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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의 좌충우돌 시골생활기- 2편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3-15 12: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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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6호, 3월16일] 우여곡절의 시골생활은 시작되고   저희 가족은 그 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약 3개월을 버티었는데 더 이상 다..
[제166호, 3월16일]

우여곡절의 시골생활은 시작되고
  저희 가족은 그 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약 3개월을 버티었는데 더 이상 다닐 곳이 없어 집이 완공되기 일주일전에 아래채로 잠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시골은 몹시 춥지 않습니까?  난방이 안 되는 방에 전기장판을 깔고 일주일을 보냈는데 물도 나오지 않아 앞집에 가서 조금씩 물을 얻어와 휴대용 가스난로로 밥을 해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마치 6.25 피난민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아내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1990년 3월.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습니다.  대지는 570평이지만 건평 24평에 방 3개, 거실, 화장실, 부엌...  앞집에 맡겨놓은 짐을 옮기기 위해 형제들이 총 출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짐을 옮기고 드디어 시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제 아들이 대학 졸업 후 병역을 마치고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당시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 당시 업자에게서 되돌려 받기로 했던 돈은 그 후 포기를 했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가는 일이 처음부터 저희 가족에게 너무 힘이 들고 어려웠지만 이사 후에는 집을 짓기 위해 빌렸던 돈도 일찍 갚았고, 경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었으며, 비록 시골에서 공부를 했지만 아들은 그 지역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서울 대학을 갔을 뿐 아니라 약골이었던 아내의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지는 등 모든 부분에서 저희 가족에게 좋은 일만 있어서 그 일은 그냥 액땜으로 생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시골생활을 하기 위한 첫 단계에 어렵게 진입은 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생각해보면 제가 시골 생활을 통해 배운 진리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것입니다.  365일 생각만 하고 앉아 있어서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행동으로 옮겨야 결과가 있다는 아주 소박한 진리입니다.  어쨌든 지금부터 흥미진진한 시골생활 왕초보들이 펼치는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괜찮겠소?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데.."
  이사를 마무리하고 첫날 밤 방에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눕기 위해 그토록 힘든 길을 왔을까?  너무나 정신과 육체가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지만 꿋꿋이 잘 참고 견디다보니 그래도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그렇게 시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프라이드를 타고 다녔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가 없었습니다만 시골에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하겠기에 아파트를 팔기 전 부랴부랴 운전 시험을 치르고 면허증을 받았습니다.  면허증을 받기는 받았는데 회사일 때문에 연습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차는 대리점에서 아파트에 갖다 놓았지만 차를 몰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 한 달 동안 주차장에 전시해 놓아서 먼지만 뽀얗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 집 마무리 공사 때문에 급히 시골에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차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동료의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빌려 타고 다녔지요.  그런데 그날은 동료의 동생이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겼어요.  그래서 엄청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야 하나, 아니면 버스를 여러 번 타고 반나절을 가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평소 회사 사장님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출장을 많이 다니다보니 실제로 운전은 못해도 어떻게 한다는 방식은 알고 있었기에 까짓것 하면 되겠지. 사이드를 확인하고 시동을 건 후 클러치를 밟고 1단 기어를 넣고 서서히 출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며 애써 태연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옆자리에는 아내를, 뒷자리에는 동료부부를 태우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동료는 연신 저에게 물었습니다.  "괜찮겠소?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가도 되는데... 쩝쩝..."

  동료의 아내도 큰 눈망울에 근심이 가득한 채로 자꾸만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었고 아내도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여보? 자신 있어요? 괜찮겠어요?"

  "부르릉!"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습니다.  어렵소? 생각보다 운전이 쉬웠습니다.  그 길로 차를 달려 1시간 30분 걸리는 곳을 2시간 정도 걸려 무사히 시골의 공사현장에 도착한 것이 제가 운전을 시작한 첫날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도박에 가까운 행동을 하기는 했네요.

  시골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나타 난 가장 큰 문제는 교통문제였습니다.  제가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해 버리면 아내는 완전 고도에 갇힌 꼴이 되었습니다.  제 집에서 아들의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렸고, 버스가 다니기는 다니는데 하루 4번 다녔으니 도시 생활에 젖어있던 아내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들의 학교 등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교통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월급쟁이 형편에 차를 2대나 살 수도 없었으니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내의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참고 살아갈 수 있는데 이건 아니다.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나 혼자서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해결책으로 내어 놓은 것이 자전거였습니다.

  우선 자전거를 한대 샀습니다.  짧은 생각에 급한 대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나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아내의 불평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목욕은 주말에 차를 타고 읍내로 가서 해결했습니다.  반찬거리도 5일마다 열리는 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 와야 했습니다.  시골의 장터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슈! 아저씨!"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아내는 결국 학원에 등록하였는데 다행히 자동차학원 버스가 우리가 살던 집 근처까지 다녔기 때문에 그 학원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몇 번의 낙방 끝에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받았고 몇 차례의 연습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실력이 쌓였다면서 학원차를 가지고 도로연수를 하면 돈이 드니까 나더러 아침마다 연습을 시켜달라고 하대요.

  운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가능하면 부부끼리 운전 연습 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이혼에 이를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시골에서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과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내가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아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당장 운전학원에 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꾸 차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아내를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구요.  휴일은 집에서 쉬고 싶은데 운전을 하고 싶어 하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차를 가지고 나가면 마지막에는 본의 아니게 십중팔구 말다툼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고민 끝에 티코 새 차를 풀 옵션으로 구매했습니다.  차가 도착하자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며칠 간 마당에 차를 세워 놓고 매일매일 차를 반짝반짝 닦으며 준비를 하던 아내가 어느 휴일 날 드디어 혼자 장에 갔다 온다고 키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집이 570평이라 엄청 넓어서 초보운전자라고 해도 충분히 차를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내의 자존심을 살려 주려고 괜찮겠어? 하면서도 저는 집안에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슈! 아저씨!"

  약간 비꼬는 미소를 얼굴에 지으면서도 긴장된 표정의 아내가 나가고 조금 있다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몇 분후.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글 : 구행복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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