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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홍콩유감 [有感] 20 - '같기도' (上)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6-07 1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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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7호, 6월8일]   그리 크지 않은 돈인데도 유독 내기가 아까워 어떡하면 안 낼까 잔머리 굴리게 되는 이상한 돈이 있으니 다름아닌..
[제177호, 6월8일]

  그리 크지 않은 돈인데도 유독 내기가 아까워 어떡하면 안 낼까 잔머리 굴리게 되는 이상한 돈이 있으니 다름아닌 주차비다.  너도나도 무조건 내야 한다만 뭐 당연히 내겠지만 뭘 하나라도 상가에서 사면, 식당에서 밥 먹으면, 용케 무료 주차권이라도 얻으면…, 요리조리 빠질 방도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지역에 사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군대 제대로 가면 바보' 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니 '국방의 의무'의 하위개념인 그 '군대 가는 일'(병역의 의무)이 주차비 고스란히 다 내는 일과 비슷한 것 '같기도'하다.

  남편은 좀 껄끄러운 상황가운데 홍콩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회사 주인 집 아들이 병역을 피해 같이 근무하게 된 것이다.  누구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좀 나았겠지만 본사에서 나온 직원은 달랑 둘 뿐… 그 때까지만 해도 30세인가 31세까지만 버티면 되던 시절이라그 집이 5년 만에 돌아가긴 했지만 그 기간이 남편에겐, 겉은 멀쩡해 보이나 속은 참 고약한 시간이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겉모습만으론 확실한 직장이 홍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가고 싶어도 괜히 겁나서 맘 편히 가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캥기는 것이 많았던 그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내 아들은 절대 그렇게 지내게 하진 않을 것이라하곤 했다.


'배달의 기수' 와 '우정의 무대'
  그 시절로는 드문 사진관에서 폼 잡고 찍은 반듯한 사진 중엔 '김옥배' 라는 군인 아저씨가 우리 집 딸 셋을 거느리고 계시는데, 그분은 큰언니와 위문편지로 만난 월남 참전 군인으로 다섯살이던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다.  머리를 살짝 건드리면 고개를 흔들흔들하던 예쁜 고양이 장난감도 사 주셨고 우리 셋 데리고 창경원 나들이도 가셨다.  이렇듯 군인에 대한 내 최초의 단어는 '아련, 포근, 다정함' 이런 것들이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계절별로 위문편지를 써냈는데 5학년 때인가 답장을 받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던 적이 있다.

  그 즈음엔 '나시찬' 주연의 '전우'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어 여자가 절대 다수이던 우리 가족조차도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곤했고 한 군인의 얼굴이 화면 가득 멈추며 시작되는 '배달의 기수'는 길디긴 야구중계와 더불어 채널을 확 돌리게 하는, 내겐 참 재미없던 프로 중 하나였다.

  80년대 중반엔 독재타도를 외치는 데모가 한창일 때라 교문 앞에 서 있던 닭장차와 전경들의 모습을 등하굣길에 거의 매일 볼 수 있었고 시험 끝나고 학교 앞 디스코장에 가면 휴가 나와 군복 채로 주책스레 춤추는 군인들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일요일 초저녁이면 방영되던 '우정의무대'… 내 동생뻘 되는 장병들의 끼에다 뽀빠이 이상용의 카리스마가 합쳐진 걸작이었고, 그 걸작의 정점은 바로 "어머니~"외치던 '그리운 어머님' 코너... 별별 장병들의 갖가지 모습에 배꼽 잡고 웃다가도 저 넘치는 장기를 다 묻어둔 채 튀지 않고 그저 다 비슷비슷해야 하는 군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맘 한 켠이 짠하기도 했다.  같은 날 늦은 시간엔 타 방송국에서 '신혼은 아름다워'란 프로를 했는데 똑같이 커플티 맞춰 입고 좋아 죽겠다는 쌍쌍들에게 '흥, 너희도 1년만 있어봐라 어디…' 하던 난, 결혼 1년이 좀 넘은 초보 엄마였다.

  이렇듯 '군인'하면, 아저씨에서 오빠, 친구, 동생, 조카… 곧 아들이 바통(Baton)을 이어 받으리라.

  월간지 '샘터'의 한 코너인 병영에서의 편지에 눈이 멈추고 아들 보낸 부모님의 사연에 가슴이 찡하고 병역면제니 비리니 하는, 한반도에 아들들이 태어나는 한 영원히 계속될 신문의 단골메뉴가 지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한번 읽게 되는 것은 내가 대한민국 국적인 아들의 에미이기 때문일 게다.

  국내에 있는 사람도 별 수를 다 써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마당에 여기서 자란 내 아들이 병역을 피해갈길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땅끝 오지에 봉사활동은 보내시겠다는 분들도 군대엔 어떻게든지 안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 나같이 극히 평범하고 이기적인(?) 엄마는 안 보내려는 맘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해 자신을 합리화하다가도 '요즘 아이들 군대까지 요리조리 빼주면 도대체 언제…' 하는 생각도 든다.

  군대 보낸 엄마들 가슴 철렁 내려앉는 사건이 났을 때나 27인가 28살에 마지 못해 군대에 밀려 가놓고 군생활 사진전까지 열었던 '송승헌'을 볼 때면 침을 튀겨 가면 토론을 벌이던 우리는 잠정적 결정에 도달했다.  학교 졸업하고 지가 스스로 직장을 얻든 뭘 하든 자립해 살아갈 상황이 되어 굳이 군대 가려고 일부러 들어갈필요가 없다면 모를까 우리가, 없는 능력에 이리저리방도 마련해 개기게 하진 않겠다는… 우리나라에 들어가 기반을 잡고 살아갈 거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고…

  그래도 일부러 찾아들어가 군복무의 의무를 다하게 하겠다는 말은 안 하는 걸 보면 비상(?)시에 쩍 뽀개고 피해갈 구멍 하난 터 논 셈이니, 멍석 깔아주고 도와주며 다 큰 자식 삼십이 넘도록 근 10 여년 간 군대에서 멀리멀리 떨어뜨려 놔두겠다는 부모나 우리나 결국은 오십보 백보 인 것 '같기도' 하다.


'Sour Grapes'
  어느 날, 몹시 굶주렸던 여우가 먹이를 찾아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던 중 탐스럽게 영근 포도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우는 냉큼 포도밭에 뛰어들어 포도송이를 노려보았습니다.  "고것 참 맛있게도 생겼네, 그런데 너무 높이 매달려있단 말이야.  어떻게 해야 저걸 따먹을 수 있을까?"여우는 탐스러운 포도 알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포도가 너무 높이 매달려있어서 아무리 뛰어올라도 따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여우는 자신감을 잃고 결국 포도 따먹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혼잣말로,  "아무나 딸 테면 따라지, 저 포도는 시단 말이야"라고 말하고는 떠나버립니다.

  군복무 피하게 해 주는 것이 달고 탐스런 포도라면 나나 남편은 '자식 군대 가서 썩지 않게 해줄 능력'(맛있는 포도 딸 능력)이 영 없으니 빼주는 부모의 능력을 "맛없는 신포도를 왜 따는 거야.  아이 셔어."하며 "난 맛없고 시어서 할 수 있어도 그런 일 안해" 미리부터 잔뜩 방어기제를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같기도' (下)   계속…

<글 : 진 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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