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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칼럼] "SAY YES to YOUR LIFE" - Who Am I ?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9-11-05 11:40:31
  • 수정 2009-11-05 1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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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2호, 11월6일
불경기 탓인지 직장문제로 고민하는 가장들의 비즈니스 코칭이 느는 추세다. 업무관련 사항으로 찾아온 케이스도 잔가지를 쳐내면서 얘기를 좁혀 가보면 결국 일보다는 사람과 연결된 대인관계의 이슈로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다.

사석에서 마주친 지인 K도 한 집안의 가장이다. 돌변한 회사 사정으로 가족들과 전혀 예정에 없던 귀국을 하게 된 그는, 날씨까지 서늘해진 요즘 자기도 몰래 흥얼대는 노래가 생겼다고 한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오오~" 그러면서 피식 웃는 그의 표정은,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기색이 너무나 역력했다.

갑작스런 귀국은 아들의 미국 유학과 프로 골퍼가 되려는 딸의 꿈에 급제동을 걸었다. 형편상 국내에서 뒷바라지하기엔 둘다 비용이 만만찮은 꿈이기 때문이었다. 해서 요즘 아이들이 그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홍콩에서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이것저것 배우면서 친구 사귀는 재미를 맛보다 졸지에 시댁에 들어가 맏며느리로 컴백(?)하게 된 아내도 그에게 냉랭하긴 마찬가지였다.

퇴근해서 집에 가봐야 마주치는 건 시무룩한 식구들 얼굴이고, 들리는 건 쿵! 하고 방문 닫는 소리뿐이었다. 본사에 돌아가 외국에 있는 동안 승진한 동기들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을 털어놓고 짜증도 풀고 위로받고 싶지만 아내를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K는, 전쟁에 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병사 같은 멍한 표정을 했다.

한 버스에 탄 가족을 상상해보았다. 가장이 운전대를 잡고 버스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전원이 내려서 목적지까지 도보로 가야 될 상황이라면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껏 따라왔더니 이게 뭐예요? 당신, 버스를 제대로 점검이나 해보고 출발한 거예요? 우리는 당신만 믿었다 고생하는 죄밖에 없으니까 혼자 다 알아서 해결해욧!"

"불황이다 어쩌다 해도 제 친구 아버지는 이번에 승진하셨대요. 걔네는 축하 겸 버스를 팔고 럭셔리 캠핑카를 사서 온가족이 주말여행을 다니기로 했대요."

"목적지까지 가려면 차로 가도 한참 걸리는데 그 먼 길을 걸어가라구요?! 아빠가 버스를 못 고치면 새로 버스를 사면되잖아요. 빨리 좀 사주세요, 자외선 때문에 피부 망가진단 말예요!"

좀 다른 반응도 있을 것이다.

"애써 운전했는데 버스가 말을 안 듣네. 당신 내가 좀 도와줄 건 없어요? 같이 찾아보면 무슨 방법이 생기겠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와우,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네요. 지금껏 아버지 덕에 편히 왔는데 그동안 아꼈던 힘으로 걸어가면 되죠 뭐. 요즘은 일부러 트레킹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무거운 건 제가 들고 갈 테니 이리 주세요."

"아빠, 제가 한 미모 하니까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볼까요? 호호 농담이에요. 명품백들을 중고숍에 팔아서 여비를 좀 만들어 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물건은 중고라도 상태가 좋아서 값을 잘 쳐줄 거예요."

K의 처진 어깨를 보면 그의 가족은 전자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가 털어놓는 고민의 내용도 그런 추측에 동의를 표했다. 뒷바라지하기로 장담한 아들의 유학, 딸의 꿈, 아내의 체면을 생각해 올해는 꼭 사주기로 한 롤렉스와 매칭 다이아 반지를 차례로 언급하는 말투가, 갚겠다고 약속한 빚 때문에 속 끓이는 채무자와 비슷해서 이런 사과문을 연상케 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두루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외국생활 덕에 국제 감각을 익힌데다 남들이 평생 씨름하는 영어에 유창하게 된 자녀와 일가친척의 레이다를 벗어나 소중한 자유를 만끽한 아내를 있게 만든 그의 수고는 느닷없는 귀국에 골이 난 식구들 앞에 무효가 되고 있었다. 모처럼 외식을 시켜주고 나서 힐난을 듣는 격이랄까. "계속 외식을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왜 입맛만 버려놨어요?"

누구나 경험하는 커리어 슬럼프를 마치 자기가 일부러 저지른 잘못인 양 자책하는 K는 가족을 생각하면 왠지 허무하다고도 했다. 가족의 편의를 책임지는 역할을 빼면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한 남자. 그는 아버지고 남편이고 누군가의 자식이고 친척인 동시에 부하의 상사고 타 회사의 고객이며 어떤 사나이의 친구일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아버지인 K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한 집안의 수입원으로서 생활비, 학비를 책임지는 사람, 야근이 잦은 사람, 피곤이 누적된 사람, 그리고…." 그는 그것 말고 다른 답이 더 있을 법한데 생각이 안 난다는 듯 연신 갸우뚱대기만 했다.

 가족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각자의 기대를 만족시킬 재정을 책임지는 것은 그가 맡은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그가 빙산의 일각 아래 숨은 나머지 자신이 누군지 파악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아는 만큼만 드러낼 수 있고 세상은 그것을 근거로 그 사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재정 담당책"보다 폭넓은 아버지상을 가족에게 심어주지 못하는 K는 기존의 이미지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먼저 말을 거는 아버지, 재미있는 아버지, 활동적인 아버지, 화끈한 아버지, 뒤끝 없는 아버지, 칠전팔기 아버지, 창의적인 아버지, 늘 배우는 아버지, 사과하는 아버지, 순수한 아버지, 멘토 같은 아버지….

이 가을, K가 좀 더 다양한 자신을 발견하고 내면의 수확을 거둬 풍요 속에 귀국하기를 바라며 작별을 고했다. 전보다 풍성해진 그의 존재가, 유학비용, 골프 레슨, 밀린 선물의 제공자에서 가족의 꿈과 친밀을 도모하는 서포터로 비쳐지길 기원하면서.

<글·베로니카 리(veronica@coaching-z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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