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림
2024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구룡성채를 직접 마주할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 1993년에 구룡성채(철거 이후 발견된 현판에 따르면 이곳의 본래 명칭은 '구룡채성'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구룡성채'라는 명칭이 가지는 상징성과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에 따라 앞으로 구룡성채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에서 홍콩으로 불법 밀항한 주인공 찬 록쿤(임봉 역)이 삼합회의 추격을 피해 구룡성채로 진입하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난관에 부딪힌다. 30여 년 전에 사라져 버린 구룡성채를 어떻게 스크린 앞으로 불러낼 것인가?
이 영화의 세트장이 구현된 방식으로 보아, 영화 또한 재현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우선 '구룡성채'의 스트레오타입 이미지를 꺼내든다. 건물 외벽에 빽빽이 붙어 있는 네온사인이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구룡성채의 한 골목길은 마치 이미 사라진 옛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전시해 둔 어느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인물들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층계로 이루어져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동시에 천장 중간이 둥그렇게 부서져 있어 카메라가 1층과 2층 공간 모두를 보여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스펙터클을 이루는 액션 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홍콩 영화 전성기 시절 홍콩 무술 영화를 즐겨 보았던 관객이라면 무엇보다 홍금보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다. 홍금보를 비롯한 고천락, 곽부성의 등장은 70년대부터 90년대(어쩌면 00년대)에 이르기까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홍콩 영화의 아릿한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만 당시 가화삼보의 액션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액션은 2000년대 견자단 영화에 더욱 가깝다. 견자단과 함께 작업해 온 타니가키 켄이 무술감독으로 기용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구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노쇠했다는 사실이 자명하다.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통해 건재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의 액션 신은 더 이상 롱테이크로 잡히지 않고, 적은 수의 동작으로 큰 타격감을 불러내는 무술 시퀀스를 선보인다. 즉, 영화는 이미 지나간 시절과 이미 사라진 공간을 완벽에 가깝게 증언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전성기 시절 홍콩 영화의 잔상을 불러내는 동시에 풍화된 부분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그 시공간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영화 중반에 이르러 구룡성채에서 본격적으로 미스터 킹과 사이클론 일파의 싸움이 펼쳐진다. 결국 미스터 킹 일파가 그 주도권을 가지고 오게 되면서 구룡성채는 마약의 소굴로 변모한다. 이후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고향과 다름없는 구룡성채를 되찾기 위해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 이들은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찍 집으로 들어가라고 당부하고, 미스터 킹 일파가 장악한 이후 마약 제작 등으로 착취당하던 구룡성채 거주민들은 이들의 귀환을 반기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며 함께 그 말을 따른다. 그렇게 벌어진 싸움은 과거 세대와는 다르게 단순히 구룡성채 영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패싸움이 아니다.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일상을 되돌려 놓기 위한 노력에 가깝다. 그리고 공기투를 사용하며 마치 사이보그와 같은 무술을 선보이는 미스터 킹의 부하와 대결하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영화는 구룡성채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 즉 그 대결을 몰래 지켜보고 있을 비가시적인 존재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부하가 공기투를 쓰는 것을 막고 그를 죽이기 위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물리적인 차원의 사이클론은 구룡성채라는 빽빽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연을 날리며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애쓴 사이클론(고천락 역)을 은유하며 구룡성채에서 살아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환기한다. 구룡성채를 탈환한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이 구룡성채 꼭대기 층에서 이곳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화면은 다시 그곳에서 일상을 재개하는 거주민들의 움직임을 비춘다. 마치 그곳의 점유자가 누구이든 날이 바뀌면 다시 또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듯. 구룡성채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조명한 엔딩 장면에 이르러서야 구룡성채는 재현 가능성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 약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룡성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꾸려 나고 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구룡성채를 체험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이미 지나간, 사라진 시공간을 붙잡지 않으려는 영화의 태도를 통해 많은 점유자들이 홍콩을 거쳐 갔어도 결국 홍콩을 홍콩답게 만드는 것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홍콩인들이(었) 다는 과거 홍콩을 기억하고 현재의 홍콩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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