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세월 같았던 인생길이 화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믿고 싶다. 앞으로 남은 인생 여정을 어떻게 값지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해봐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나의 생활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든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만 빨리 달려가는 것을 중요시했던 나의 삶의 방식을 조용히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황혼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코로나 팬데믹 발생 전 3대가 같이 여행갔을때
필자의 사위가 찍어준 가족사진
제일 먼저는 가족인 것 같다. 가족 중에서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 부부 중심의 삶으로 환경이 변한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들이 각자 집 열쇠를 들고 다닐 때에도 가장인 나만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가끔 새벽에 귀가할 때도 잠꾸러기 아내가 항상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던 고집스럽고 가부장적인 사고의 남편이었다. 젊은 시절에 아내에게 황제같이 행동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아내를 여왕 마마처럼 대해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느덧 후환이 두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 딸과 손주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어린 손주들과의 생활도 새로운 기쁨을 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손주 사진을 돌려보며 자랑을 하려면 밥을 사야한다’는 규칙까지 만들었으니 나도 손주 바보 대열에 끼어들었다고 본다.
두 번째는 가까운 주위에 더불어 취미생활을 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몇명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가까이에 있음을 행운으로 생각하는 시기가 되었다. 혼자 외로이 살며 지내는“부자 인생”보다 남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 진정 행복한 것임을 요즘 날마다 실감하고 있다.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남에게 베푸는 삶이 제일 값진 인생이라는 것을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냄비나 후라이팬 등 주방용품을 지역사회의 여러 봉사단체에 꾸준히 후원하거나 주변 친구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하면서 30여 년을 살아왔다.
▲ 홍콩 직장인들에게 야간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필자의 아내
▲ Baptist University 평생교육원의 한국어과정 우수졸업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필자의 아내
▲ 아내가 집에 초대한 한국어과정 학생들을 대접하고 있는 필자(제일 왼쪽)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나의 아내는 홍콩에서 젊은시절에 재능기부를 많이 하고 살았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년 동안 홍콩 Baptist University 평생교육원에서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에 한국어를 가르쳤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재능기부를 위해 열심히 한국어 교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아내는 언제나 기초과정을 마친 홍콩 학생들을 집에 초대하여 손수 만든 한국 음식을 대접하며 그동안 배운 간단한 한국말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2002년에는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홍콩한인여성회에서 '중국어교실'을 열어 6년 동안 재능기부를 하였다. 2003년 사스때도 위험을 무릅쓰고 학구적인 한국 엄마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다행히도 아내는 본인이 재능기부 활동을 쉬지 않고 오랫동안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불평없이 옆에서 도왔던 남편의 외조 덕(?)이라고 여기고 있다. 현재는 Balzano 브랜드 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내는 여러 단체에 장학금 등 소액의 기부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사회 환원을 위한 기부금의 경우에는 액수가 적더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 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에서 관광중인 필자와 손녀들
마지막으로는, 나는 사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황혼기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뭐든지 배우는 자세로 살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요즘은 혼자 집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유행가를 연습하며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현재 하고있는 운동의 잘못된 자세도 교정하려고 유튜브도 열심히 보고, 연습장에 가서 실습도 해본다.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남을 돌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고 본다.
내가 태어난 곳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가니 내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해외동포의 한사람으로서 조국이 침략을 받으면 즉시 귀국하여 이 한 몸을 바칠 각오도 하고 있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하늘나라로 갈 때 후회 없는 인생이 되려고 오늘도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위클리홍콩을 통해서 연재해왔던 '생활칼럼'을 졸필임에도 구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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