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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함께 백야나라로 떠나는 여행] 나는 지금 러시아로 간다 8 - 과거를 기억하는 도시 모스크바로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12-17 12:38:12
  • 수정 2009-12-23 17: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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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8호, 12월18일
과거를 기억하는 도시 모스크바로
3일간의 뻬쩨르 여행을 가까스로 마치고 모스크바로 향한다. 인형 값을 일부 돌려받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국내선 청사에 도착해 항공권을 내고 수하물 검사를 받는다. 내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으라고 턱짓을 하는 러시아 남자 검색원. 장대같이 큰 키에 선이 굵고 거칠어 난폭해 보이는데다 탐욕스러워 보이는 그의 인상은 마치 카라마조프가의 장남 드미트리 같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동양 여자의 배낭에서 비싼 컴퓨터와 육중한 카메라가 툭툭 튀어 나오니 위 아래로 스캔하듯 쭉 훑어보고는 다시 턱짓을 한다.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게 벌써 이들에게 익숙해져 있나보다.

뻬쩨르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모스크바 국내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거나 전철을 타야 하는데,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돈이 무서워 택시는 엄두도 못 내고 전철을 타기로 한다. 공항에서는 다시 전철역까지 가는 미니버스를 타야한다. 무거운 가방을 앞에 두고 쩔쩔매는 우리를 보더니 삼손같이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기사아저씨가 나타나 그 큰 가방을 한손으로 번쩍 들더니 버스 안으로 던져 넣는다.

눈이 휘둥그래진 제니퍼가 피식 웃으며 다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한다.

"언냐, 러시아 남자들 힘 좋다"
"푸하하하하"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았던 버스는 1시간여 가까이 오랜 혼란의 시대를 거쳐 지쳐 보이는 도시, 과거를 회색빛 혹은 붉은색으로 무겁게 침묵하고 있는 도시를 돌고 돌아 전철역에 뚝 떨궈 놓는다. 이제부터 모스크바 여행의 시작이다. 왠지 두렵다. 러시아 제1의 관광도시 뻬쩨르가 그렇게 거칠었는데 모스크바는 오죽할까.


영어가 사라진 도시 모스크바
 
역무원에게 거의 혼나듯 하면서 티켓을 끊고,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선다. 세찬 바람이 옷자락을 잡고 역에까지 달려든다. 전철역이 마치 우리나라 옛 서울역 같다.

냉전시대에 포격과 화재를 대비해 건설됐다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평균 깊이가 50~60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100미터에 이른다. 자재 대부분은 대리석과 화강암을 사용했는데 문학과 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답게 역마다 개성을 살려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샹들리에와 모자이크 벽화,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부조들로 화려하게 꾸며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시간이 나면 역마다 내려 감상하는 것 자체로 큰 여행이 될 정도.

그러나 우리는 역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낼 처지가 아니다. 어느 역에서 갈아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하철 안내방송은 온통 러시아어이고, 안내도에도 영어 한 줄 없다.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 표는 얼마인지, 갈아타는 곳은 어딘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영어가 없다. 아니 이 도시에서는 영어가 어떠한 대사건으로 인해 한 순간에 사라진 듯 하다. 가이드북이 있지만 흔들리고 복잡한 전철 안에서 일일이 대조하기도 힘들다. 그 긴 러시아 단어는 거의 모두가 같아 보인다. 가이드북이 이렇게 무용지물이 될 줄은... 러시아의 최대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또 세계에서는 4번째로 큰 도시 모스크바에 영어 한 줄 쓰여 있는 곳이 없다면 믿겠는가.

 그러나 천만 다행인 것은 변죽 좋은 제니퍼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 수십 번을 고쳐 물어 행선지를 잘도 찾아다니는 그녀가 참 신통하기도 하다. 호텔이 있는 전철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무겁고 큰 가방이 그야말로 짐짝이다. 앞서서 계단을 오르던 남자가 우리를 보고 다시 내려오더니 가방을 기꺼이 들어다 준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의외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날씨도 뻬쩨르보다 훨씬 덜 춥다. 날카롭고 쭉쭉빵빵한 뻬쩨르 사람들로부터 주눅이 들던 우리는 갑자기 신이나기 시작한다. 점점 모스크바가 좋아진다.


여기가 호텔 맞아?
전철역 밖으로 나간다. 불량기 넘쳐 보이는 경찰 두 명이 역 앞에서 어슬렁거린다. 호텔은 전철역 바로 옆에 있었다. 로비로 들어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수속을 하는데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하루 종일 걸리는 수속은 둘째치고라도 안하무인격인 말투와 태도로 우리를 마치 죄인 취급하는데 할 말이 없다. 여기가 호텔이 맞긴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더구나 국제회의가 수시로 열리는 4성급 호텔이라는데 말이다.

30분 쯤 걸려 간신히 종이 한 장을 받는데, 그건 방 키가 아니다. 해당 층에 올라가면 또 다른 리셉션이 있는데 거기에서 방 키를 받으란다.

"언냐, 이기 이기 뭔 소리가? 와 방키를 안주고 위에 가서 받으라나? 참으로 고약제" 제니퍼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방이 있다는 7층에 내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철커덩 열리더니 우리 앞에 술과 담배, 간식 등을 파는 고급 바 같이 생긴 리셉션이 나타난다. 사람이 없어 익스큐즈미~~를 외친다. 문이 삐죽이 열리고 빵빵한 가슴이 곧 튕겨져 나올 것 같은 금발의 뚱뚱한 여자와 비쩍 마른 남자가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삐죽삐죽 걸어 나온다.

"언냐, 이거 머꼬?"
"허걱, 제니퍼, 여기가 4성급 호텔 맞아?"

/ 계속...

* 대한항공은 인천과 모스크바를 주3회 직항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글&사진 로사 rosa@weeklyh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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