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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LOVE & BABY 스토리 (13) - 소녀는 이미 늙었고 학업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2-08 12: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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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1호, 2월9일]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 하는 공부는 부모 밑에서 하던 공부 때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
[제161호, 2월9일]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 하는 공부는 부모 밑에서 하던 공부 때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특히 전업 학생이 아니고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할 경우 그 의미는 더 크게 확대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어떤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아니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정말 무엇인가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없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직장 다니면서 '자기 개발'을 위해 하는 공부도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이 자기 개발을 통해서 보다 나은 직장을 잡거나 또는 아예 전업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단순한 공부가 아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공부인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좀 더 복잡한 속내가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 과정에서 지난주에 간신히 또 한 과목을 마친 후, 지금 유난히도 많은 생각이 든다.  홍콩에서는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참 용이한 것 같다.  주말에 아주 인텐시브하게 한 달 안에 한 과목씩 끝낼 수 있게 디자인된 과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이 모든 과정들의 타겟은 직장인들일 것이다.  자신의 역량을 좀 더 키우고 더 나은 직장을 잡는데 이미 필수가 되어 버린 여러 가지 학위들, 물론 나도 더 나은 직장을 잡으려는 희망으로 고학위를 따고자 대학원 과정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순된 점이 있는데,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과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 과정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장 손쉬운 것은 아무래도 학부의 전공을 그대로 따라 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학원 과정에 신빙성이 생긴다.  학부의 과정이 부족하여 일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비슷한 과정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100% 말 된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실은 학부의 전공과 크게 상관이 없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도 그닥 연관이 없다면? 약간 어긋난 선택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석사 학위를 따고자 공부하는 꼴 밖에 안되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았을 때 나는 공부하는 학생 시절이 얼마나 환상적인이지 온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공부를 위한 공부만 할 수 있는 그런 꿈을 늘 꿨다.  공부를 해서 어떤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태의 공부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다.  아주 선택받은 몇몇 사람을 빼고는 누구나 직장을 잡고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회의를 조금 느끼나 보다.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눈 앞에 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구나 아이가 있는 아줌마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몇 배는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게 가치 있는 투자일까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느라 아이를 잠깐씩 보면서, 그나마 주말까지 온 종일 투자하게 된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겠지.  그러니 지금 하는 공부가 미래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 공부하는 학위가 나의 미래에 어떤 직접적인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 정확하게 말  하자면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고집하는 이유는? 내가 없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유는? 바로 '공부' 라는 매력적인 일을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머릿속의 많은 세포가 죽은 것 같다.  한 과목을 끝내고 나서는 최소한 이삼 개월은 휴식을 해야 다시 한 과목을 들을 수 있다.  이미 옛날같이 머리가 말랑말랑하지 않아서 뭐든지 흡수할 수도 없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겪고 실망해서 세계관도 매우 부정적이고 고정관념도 예전 보다 몇 배는 많아졌다.  한마디로 소녀는 이미 늙었다.  그렇다.  나는 공부하기에 지금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다.  아이가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미 부모가 학비를 대주는 시기도 지났다.

  지난 일요일.  10시까지 수업에 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최소한 9시에는 나와야 한다.  아침에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죄책감에 쌓여서 집을 나섰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만 지나면 일단 또 한숨을 돌릴 수 있을 터였다.  커피 한잔을 사 들고 교실에 앉아 있으니 기운이 났다.  그래 또 한 과목을 완성했구나.  물론 어떤 지식을 얻는 것도 공부의 묘미이다.  하지만 공부가 주는 진정한 목적은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인 것 같다.  무엇인가를 완성했을 때의 그 느낌 그리고 완성을 위한 중간의 치열한 과정들.  내가 듣는 수업에 학생들 대부분이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아주 프레쉬한 학생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느껴지는 열기는 내가 보기에 아주 어린 사람들보다 더 뜨거운 것 같다.  이들 모두 나와 비슷하게 시간에 쫓기고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학생도 많다.  이들에게 공부는 단순한 공부가 아닌 것이다.  각각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이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의 시간 또는 월급의 큰 부분을 희생하고 올 만큼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각각의 느끼는 자기만의 중요한 의미,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일요일 수업이 의외로 약 한 시간 빨리 끝났다.  매번 한두 시간씩 초과했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남편과 딸아이는 학교 근처의 박물관에서 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전화를 하니 금방 마중을 하러 왔다.  딸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공부 잘 했어? 많이 똑똑해졌어?"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손에 쥐고 있는 스티커 하나를 내 가슴에 붙여준다.  공부 잘 해서 주는 상이라고…  음…그래, 나는 늘 공부하는 엄마이고 싶다.


<글 : 박인선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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