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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연의 미술도시, 홍콩] [6] 궁정의 취향이 궁금한가요?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09-08 11:19:43
  • 수정 2023-09-15 1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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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고궁박물관의 건륭제 시기의 시각예술

[그림1] 중국 자금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건축한 홍콩 고궁박물관

 홍콩 고궁박물관의 상설전시는 베이징 자금성에 있는 고궁박물관의 보물들을 대여하여 이루어진다. 중국 고궁박물관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166점의 국보를 포함하여 900점이 넘는 화려한 문화유산을 선보이고 있다[그림1]. 이러한 중국의 건축, 회화, 서예, 조각, 공예품 등을 포함한 많은 작품 가운데 유독 눈에 띄었던 한 궁정 미술품이 있다. 이 작품은 전시장을 채운 화려한 작품들과 더불어 18세기의 강력한 통치자 중 한 명이었던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6-95)가 시각예술을 통해 어떻게 부귀영화를 기원하고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권위를 드러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2] <박고도괘일대(博古圖掛屏一對/Pair of hanging panels with antiquities cabinets)>, 건륭제 시기(1736-95) 제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다채로운 ‘표면’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있다. 이는 건륭제 시기에 제작된 <박고도괘일대(博古圖掛屏一對, Pair of hanging panels with antiquities cabinets)>라는 작품이다[그림2]. 이 작품은 귀한 물건이나 서책으로 채운 책장을 그린 조선의 ‘책가도’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현대의 미니어처 공예품을 생각나게도 한다. 작품 속에는 병풍 모양을 한 양쪽 패널에 20개 정도의 기물들이 평면 회화와 입체 조각의 중간 형태로 돌출되어 나타나 있다. 

 

 ‘만짐’을 자극하는 이러한 형태는 감상자의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기물들은 매화와 모란 등이 피어있는 화분, 골동품, 서책, 옥새, 장식품, 시계, 어항, 물고기 조각, 과일, 문방구 등으로 옥과 보석, 칠보, 자단나무 등으로 만들어졌다[그림3]. 이들은 세밀하게 장식된 나무 선반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청대 궁정에서 소장품을 진열하기 위해 제작하였던 ‘다보격(多寶格)’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림3] <박고도괘일대(博古圖掛屏一對/Pair of hanging panels with antiquities cabinets)> 세부 기물들

 청대 궁정이나 상류층들은 ‘다보격’, ‘다보각(多寶閣)’ 혹은 ‘박고가(博古架)’ 등으로 불리는 선반이 있는 장식장에 다양한 유형의 값지고 귀한 물건을 진열하여 전시하였다. 이 중에서도 청조 최전성기를 다스렸던 건륭제의 다보격은 당대에 제작된 것부터 주대, 한대, 송대, 청대까지의 다양한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궁정 소장의 예술품으로 채워졌다. 건륭제는 뛰어난 안목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유물들을 수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조에게 물려받은 보물들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그리고 이를 단순히 소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보격에 하나의 집합품으로 재구성하여 서재이자 학자들을 만나고 사신들을 접견했던 수방재에 배치하였다. 기물들을 배치했던 선반 역시 각각의 소장품에 맞춰 높이와 넓이도 다르게 제작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보격의 미니어처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발걸음을 옮겨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작품 속에서는 작은 크기로 축소된 기물들의 ‘실제’를 마주하게 된다[그림4]. 사물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건륭제의 소장품들을 새로운 형태로 재제작하여 또 다른 맥락에서 이들을 감상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 속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4] 홍콩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건륭제가 사용했던 붓, <박고도괘일대>에서는 우측 패널 상단 통에 꽂혀 있다. 이 밖에 다른 기물들도 전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축소된 기물들은 왕의 취향을 보여주는 실재했던 물질이면서도 건륭제가 소유했던 부귀영화와 미덕, 문기, 상서로움 등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붓, 종이 등이 꽂힌 문방구류는 평소 다양한 예술 작품에 직접 시를 남긴 건륭제의 문기를, 서책 위에 올려진 옥새는 왕의 위엄을, 꽃이 활짝 핀 모란과 매화는 풍요와 동시에 군자의 절제와 미덕을, 어항과 물고기 조각은 잘 알려진 대로 부귀와 길함 등을 의미한다. 질서 속에서 아름답게 배치된 이러한 물건들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궁정 권위의 상징이자 건륭제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평가했던 안목을 보여준다.

 

PLACE 홍콩 고궁박물관

홍콩 고궁박물관은 현대미술관인 M+ 미술관과 함께 빅토리아 항구 옆 시주룽문화지구에 위치한다. 2022년 총 7층 규모로 개관하여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관에서 대여한 914점의 소장품들을 통해 중국의 왕실문화를 관람할 수 있다. 총 9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소 5개의 전시장에서 상설전시를 통해 중국 고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나머지 전시장에서는 특별전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칼럼 소개 :  홍콩에서는 가장 큰 아트 페어 중 하나인 아트 바젤이 열리고, 세계적인 옥션 회사들이 일 년 내내 프리뷰와 전시를 개최하며, 대형 갤러리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쉴 틈 없이 선보인다. 그리고 홍콩에는 M+ 미술관과 홍콩고궁문화박물관 등이 위치한 시주룽문화지구, 시대에 상관없이 내실 있는 전시를 선보이는 HKMoA와 시각예술 복합문화공간인 K11Musea, PMQ, 타이콴 헤리티지, 전 세계의 유명 및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중소형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홍콩은 동서양의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이 살아 숨 쉬는 미술 도시이다. [미술도시, 홍콩] 칼럼은 미술교육자 원정연이 이러한 장소들을 방문하며 전하는 미술, 시각문화, 작가, 전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정연

미술사/미술교육을 공부하고 미술을 통한 글쓰기를 강의했습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홍콩의 다채로운 시각문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졸업, 서울대 사범대학 미술교육(이론) 박사 수료

- 강남대 교양교수부 강사, 서울대 사범대학 협동과정 책임연구원 및 창의예술교육과정 강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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