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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한인70년사] 제6-1장 Ⅰ 20 세기의 끝자락에서 (1998-1999)
  • 위클리홍콩
  • 등록 2023-05-05 11:33:18
  • 수정 2023-05-29 01: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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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과 도전



1997년 말부터 불어 닥쳐온 한국 경제의 파란은 홍콩 한국인 사회에도 여지없이 불어왔다. 국내에서 IMF의 메스가 가해지면서 강요받은 개혁으로 금융기관의 통폐합, 구조조정 등으로 해외지점 및 지사 등을 축소 내지 퇴출함으로 인해 1998년 한 해에 홍콩 한인 약 2,000~3,000명이 홍콩을 떠나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때에 1998년 3월 1일 제50회 한인회 정기총회에서 이성진 회원이 제40대 한인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남아 경제난의 여파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많은 주재 상사가 폐점 또는 인원을 감축하였고 개인 사업을 하던 많은 교포도 귀국 또는 중국 (특히 선전 지역), 미국 등 제3국으로 이주하였다. 가장 심각한 변동은 80여 개의 한국계 은행 및 제2금융 지사 또는 현지 법인들이 폐쇄 또는 축소와 합병으로 40여 개만 남게 되었다. 한국인 여행자들의 극적인 감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체는 여행사, 식당, 숙박 업체 및 쇼핑업체로서 그동안 호경기로 인하여 우후죽순으로 성업 중이던 많은 여행사(In Bound 취급)가 폐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곳은 한국국제학교와 한인회 그리고 한인회 부설 한국학원이며 98년 중에 교민 수가 7,000여 명에서 98년 6월 현재 5,500명으로 극적인 감소세를 보였으며 국제학교의 재학생 수가 430여 명에서 360여 명으로 한국학원은 720여 명에서 420여 명으로 대폭 감소함에 따라 한국국제학교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새로 취임한 이성진 회장(국제학교 재단 이사장)은 교직원의 급료 동결, 상여금 조정, 운영의 합리화 등을 통하여 소신과 신념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강행하여 97학년도의 재정적자 홍콩달러 268만 불 중 60여 %인 170여만 불을 98학년도 중에 만회하였고, 나머지 97여만 불도 99학년도에 전액 만회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또한, 한국학원도 학급 수 및 교과 과정 조정을 통한 운영의 합리화를 통하여 정상적인 운영을 했다.


2. 한국 해군 함정 대청호, 서울호 홍콩 입항


1998년 11월, 43년 만에 홍콩을 방문한 한국 해군 순항 훈련함에서의 기념식 광경우리 해군 순항 훈련함이 98년 11월 2일 아침 홍콩을 공식 방문하였다. 9,180톤의 보급함인 대청함과 1,889t의 전투함인 서울함이 120여 명의 해군사관학교 생도 등 477명의 장병을 태우고 빅토리아항에 입항하였다. 우리 해군 순양함은 1955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홍콩의 중국 반환 후의 첫 공식 방문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영식은 입항 당일 대청함 상에서 한인회장과 국정감사 차 내향 중인 박관용, 박철언 국회의원과 한국국제학교 교사와 중"고등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11월 3일 밤에는 함대장이 400여 명의 교민과 외빈을 초청하여 푸짐한 한국 음식과 6인조 컴보 밴드로 즐거운 한때를 마련하여 경제난 속에 의기소침한 동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홍콩한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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