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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 - 5편(백정으로 거듭난 주인이 살고 있는 시골집 풍경)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4-12 12: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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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9호, 4월13일]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토끼를   잡노. 팍 내리쳐야제"   "여보, 토끼가 어디 갔..
[제169호, 4월13일]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토끼를   잡노. 팍 내리쳐야제"

  "여보, 토끼가 어디 갔지?"
  "토끼는 굴을 파고 들어가서 살기 때문에 닭장에 있는 닭 집 밑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당신은 그것도 몰랐어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토끼장에 갔더니 닭 집 밑에서 토끼가 쏙 올라오는데 어라? 숫자가 늘었나?  그새 새끼를 낳아서 3마리가 되었고 얼마 뒤 또 한 마리 추가.  번식력이 대단했습니다.  이제는 토끼가 닭 모이를 너무 빼앗아 먹어서 구조조정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토끼에게 IMF가 닥치고 말았습니다.  
  "토끼를 어떻게 잡지?"
  아내에게 물으니 한다는 말이 "나도 몰라요, 껍데기를 벗겨야 한다는데..."  하는 수 없이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가서 특수교육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 숫돌에 칼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신이시여.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백정이 없었는데 이제 제가 하는 수 없이 임시 백정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토끼 껍데기 벗기는 일은 토끼를 잡은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닭장이 결코 넓지는 않는데 그 속에서 피해 다니는 토끼를 잡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정말 예상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쉽게 잡는 방법을 터득하였지만 그때는 오로지 그림책에 나오는 방식대로 곱게 토끼를 잡으려고만 하였으니...  어쨌든 수차례 노력 끝에 토끼를 생포하는데 성공하였는데 귀를 잡고 처형장으로 가는 데 토끼는 이미 알아 차렸는지 가슴이 방방 뛰기 시작하대요.

  아주머니에게 교육받은 대로 먼저 몽둥이로 토끼 머리를 쳐서 기절을 시켜야 무슨 일이 진행이 되겠는데 차마 몽둥이로 내리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옆집 아주머니가 담 너머로 쳐다보시면서 하시는 말씀.
  "쯧쯧...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토끼를 잡노.  팍 내리쳐야제"

  그렇게 하여 마침내 가문의 영광에 피칠을 하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절한 토끼의 앞머리에 십자 칼자국을 내고 그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머리를 뽑아내면서 껍데기를 점점 벗겨 나가는 방법으로 껍질과 몸뚱이를 분리시킵니다.  껍질은 땅을 파서 묻어 버리고 알몸은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남은 살코기를 깨끗이 씻어 칼로 적당한 크기로 자릅니다.  껍질을 벗긴 토끼는 보기보다는 살코기가 얼마 안 됩니다.  토끼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전골을 해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처음에는 30분 걸리던 작업이 반복할수록 20분, 10분으로 단축 되었지요.  드디어 가문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백정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형제들이 오는 어느 날이면 미리 전화가 왔습니다.
  "오빠. 토종닭하고 옻을 고아 먹으면 좋다는데..."
  "닭 집에 주문하는 거냐?"
  토종닭, 정말 힘이 장사입니다.  날개를 잡고 처형장으로 와서 발목을 발로 누른 상태로 머리를 손으로 잡고 숫돌에 갈아서 날이 선 칼을 가지고 사정없이 목을 자릅니다.  처음에는 "닭 면도 시키냐"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아내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지요.
  "단숨에 잘라야 닭이 고통을 받지 않는 법이야"
  그렇게 몇 차례 교육을 받고 나서 드디어 완벽한 백정이 되었습니다.

  마당 뒤편에 있는 가마솥에 물을 붓고 장작으로 불을 땝니다.  물이 펄펄 끓으면 잘 손질된 닭과 옻을 넣고 김이 무럭무럭 날 때까지 장작불을 땝니다.  마당 잔디에 빙 둘러 앉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옻닭을 먹습니다.
  "너무 질기다....  그런데 이거 이상하네...  씹으면 씹을수록 달작지근하면서 감칠맛이 나네..."
  처음에는 질기다고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도 자꾸만 그릇으로 손이 갑니다.  토종닭이 질긴 것은 당연하지요.
  "어...  시원하다...  속이 뻥 뚫린다..."
  술을 많이 마시는 제매와 동생이 옻닭 국물을 연신 들이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꽁무니를 빼고 있다가 맛을 들이고 나니 연신 숙모를 부릅니다.
  "엄마! 숙모! 국물 좀 더 주세요."
  가마솥 옆에는 아내와 여동생들이 삥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연신 들이킵니다. 그리고 숯불 속으로 감자와 고구마를...
  이는 백정으로 거듭난 주인이 살고 있는 시골집 넓은 마당에서 일어 난 어느 날 오후의 풍경 스케치입니다.


폐수로 자라나는 배추
  그 때가 초여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시장에 도착하여 아내를 내려주고 길옆의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조금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구경꺼리가 없나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 밭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경운기를 몰고 들어 가시더라구요.

  하도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까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밭 옆에 있는 둑에 정지시키더니 경운기 앞에 달린 펌프에 연결된 호스를 언덕 밑의 하천으로 내리대요.  그 때가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조금 심할 때라 할아버지가 하천의 물을 끌어다가 밭에 주려나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밭에는 봄배추가 많이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하천을 내려다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런 시커먼 물을 주다니!..."
  하천에는 근처 공단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폐수가 약간 역한 냄새를 풍기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물을 퍼서 배추에 주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아내가 왔습니다.
  "여보, 뭐해요?"
  "저것 좀 봐! 저거...  허...  참..."
  "뭔데요? 할아버지가 밭에 물을 주고 계시네요...  요새 비가 안와서..."
  "그게 아니고 저 하천의 물 좀 봐"
  "... 어머나! 저 물을 밭에 주고 있다는 말예요? 세상에..."
  "저런 배추를 우리가 모르고 사 먹고 있으니..."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먹거리에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시커먼 물을 밭에 주고 있는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시골에 오게 된 동기도 이런 일이 많이 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마음 놓고 먹을 먹거리가 과연 몇 가지나 되겠습니까?

  저희는 밭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으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어렵고 해결하기 힘든 과제는 "풀"입니다.
  "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뽑고, 뽑고 또 뽑아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풀, 풀, 풀...  그 넓은 밭의 풀을 일일이 손으로 뽑으려니 생산성은 빵점입니다.  작물 옆에 나는 풀들은 손으로 뽑고 밭고랑에 나는 풀들은 호미를 가지고 긁어서 없애 버립니다.  풀을 뽑고 긁는 일이 작물을 키우는 일의 90%를 차지 할 정도로 농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합니다.  하지만 우리 식구가 먹을 먹거리에 차마 제초제를 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식구가 이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에서 모든 것을 참아가며 살 이유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5월까지는 위의 방식으로나마 어느 정도 견딜 만합니다.  6월이 시작되면 풀이 자라나는 속도가 뽑거나 긁어대는 속도보다 빨라지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밭에 붙어있지 않는 한 속도경쟁이 안됩니다.  그렇게 하여 밭은 점점 풀이 지배하게 됩니다.


<글 : 구행복 9happy0508@hanmail.net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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