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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차이나 드림] 2. 난민 아닌 난민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7-02-08 11: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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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1호, 2월9일]   중국 베이징(北京)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  한 아파트 단지의 지하에 들어서자 60여개의..
[제161호, 2월9일]

  중국 베이징(北京)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  한 아파트 단지의 지하에 들어서자 60여개의 방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월세가 260위안(약 3만1400원)에 불과한 단칸 셋방이다.  왕징에서 방 3개짜리 아파트 월세는 4000위안 이상이다.  가장 싼 방인 셈이다.  한때는 '사장님'이었다가 지금은 빈털터리가 된 윤모씨(52)가 2년째 살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침대 하나 놓고 겨우 생긴 빈 공간에 옷가지를 담은 트렁크를 여러개 쌓아놓아 방문을 늘 열어놓고 지내고 있다.  왕징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다가 1억원 이상을 날린 뒤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게를 접은 그가 외부와 이어지는 유일한 수단은 중고 휴대전화.  받을 때는 휴대전화로 받지만, 걸 때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한통화에 0.3자오(角·중국 화폐단위·36원)인 신문 가판대의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윤씨는 돈을 모아 재기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베이징의 한 대학에 재학중인 딸과의 연락마저 쉽지 않은' 철저하게 잊혀진 삶을 살고 있다.

  실패한 자영업자들은 귀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장사하느라 빚더미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업이 어려울 때 주변 지인들에게서 돈을 꾸고는 싶지만 교민들끼리 금전 거래는 쉽지가 않다.

  1996년부터 베이징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조광식씨(52)는 "한국 교민들은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꿔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따라서 이들이 손쉽게 찾아가는 곳이 중국인 사채업자다.  살인적인 고리대를 무릅쓰고 손을 내밀고 있다. 사채업자에게 1만위안을 빌릴 경우 선이자를 제하고 이자는 월 10%다.  1만위안을 빌려 9개월만 지나면 2만위안이 된다.

  문제는 사채를 쓰려면 담보로 여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채를 이용해 빚더미에 오른 자영업자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여권이 없어 갈 수 없다.  '난민 아닌 난민'으로 중국 대륙을 떠돌아 다녀야 한다.

  정 형편이 어려우면 우리 돈 200만원 정도에 여권을 팔기도 한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다.  한·중수교 이전 베이징에 정착해 20여년째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자영업 컨설팅을 하고 있는 김모씨(68)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구한 사연들이 많지만, 내 입으로 직접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베이징의 한 교회에서는 불우이웃 돕기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새벽기도에 참석한 한 여성 교우가 초등학교 학생 형제가 "하루 세끼 따뜻한 밥을 먹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엿듣게 되면서 시작됐다.  사정을 알아본 결과 이 형제는 중국에 사업하러온 한국인 부모의 사업이 부진해지면서 끼니를 걱정하는 형편인 것으로 밝혀졌다.

  난민처럼 중국 대륙을 떠도는 교민들의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  체면 때문에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져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북(東北) 3성이나 산둥(山東)성 등 우리 자영업자들이 많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도 '난민 아닌 난민'이 드물지 않다.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한 종교단체가 자체적으로 교인들의 인적 상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40%가 정상적인 비자를 발급하지 못한 채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업차 중국에 올 때는 취업(Z)비자를 받고 오지만 해마다 비자를 제때 경신하지 못하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한다.  방문(F)비자도 중국 현지에서 3번까지만 갱신할 수 있고,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선양(瀋陽) 등 상당수 한인회는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찾아올 경우 귀국편 항공권이나 배편을 제공하고 있다.  선양 한인회 관계자는 "귀국 여비가 없다고 사정하던 한 자영업자를 위해 비행기표까지 마련해 공항에 바래다주었지만 그날 저녁 선양의 술집에서 마주쳤을 때의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로 돌아가 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한 이 자영업자가 비행기 표를 현금으로 바꿔 술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준비없는 중국 진출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출처 : 경향신문, 베이징|홍인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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