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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28편(최고의 노후대책은 "창업")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10-04 15: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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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2호, 10월5일]   처음 회사에 가면 사람들이 제가 흰머리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를 자꾸 쳐..
[제192호, 10월5일]

  처음 회사에 가면 사람들이 제가 흰머리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를 자꾸 쳐다보고 빙그레 웃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정년이 될 사람이 설계를 한다고 나타났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1시간 정도 일에 대해 대화를 하고 나면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짓습니다.  자기들이 찾고 있던 사람인데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하면서... 거기다 제가 일을 하고 있는 방식이 젊은이들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다가 저에게는 젊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수없이 많은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을 다녀보면 새로운 기계의 설계보다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많고 따라서 근무시간이 길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업종의 기계에 적응하기가 쉬웠습니다.

  프리랜서로 가장 좋은 점이라면 드디어 그렇게도 원하고 원했던 <출근시간>이 저에게서 사라진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올빼미 스타일의 저를 너무너무 괴롭혀왔던 <아침 출근시간> 그것에서 마침내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상대방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결정하기 때문에 시간의 속박에서 완전히 풀려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물론 여행을 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아들은 스스로 제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으니 이제는 저희 부부만 즐거운 인생을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에 비례하여 책임의 크기는 한없이 커졌습니다.  회사 근무할 때는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안 되면 내일... 뭐 그런 경향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일을 마치기 위해 새벽 2~3시는 보통입니다만 처음에는 이 부분이 힘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수입으로 따지자면 월급을 받을 때와 비교해서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물론 무리하게 일을 하면 많겠지만 지금은 무리한 일보다 안정적으로 제 체력이 허락하는 시간동안 일을 하는 것을 목표를 삼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비에서 완전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는 장소는 한 달로 치면 절반은 집에서, 절반은 여러 회사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인터넷의 위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작업이 끝난 도면파일은 해당 회사에 메일로 보내 검토를 거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때 회사로 가서 의논하고 해결하면 됩니다.  그 외 업무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언제나 대화가 가능합니다.  옛날 공상영화에서나 보았던 일들이 지금 저에게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제조업은 정말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기계 제작업은 더욱 힘이 듭니다.  생산업체의 설비투자가 없으면 생산업체로부터 오더를 받아 일을 하는 제작업은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랫동안 해오던 일인데 회사의 문을 닫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현장 기능공을 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공의 평균 나이가 50세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일이 없지만 그렇다고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 정규직을 고용하여 많은 비용을 지출하기가 감당이 안 되고 저 같은 프리랜서가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향도 많습니다.  거기다 저에게는 무형의 경험이 많다 보니 서로에게 대단히 유익합니다.

  제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평소 건강을 위해 금연 금주해 왔던 저의 생활방식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돋보기가 아니면 신문을 못 볼 정도인데 저는 아직도 눈이 생생합니다.  하루 12시간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어도 그렇게 힘이 들지 않습니다.

  앞으로 제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이 일을 할 예정입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창업>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거기다 홍콩의 김정우 씨 소개로 제 글이 <위클리 홍콩>에 연재되는 행운까지 얻게 되어 시골생활에 대한 글까지 쓰려니 요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혼자 놀기 심심하다는 아내의 눈초리에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긴급으로 300기가 외장 하드를 구입하여 일본 드라마를 잔뜩 다운받아 일본어 공부하라고 노트북에 연결해 주었더니 조금 나아졌습니다.  내년에는 아내를 방통대 일본어 학과에 입학시켜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켜 줄 계획입니다.

  저는 현재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아내와 함께 시간 나는 대로 여행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행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제가 이런 엉뚱한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삶의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반대쪽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와 많이 다름 지금
  아주 오래된 영화 <타잔>에서 주인공이 동물들과 함께 밀림 속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명이 지배하는 도시로 나와서 어리둥절한 것처럼 아파트라는 편리한 집에서 살다가 어느 날 시골로 이사를 와서 살아보니 핫바지에 양복 윗도리를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널찍한 밭에 씨를 뿌리고 새싹이 예쁜 새침때기처럼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빙그레 감돌았고 자연이라는 위대한 친구를 만난 것에 저절로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침묵이 우리 집 지붕위에 자리를 잡고 우리를 침묵의 세계로 인도하였는데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귀에 조용함의 극치는 또 다른 어색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바람소리에 나무 잎사귀가 춤추는 소리.  찌르르 찌르르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세상이 어쩌면 이토록 조용할 수도 있을까?  침묵의 비가 밤새 내렸습니다.

  저희가 이사 올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면단위의 조그만 동네였습니다.  아스팔트 포장은 면사무소 앞 도로까지 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저희 집까지 약 4km는 자갈이 약간 깔려있는 비포장도로였습니다.  비가 올 때면 도로 곳곳에 패여 있는 웅덩이에 고인 물 때문에 자전거 타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고 승용차의 아랫부분이 웅덩이의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개미가 기어가듯이 조심조심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무더운 한낮에는 하루 4번 다니는 시외버스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먼지가 온 동네를 뒤엎기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20세기에서 19세기로 세기를 건너 뛰어 이사를 온 것이었습니다.

  상전벽해라고 지금은 오히려 포장이 안 되어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도로나 골목길은 말할 것도 없고 비스듬한 언덕위에 있는 감나무 농장으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기가 힘들 정도인 논두렁조차 흙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완벽한 포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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