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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아시아금융센터가 된 비결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10-04 14: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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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2호, 10월5일] 70년대말 외국자본 中진출 창구 97년이후 중국자본의 첫 투자처 홍콩 금융 제2 르네상스   홍콩이 ..
[제192호, 10월5일]

70년대말 외국자본 中진출 창구
97년이후 중국자본의 첫 투자처

홍콩 금융 제2 르네상스

  홍콩이 지금처럼 아시아 금융센터로 자리잡은 것은 채 30~40년도 안 됐다.  1950년대 초까지 홍콩 경제는 중국의 싼 농산물과 경공업 제품을 세계 시장에 중개하는 것으로 겨우 먹고사는 정도였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은 홍콩 경제에 결정적인 충격을 가하는 동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경제봉쇄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이다.

  앨런 옹 홍콩무역발전국 부국장은 "중국을 활용한 중개무역이 불가능해지자 홍콩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육성에 본격 나서게 됐다"며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 아시아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제적인 금융회사들이 지역 금융센터를 찾고 있던 수요가 홍콩으로 몰려 금융산업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홍콩이 아시아 금융센터로 점지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콩 금융산업은 정부의 시장 불개입 원칙에 따라 효율적인 감독과 규제가 전무한 채 `난장판`이었다.

  1967년 누적된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영국이 파운드화를 절하하자 파운화에 직접 연계된(pegged) 홍콩달러는 갑작스러운 절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다.

  1968년 미국 은행들이 아시안 달러시장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홍콩과 싱가포르를 후보 도시로 저울질했다.  불행히 싱가포르가 선택되면서 홍콩 금융산업은 또 한 번 치명타를 맞았다.  홍콩이 외화예금 이자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반면 싱가포르는 파격적인 비과세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홍콩은 서서히 개방과 자유화를 근간으로 하되 효율적이고 투명한 금융감독 제도를 갖추는 금융개혁에 착수했다.

  물론 조세제도도 대폭 손질한다.  현재 홍콩은 소득세 최고 16%, 법인세 17.5% 외에 한국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판매세나 배당 등에 부과하는 자본이득세 등 세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세도 없다.

  1972년 오일쇼크 여파 속에 파운화 연계 환율 제도를 폐기한다. 1983년 달러화에 연계한 환율 제도를 확고히 하면서 싱가포르에 뒤처졌던 금융센터 지위를 추월하는 계기를 삼았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방은 홍콩 경제는 물론 중국으로 들어가는 외국 자본의 창구가 되면서 홍콩 금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금융센터로서 위상에 대해 회의론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화교자본 이탈도 많았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중국 자본의 외국 진출이라는 호기가 홍콩 금융산업의 제2르네상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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