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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향유기] B급과 S급의 경계에서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07-21 10:09:51
  • 수정 2023-08-05 2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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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동성서취>


글쓴이: 박시원

 

‘올스타전’이라는 말은 단지 스포츠계에서나 쓰이는 말이 아닌 듯하다. <동성서취>는 유진위 감독, 왕가위 제작의 B급 코미디 영화로 그 시절 홍콩 영화를 이끌어갔던 톱 배우들과 톱 제작진이 총출동하여 만든, 그야말로 올스타(All-Star) 영화이다. 관객은 장국영, 임청하, 왕조현, 양가휘, 양조위, 장만옥, 장학우, 유가령을 한 프레임 안에서, 그것도 그들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열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서유쌍기>의 감독 유진위, 그리고 <중경삼림>과 <화양연화>의 감독 왕가위가 힘을 합쳐 제작을 맡은 <동성서취>는 홍콩 영화와 배우를 사랑하는 팬들에겐 그저 꿈 같은 영화로, 이 영화를 접한 사람은 그저 열광할 수밖에 없다.


사실 <동성서취>는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영화다. 왕가위 감독의 제작 스타일이 어떤지 홍콩 영화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문으로라도 들어봤겠지만, 왕 감독은 출연진과 제작진을 힘들게 하기로 악명높다.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한 컷 촬영을 반복하는 것은 기본이고, 제대로 짜인 스케줄 없이 당장 다음 촬영할 신을 그날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기도 한다. 몸값 높은 배우들이 모였으니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동사서독>도 마찬가지로 수년 동안 촬영이 이어졌고 차일피일 늘어져 제작비가 전부 소진되고 말았다. 작품의 주 무대가 사막이라 배우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촬영 도중 왕조현이 중도 하차하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난항에 빠져버린 <동사서독> 촬영을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제작으로 있던 유진위 감독이다. <동성서취>는 개봉 후 흥행에 대성공했고, <동사서독>의 1년 치 예산을 벌어들이는 쾌거를 보였다. 왕가위 감독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영화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동성서취>와 <동사서독>은 김용의 무협소설인 <사조영웅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등장인물은 변함이 없지만, 배역이 다르게 설정되었다는 점이 다른데 <동사서독>의 구양봉, 황약사가 장국영과 양가휘였다면 <동성서취>는 양조위와 장국영이 배역을 맡는 식이다. 언급된 인물 이외에도 두 작품에서 서로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말 그대로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작품이라, 배우들의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진지하게 사랑과 후회를 열연하던 <동사서독> 속 배우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배로 폭소하게 된다. 특히 양조위의 태연한 코믹 연기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코미디를 전문적으로 배웠나 싶을 정도로 극과 잘 어우러진다. 


<동성서취>는 정말 대놓고 ‘황당한’ 영화이다. 그러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의 짜임새와 완성도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어불성설인 듯하지만 곱씹어 보면 세련된 유머의 연속은 작품이 코미디 영화로써 충실히 본분을 지키게 하고, 수준 높은 개그가 가득 담긴 각본은 공수가 끊임없이 전환되는 긴장감 넘치는 탁구 게임처럼 등장인물들이 완벽한 합을 이루게 돕는다. 당시 홍콩에서 내로라하던 대형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어느 한 인물에 치우침 없이 배역의 비중을 맞추어 균형을 유지했으며, <동성서취>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제 기량을 발휘하고 배역에 맞는 임팩트를 남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미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어 지루할 법도 한 고전 무협 소설인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변용하는 시도는 관객이 호기심을 갖게 하고, 기존의 내용에서 영리하게 비틀어진 새로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각각의 인물들에게 독특하고 확고한 캐릭터성을 부여하며 작품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수많은 이들의 등장에도 마치 이들을 체스판의 말처럼 영리하게 인물들을 배치한 구성이 인물 간의 서사와 케미스트리를 확실하게 잡아내며, 작품의 모든 요소를 통틀어 봐도 무엇 하나 아쉬운 점이 없는 코미디 영화가 만들어졌다.


B급 영화라기엔 짜임새가 훌륭하고, A급 영화라기엔 해학이 한가득 담긴 작품이다. 찬란했던 그 시절의 홍콩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과 아직도 그 시대의 스타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S급 작품일 <동성서취>를 추천하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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