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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특집] 흑산도 아가씨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03-18 11:39:03
  • 수정 2010-03-25 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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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9호, 3월19일
지난 3월 초, 한국을 방문했다가 딱 1박2일의 여유가 있어 흑산도와 홍도를 찾아보기로 했다.

흑산도. 어렸을 때 아버지의 낡은 라디오에서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하루종일 듣고 자라온 터라 흑산도라는 곳은 한 번도 가본적은 없어도 내 고향처럼 느껴져 오는 곳이다.

 이른 아침부터 아들과 어머니와 함께 용산역으로 달려가 오전 9시40분 KTX에 올랐다.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인 KTX, 빠르고 쾌적하고 조용한데다 서비스도 좋아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흑산도를 가기 위해서는 목포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시 쾌속선을 타고 흑산도까지 가야한다.

기차에서 내려 흑산도행 선착장으로 달려가 배에 올라탔다. 똑같은 파마머리에 비슷한 옷을 입고, 왁자지껄 떠드는 기세등등한 아줌마들이 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아줌마들 말투에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섞여있다.

 

1시간 40분쯤 갔을까, 배가 흑산도에 닿았단다. 배에서 내린다. 3시30분이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흑산도에 발을 내려놓은 순간 세찬 바람에 숨이 턱 막힌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낯선 고향같은 흑산도 선착장을 내가 걷는다. 꿈만 같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산도라고 불렸다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비까지 내리니 산과 바다가 더욱 검푸른게 제대로 흑산도로 보인다.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예약했더니 흑산도 비치호텔로 가는 버스를 보내줬다.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우리를 맞는다. 곧이어 배에서 만났던 그 아줌마들 한 소대도 버스에 올라탄다.

흑산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섭렵하고 싶었지만 계속 비가 내리고 날씨는 또 겁나게 춥고, 거기다 바람까지 부는데다 아들과 어머니까지 계시니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난다. 하는 수 없이 그 아줌마들과 함께 흑산도 버스투어를 하기로 한다. 버스에는 운전기사만 있고 가이드가 없다. 누가 설명을 할까 싶어 궁금해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비바람 불고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날 운전하랴, 가이드 하랴 정신이 없다.

섬 이곳저곳에 투박한 모습으로 부락을 형성하고 있는 12개 마을을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들으며 돌아다니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라는 곳에 잠시 멈춘다. 기념사진을 찍으란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 버린
검게 타 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 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에는 하늘도로라는 것도 있다. 하늘에 떠있는 듯 하다고 하늘도로라고 한단다. 벽에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고, 시도 써 있고, 흑산도 지형지물도 그려져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흑산도의 꾸미지 않은 순박한 모습이 정말 예쁘다.

학생이 20명도 안된다는 섬 초등학교며, 무심히 오가는 외지인들을 바라보는 촌로의 머나먼 눈길도 정겹다.

지도바위도 보인다. 한반도 지도가 바위 가운데 난 구멍으로 나타난다고 하여 지도바위라고 한다. 그 구멍으로 만주벌판까지 보인단다.

 

과거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둬 최장 60일간 구류를 살게 하여 옥섬이라 불리었다는 옥섬이 눈앞에 나타났다 버스속도에 맞춰 사라진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배는 고프고 몸은 지친다. 새벽부터 제대로 먹지도 않고 설쳤더니 허기가 진다.

속이 검게 타버렸다는 흑산도 아가씨의 검고 푸른 흑산도를 굽이굽이 돌고 또 도는 버스를 타고 일주를 했더니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덜거린다.

6시도 안됐는데 호텔 식당으로 가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밥 한 공기 추가요" 라며 소리치니 낯익은 아저씨가 나타나 뜨끈한 밥 한 공기를 가져다 준다. 푸하하, 그 기사 아저씨다. 가이드도 하고 버스 운전도 하더니 이젠 식당에 와서 밥까지 나르신다. 대박이다. 흑산도의 홍반장. 나는 홍콩의 홍반장이라며 통성명이라도 할까 싶다.

밤에는 흑산도까지 왔으니 회나 좀 먹자며, 단체 관광객들 틈에 끼어 흑산도 홍반장의 버스를 타고 부두로 나선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 흑산도 밤바다가 내는 철석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우럭회 한 점에 소주 한잔을 톡 털어 넣으니 인생살이 맛이 참 저릿저릿하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단체관광객이 탄 버스에 올라탄다. 술이 알딸딸하게 오른 아줌마들의 목청이 오늘 낮보다 몇 옥타브는 더 올라간다. 인원점검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한다. 형광등이 꺼지고 잔잔한 보조등이 켜지면서 음악이 갑자기 뽕짝으로 바뀐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요", 아줌마들이 총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튀어나가 육중한 몸을 마구마구 흔들어 대면서 외친다.

아싸아싸!! 죽인다 죽여!!

/계속....

<글·사진 로사 권 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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