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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와 함께 떠나는 백두산 고구려 역사탐방 - 다섯 번째 이야기. 동방의 피라미드 '장수왕릉'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8-09 1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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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5호, 8월10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발하는 첫날부터 내리던 비는 얄궂게도 우리가 길만 나서면 따라 내..
[제185호, 8월10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발하는 첫날부터 내리던 비는 얄궂게도 우리가 길만 나서면 따라 내렸다.  환도산성에서 나와 쿨렁이던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차창 너머 멀리로 하얀색의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장수왕릉'이다.  '장수왕릉'은 멀리서 보면 피라미드의 상단부가 약간 잘려나간 듯한 모양으로 큰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었다.

  왕릉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라고 하니 비도 오고 피곤하다며 할머니 몇몇 분들은 그냥 차안에 있으시겠단다.  여행을 위해 한두 푼 지불한 것도 아닐 텐데, 이런 소중한 역사 유적지까지 와서 차안에 머물겠다니...  허기사 애시 당초 그분들의 여행 목적은 '고구려 역사탐방'이 아닌 두고 온 고향땅을 멀리서 나마 바라볼 수 있는 압록강, 두만강 등 '중조변경지역 방문'이나 '백두산 등정'이었으니 이 고구려 유적이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으랴.

  다시 장군총 이야기로 돌아가자.  '장군총'이라고 알려진 이 무덤을 많은 학자들은 광개토태왕의 아들이자 고구려 20대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장군총'은 청나라 말기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중국 변경을 지키던 장군의 무덤'이라고 생각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이들이 고구려의 존재를 알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1천500년의 세월을 비켜온 것처럼 '장수왕릉'이 눈앞에 우뚝 서 다가왔다.  무덤의 높이는 건물로 치면 5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단다.  무덤의 크기만으로도 동아시아의 패자였던 고구려의 힘이 느껴졌다.  

  고구려인들은 이집트인들처럼 사후 세계를 중시하여 결혼을 하면 묘지를 마련하고 왕이 즉위하면 바로 피라미드와 같은 능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능은 부장품이 대부분 도굴당해 그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무덤의 양식, 위치,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장수왕의 무덤으로 결론짓고 있는데, 몇몇 학자들은 장수왕이 평양 천도 이후 사망했다는 이유로 무덤의 주인이 장수왕 이라는 사실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건축학자들은 이렇게 거대한 '장수왕릉'을 쌓는 데는 1만9천 톤의 화강암, 1만2천500톤의 흙이 사용됐을 것이고 동원 인력만도 7만 여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수왕 시대 고구려의 강력한 전제왕권과 경제력 등 국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능 뒤쪽으로 인위적으로 설치한 철 계단을 밟고 들어가 보니 묘실 중앙에는 두개의 관대가 놓여 있다.  일설에 의하면 장수왕이 평양에서 세상을 뜨자 왕후가 비통함을 참지 못해 선왕의 숙소 기둥에 머리를 찧어 자진했고 장수왕의 손자 나운이 장수왕과 왕후의 시신을 평양에서 집안으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장수왕릉'의 묘실은 두개의 관대만 썰렁하게 놓여 있고 묘실 벽 전체에 검은 곰팡이들이 피어 있어 썰렁하다 못해 옹색하다는 느낌을 준다.

  현지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처음으로 이 묘실에 발을 디딘 사람은 도굴꾼 형제였다고 한다.  이 도굴꾼 형제가 처음으로 묘실의 문을 열자 묘실 안은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고 한다.  관대에는 붉은색의 대형 관이 2개 놓여 있었고 묘실에는 금으로 된 부장품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또 죽은 영혼이 어둠 속에서 헤맬까 염려해 놓아두는 '만년등'이 그때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고 한다.  도굴꾼들이 장수왕릉의 부장품을 배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부장품들이 모두 바다 속에 수장됐다고 한다.

  장수왕의 영광과 영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장수왕릉'이 일개 도굴꾼들에 의해 역사 속에 잠들어 버리고 그곳엔 옹색함만이 남게 된 것이다.  

  왕릉 옆 10여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고인돌과 같은 형태의 무덤이 하나가 남아있었다.  '딸린무덤'이라 하는데, 이는 주가 되는 무덤 주변에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무덤이다.

  '딸린무덤'은 왕을 모시던 시종들이나 첩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걸음을 빨리하자며 재촉하던 가이드는 제 성화에 지쳐버렸는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노란 우비를 둘러씌운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는데 지천에 깔린 네잎 클로버와 하얗게 봉우리를 맺은 클로버 꽃들이 부슬거리는 비를 맞아 더욱 싱그럽게 보였다.  왕릉 가에는 앵두나무들이 빼곡히 심겨져 있었는데 올망졸망 빼곡하게 열린 새빨간 앵두가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앵두를 몇 알 따서 아이들 입에 넣어주니 너무 맛있다며 더 따자고 난리였다.  몇 알 더 따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며, "너네 앵두 같은 입술 아냐? 작고 예쁘고 통통한 빠알간 입술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게 바로 그 앵두야.  어때 빛깔 무지 이쁘지?" 했더니 아들 녀석이 내 눈을 다정스럽게 바라보며 한다는 소리 "엄마, 그럼 엄마 입술이 그렇단 말이네요" 한다.  헉, 얘는 내 아들이야? 애인이야? 중증이로다, 중증.

<글 : 로사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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