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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14편(홍콩으로 간 아들 그리고 특파원)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6-14 12: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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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8호, 6월15일] 토사구팽,버티기의 최후   저 인간들에게 가면 또 목에 줄을 걸겠지.  가출을 해야 하나 말..
[제178호, 6월15일]

토사구팽,버티기의 최후
  저 인간들에게 가면 또 목에 줄을 걸겠지.  가출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가출을 하면 누가 밥을 먹여주나?  누가 좋은 집에서 재워 주나?  어휴... 내 팔자야...  하는 수 없다.  저 미우나 고우나 인간들에게 내 몸 하나 의지하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못이긴 척 하고 꼬리를 흔들면서 제가 기다리고 있는 자기 집으로 오기는 오는데 자기도 미안한 지 눈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지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버티기.  하지만 이놈도 덩치가 너무 커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시기가 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내도 근처 피아노학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녔는데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으니까 덩치가 큰 개를 어떻게 잡아 놓을 방법이 마땅치 않더라구요.  더구나 여름철이 시작되면서 개장수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버티기가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고...  팔아야하나... 토사구팽을 해야 하나...   제가 비록 어렵게 취득한 백정의 자격증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개를 분해한 경험이 없어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근처 전문가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버티기마저 개장수에게 팔아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주인인 우리가 토사구팽을 하자.  버티기도 그것을 좋아할지 모른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는데 지금 냉장고에 버티기의 몸 일부가 저장되어 있고 아주 가끔씩 우리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버티기야.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주인인 우리가 너를 공양하는 것이 낫지 않겠니? 너도 이해하지?"


홍콩으로 간 아들 그리고 특파원
  깡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저희 가족의 약간 유별나지만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시스템 덕분인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아들은 재수도 하지 않고 S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입대했습니다.  군 입대 날짜 때문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훈련도중 카투사에 선발되어 훈련소 퇴소 후 다시 카투사 교육대로 가서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었는데 대부분의 신병들이 원하는 용산으로 가지 못하고 대구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대구 배치를 받고 용산에 배치 받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 대구로 배치 받은 것이 아들의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근무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미군들이었으니까요.  근무 여건이 이렇다보니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영어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2년간 근무한 결과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어 회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2년간 어학연수를 완벽하게 갔다 온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군복무중 제대 후 대학원을 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 끝에 한국에는 가고 싶은 대학원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일단 취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미군 중대장을 비롯한 주위 분들의 많은 협조와 도움으로 복무 중에 여러 회사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 중 한 회사에 제대를 하기 전에 이미 취업이 되었습니다.

  24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서 이틀을 쉬더니 출근 준비한다고 짐을 싸 들고 서울로 갔습니다.  아들이 근무할 회사는 미국계 컨설팅회사.  컨설팅회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깐 소개하면 아들의 동창이 현재 서울에서 컨설팅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주당 100시간씩 일을 한다고 합니다.  3일 연속 철야는 예사고 누워 자고, 출퇴근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일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보수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컨설팅 회사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점 이해하지만 저렇게 일하는데 몸이 견디어 날까 하는 걱정도 되나 젊은 시절에 한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직종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업종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몰랐지만 아들도 그런 회사에 일단 입사를 했습니다.  회사 근처 삼성동에 원룸을 얻어가지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출근을 하기 전 어떤 회사와 인터뷰를 하고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채 약간 어정쩡한 상태였습니다.

  회사 출근 2일째 되는 날.  회사로부터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계약서가 이메일로 도착했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야호!

그 회사 이름은 B인데 현재 뉴욕시장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근무지가 홍콩지사.  아들을 홍콩으로 보내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일단 출근한 회사에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3일째 되는 날 이사님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메일로 도착한 계약서를 보니 취업비자는 B사에서 준비하여 보내준다고 하는데 약 15~20일 정도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 표기된 이름 중에  성이 영어로 goo로 되어 있는데 아들의 여권에는 이름이 koo 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요?  "구"라는 성을 영어로 표기하면서 여권의 문자와 회사 지원서의 이름을 일치시키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계약서의 성과 여권의 성이 달라서 여권의 성을 바꾸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며칠 간 계속되었지만 외무부 여권과의 대답은 no.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이름을 바꿀 수 없어서 해외 취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닥치고 말았습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외국회사와 계약한 영문 계약서도 소용없고 오로지 법규에 나와 있는 것만 유효했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홍콩으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상세히 적어서 보냈더니 회신이 오기를 한국적 문화를 이해한다면서 자기들이 계약서에 적힌 이름중 성을 수정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현실을 중시하는 외국회사의 태도는 달랐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취업비자가 올 때까지 아들은 집에 며칠 간 있으면서 준비를 하다가 서울로 가서 며칠씩 있으면서 친구를 만나고 했습니다.

  드디어 취업비자가 도착했고 아들은 가방 2개와 노트북을 어깨에 메고 홀로 홍콩으로 출발했습니다.  홍콩에 도착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서야 아내는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았고, 홍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궁금해 하면서 아들의 전화가 올 때마다 빨리 휴대폰부터 구입하라고 조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회사에서 준비한 호텔에서 3주간 있으면서 주말마다 홍콩시내로 아파트를 구하러 다녔는데 2주 만에 아파트를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주말에 호텔을 나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아내가 걱정을 태산같이 하기에 하는 수 없이 아내를 홍콩 특파원으로 급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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