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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연의 미술도시, 홍콩] [9] 도시 속 역사적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10-27 10: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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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콴이 보여주는 도시예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왼쪽 한편으로 폭이 넓은 계단과 그 계단이 이끄는 붉은 벽돌 건물을 마주한다. 계단을 한 칸씩 올라 좁은 통로로 들어서면 복잡하고 촘촘하게 느껴지는 홍콩의 미드레벨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건물의 역사를 조금 훑어보고 가서였을까? 도심의 오아시스라던 그 마당에 섰을 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건물로 들어설 수 있는 입구는 여러 곳인데, 이 입구들은 19세기 경찰관들과 수감자들이 오가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피아워를 진행하는 바와 레스토랑들이 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몇 세기 전, 이곳이 중앙 경찰서 건물이 아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장면이다. 

 

 타이콴은 1860년대에 사법시설인 ‘중앙 경찰서 건물’로 세워졌다. 이곳은 현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와 소호 지역에 접해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범죄자를 기소하여 재판을 통해 곧바로 투옥시키는 식민지 행정기관과 군사 건물에 속해있던 공간이었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 철거와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건물의 원래 용도는 폐기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홍콩을 현대 시각문화의 중심지로 표방하고자 했던 정부가 이 도시 중앙의 거대한 부지를 문화 기관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역사적 기관은 2017년, ‘타이콴, 문화유산과 예술의 중심(Tai Kwun: Central for Heritage and the Arts)’으로 재탄생했다. 법원, 경찰서, 교도소로 구성되었던 네오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이 현대의 미학과 만나 상업시설과 공공예술을 선보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림1] 타이콴 중앙 마당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상업과 공공의 조합으로 구성된 타이콴 건축은 그 자체로 홍콩 도시만의 독특한 시각문화를 만든다. 홍콩 시내의 고층빌딩들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재탄생한 역사적 건물들과 통로와 마당, 그리고 이 모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시각예술들을 둘러싸고 있다[그림1]. 

 

 타이콴의 조금 더 내부로 들어서면 석조 건물들 사이에서 알루미늄 외관으로 구별되는 장소가 있다. 이는 동시대 시각예술 센터이자 비영리 시각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JC Contemporary와 JC Cube, 그리고 두 건물을 이어주는 야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위스 건축 회사인 헤르조그 앤 드뫼롱(Herzog & de Meuro)이 디자인한 이곳은 각 건물에서 전시, 교육, 문화 행사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림2] 《Killing TV》 전시 모습

 특히, 독특한 나선형 계단을 가진 JC Contemporary 건물에서는 층별로 각각 다른 주제의 동시대 예술을 선보인다. 10월 현재, 1층에서는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텔레비전을 주제로 《Killing TV》라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그림2]. 이 전시에서는 대중매체의 만연한 힘에 관하여 탐구한 작가들이 텔레비전을 여러 맥락에서 예술 제작에 활용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3층에서는 안무가이자 예술가인 마리아 하사비(Maria Hassabi, 1973-)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Maria Hassabi: I'll Be Your Mirror》가 진행되고 있다[그림3]. 마치 살아있는 조각품을 보는 것 같은 예술가들의 퍼포먼스와 음향, 사진, 회화 등이 결합한 예술(live installations)을 만날 수 있다.


[그림3] 《Maria Hassabi: I'll Be Your Mirror》 전시의 퍼포먼스와 설치 모습

 홍콩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은 인구밀도와 빌딩의 밀집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러한 홍콩에서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가장 가치 있는 도시의 중심부가 공공의 문화예술 공간과 사유화된 공공 공간으로 독특하게 결합하여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PLACE: JC Contemporary & JC Cube

 

타이콴의 예술 센터로 JC Contemporary와 JC Cube를 야외 좌석 공간인 Laundry steps가 이어주는 모양을 하고 있다. 대중들이 동시대 시각예술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시 주제를 중심으로 비영리로 진행되는 만큼 홍콩 대다수의 상업 갤러리들의 전시와는 차이가 있다. JC Contemporary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동시대 시각예술을, JC Cube에서는 시각문화와 관련된 영상 상영, 강연, 컨퍼런스 등을 선보인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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