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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세손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5-08-18 10:27:48
  • 수정 2016-12-21 18: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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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1호, 8월18일] 비운의 황세손 1958년 10월25일 미국 뉴욕의 센트럴 세인트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27세의 한국인 이구(李玖)..
[제91호, 8월18일]

비운의 황세손

1958년 10월25일 미국 뉴욕의 센트럴 세인트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27세의 한국인 이구(李玖)와 여섯살 연상의 미국여성 줄리아 뮬럭. 두 청춘남녀는 자신들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에 처했는지 짐작조차 못한 채 마냥 행복해 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종종 평범한 행복을 원했던 개인의 삶까지 휩쓸어 버리게 마련이다.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사이에 태어난 이구는 일본에서 고교 재학중 8·15 해방을 맞았다. 점령군인 맥아더사령부의 주선으로 도미, 명문 MIT대를 졸업한 그는 뉴욕의 건축회사에서 쾌활한 성격의 독일계 미국 여성 줄리아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두사람은 신혼의 단꿈에 젖을 새도 없이 그들의 삶에 담긴 엄청난 역사의 함의를 깨달았다.

  1963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귀국한 이후 황세손 이구와 며느리 줄리아는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왕가의 최후 모습을 줄곧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파란 눈의 줄리아는 후손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왕가 종친들의 따가운 시선과 이혼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두사람은 결혼 24년 만인 1982년 헤어졌다.
  
  그 후 두사람은 서로 재회조차 못한 채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사업에 손을 댔다가 부도가 나자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난 이씨는 1996년 다시 귀국했으나 또다시 사업에 실패, 일본에서 요양생활을 해왔다. 변변한 이혼합의금도 받지 못한 채 낙선재를 나온 줄리아 여사는 수공예점, 영어회화 교습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장애아들을 보살피다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이씨와의 추억이 있는 하와이로 떠났다.

  1907년 영친왕이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면서 시작된 왕조의 비극은 마지막 황세손 이구의 타계로 막을 내렸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피를 반쪽씩 물려받은 황세손, 그와 사랑에 빠져 조선왕가의 마지막 여인이 된 미국여성…. 거대한 역사의 유산을 짊어지면서도 소시민의 평범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한 이들의 인생유전을 생각하면 가슴을 저민다.

<자료 출처 : 경향신문(송충식 논설위원)>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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