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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향유기] 관객과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 이를 반복하기.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11-17 03:40:03
  • 수정 2023-11-17 0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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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천하무쌍>(Chinese Odyssey, 2002)

작가 이아림


1990년대에는 <동사서독>의 촬영이 너무 늘어지자 배우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수 없어 기분 전환 차원으로 찍었다던 영화 <동성서취>가 있다면, 2000년대에는 유사한 패턴으로 <2046>이 제작되는 동안 만든 영화 <천하무쌍>이 있다. 배우들은 예정에도 없던 영화를 찍게 된 셈인데, 직업으로서 배우는 연기를 한다는 것이 곧 자신의 일이기에 휴식을 위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등장인물들이 ‘연기를 하고 있음’을 스스로 발화하는 지점들이 흥미로워지는데, 마치 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그 행위를 하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황제(장첸 역)는 궁궐을 탈출한 공주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자신의 어머니인 천후(반적화 역) 앞에서 한다. ‘나의 연기력이 또 빛을 보는 군’이라는 대사를 통해 ‘궁궐을 탈출한 동생을 찾고자 하는 황제’의 이미지는 연기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황제는 펑제(조미 역)에게 자신이 이 나라의 황제가 아니라 가오 공자이며 아직 성공하지 못한 배우라는 사실을 밝히며 황제가 아닌 상태를 연기한다. 즉, 황제에게 ‘연기’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관객에게 그 ‘연기’란 통하지 않는다. 오직 그것을 아직 모르는 영화 속 캐릭터인 펑제에게만 연기가 아닌 진실인 셈이다. 이는 관객이 배우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보도록 만드는데, 이때 장첸은 그 거리감을 믿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관객 또한 그 거리감을 바탕으로 그의 연기를 하나의 풍경처럼 여기고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웃음을 의도한 연기임에 자명하므로.



하지만 연기 속 ‘연기’가 ‘연기’가 아니게 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박꾼이냐고 싫어하는 펑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수레에 크게 부딪힌 황제(공자)는 펑제에게 팔찌에 뭘 좀 더했다며 팔찌를 돌려주며 펑제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나의 연기력이 또 통했구먼", "하지만 이때 연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기였다." 진실이 아닌 것을 전하는 때에 진심이 들어간 순간 관객은 캐릭터와 가까워진다. 여전히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층위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 ‘연기’에는 진심이 들어 있다는 모순된 발언을 직접 발화함으로써 관객은 그 진심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연기’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을 잠시 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룽 (양조위 역)을 그리워하다 미쳐 버려 자신 스스로가 이룽이 되어 버린 공주와 그 광경을 보고 공주를 연기하는 이룽이 주고받는 대화 신이 그러하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데 실패하고 세상을 유랑하던 이룽이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공주를 연기하며 자신의 진정한 사랑은 이룽/공주 당신이라는 것을 공주에게, 스스로에게 전한다.

 

“반지가 꼭 맞으려면 진심을 다해야 해. 집중하고 유일한 사랑으로 날 떠올려봐.”

 

태후 앞에서는 피를 흘릴 정도로 반지는 빠져나가려 애썼지만 결국 손에서 빠지지 않았던 공주의 반지와는 달리 이룽의 손에서 빠져나왔던 반지는 이제 아무도 해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손에 잘 안착해 있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며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이룽과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굳건한 사랑’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관객들과 가까워진다. 뻔하지만 항상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시련을 극복한 연인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관객에게 가 닿는다.


마치 신이 되어 하늘 아래 세계를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관객의 위치를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굳건한 사랑’ 캐릭터와 화면 밖 나레이터 덕분이다. 그/그녀는 영화 속 캐릭터들은 모르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로서 종종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과 그 정보를 공유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먼저 거리감을 확보한 상태에서 연기 속 연기의 변주를 통해 관객은 배우들의 연기와 원근감을 가지게 되고, 그 사이를 오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가늠할 수 없는 거리감이야 말로 영화 <천하무쌍>의 묘미이자 그 독자성을 확보하게 하는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몸을 내던지며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양조위, 왕페이, 조미, 장첸이라는 네 배우의 매력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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