를 타도 목적지를 3번 만에 아저씨가 알아들으면 직접 발음을 해 달라고 부탁해 그 자리에서 반복해보며 맞았냐고 물어본다.  몇 해 전엔 이사 후 집 정리가 다 끝나고도 어느 정도 지나서야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기사가 단 번에 알아들었다.

  몇 년 전 학교 근처에 꽤 '중국적인' 동네에 산 적이 있다.  내 아들은 이따금 미니버스를 타곤 했는데 우리 집은 종점과도 멀지는 않았지만 정차가 가능한 곳이면 대부분 세워주는 미니버스의 이점을 십분 이용하면 집과 더 가까운 길가에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가 아들이 외치는 광동어 지명을 잘 못 알아듣고 말할 때마다 "뭐?"하면서 괴팍하게 인상을 쓴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대화할 때도 상대방이 아주 공손하게 "Pardon?" 해도, 몇 번만 반복하면 위축되기 쉬운 것이 "모국어 사용자" 가 아닌 사람의 비애인데 12살 아이에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잔뜩 퉁퉁거리는 장면은 내가 생각해도 주눅 들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아들애는 결국 외치기를 포기하고 맘 편히 종점에 내려 그냥 좀 더 걷기로 했단다.  "그런 경험도 자꾸 해 봐야 하고 연습도 되지.  홍콩에서 살려면 그 정도 말은 당당하게 할 줄 알아야지."  하다가 어른인 내가 생각해도 그런 일이 일주일에 몇 번씩 일부러 경험할 만큼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란 것을 익히 알겠기에 아들의 뜻을 존중했다.


중화사상 (中華思想)과  타산지석 (他山之石)

  누가 4월 아니랄까봐 그 새 날씨가 확 바뀌어 버렸지만 어둑어둑했던 지난 겨울의 숱한 나날들, 밤새 식을 대로 식어 싸늘한 거실의 삭막함과 나의 고단한 몸을 깨우기 위해 매일 아침 난 TV부터 켜곤 했는데 어느 날 한 편의 공익광고가 내 눈에 들어왔다.  길가 구멍가게 주인이 외국인의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바람에 손님이 구매를 포기하고 가버리자 주인은 작심하고 영어를 열심히 익혀 훗날 영어로 손님을 친절하게 상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날로그 시계보다 디지털 시계를 부엌에 두고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30초, 1분이 아쉬운 바쁜 아침 와중에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실(其實)은 그 아저씨처럼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미안해 하지도 않거니와 영어를 배울 생각은 더더욱 않는다.  아마도 고객은 주인의 꽥꽥대는 소리를 들으며 손짓발짓을 동원해 겨우 물건을 산 후 총총히 떠나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가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아마도 홍콩 상인들도 손님이 서양인인가 그 밖의 중국 주변의 동양인인가(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을 포함해서)에 따라 반응이나 목소리의 톤이 달라질 것이다.

  배경이 우리나라라면? 상인은 TV속의 이상형 가게주인보다 몇 배는 미안해 하며 영어 못하는 것이 무슨 큰 죄라도 되는 양 창피해 하기까지 한다.  단, 주로 손님이 서양인인 경우다.  '아이고 영어 못 해서 황공합니다.'(서양인에게) 아니면 '아쉬우면 너희들이 우리 말 배워.'(동남아 노동자에게) 머리속엔 이런 생각이 그득해 보인다.  얼핏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똑같이 영어를 못 하는 경우라도 홍콩 사람들이 서양인에게 훨씬 더 자신 있고 당당하다.

  남편의 사무실 회사 여직원들은 자신들도 '앵무새 영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영어를 못하냐" 고 가끔 묻는다고 한다.  내 자신을 돌아보아도 전혀 못한다기 보다는 입 떼는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라고 난 생각하는데… 지난 여름 홍콩에 놀러 왔던 내 친구 말에 의하면 미국 유학생들 중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잘 하는 이들도 자신감이 부족한 반면, 중화권 학생들은 영어가 좀 떨어지는 이들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단다.  친구와 난 그것이 그들의 오랜 '중화사상(中華思想)' 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마추어적인 우리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지난 3월 초 대만의 리안 감독이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대만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나 '따로 또 같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사람들에겐 뭉뚱그려 대단한 경사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영화도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나 범세계적인 무대에 서기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현실을 볼 때 내 생각에도 대단하긴 참 대단하다.  다만, 홍콩인들이 리안 감독의 그간의 고군분투는 딱 잘라내고 결과만 싹 가져와 자신들과 동일시 해 맘 속 깊은 곳의 자부심을 공기빵 같이 부풀리지는 않을까 좀 걱정이 된다.

  영어를 못하면 못할수록 더더욱 큰소리치는 태도는 여전히 불쾌하기 짝이 없고 나를 가끔씩 짜증나게 만드는 'Furby' 식 영어도 못 마땅하긴 매한가지이지만, 그러나, 틀린 영어든 앵무새 영어든 당당하게 하고 보는 홍콩인들의 득의만만한 태도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건질 것이 있는 것도 같다.

  홍콩인의 못할수록 당당하고 무례한 태도 (다른 산에서 난 나쁜 돌)를 잘 갈아내어 예의는 갖추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위풍당당하고 자신 있는 우리자신의 태도 (자신의 옥돌)로 잘 다듬어 나간다면 (他山之石 可以攻玉 '시경' 의 한 구절)  이곳에서 자주 경험하는 불유쾌와 답답함이란 레슨비에 상응하는 '진전(進展)'이란 보답이 되지 않을까.


(계속)/ 글  J. Y. J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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