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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Park의 교육칼럼] 비밀의 언어, 흠모의 언어 한국어
  • 위클리홍콩
  • 등록 2022-11-25 10: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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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어, 흠모의 언어 한국어>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는 하셨다. 일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두 분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두 분의 얼굴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자식들이 들어서는 안 될 자식들에 대한 불평불만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흉이 아니었을까 싶다.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글과 우리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일제 강점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우리 부모들로서는 강제적으로 배웠던 일본어가 두 사람 사이의 비밀의 언어가 된 셈이었다. 


며칠 전 몽콕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 중 2명은 한국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지 한국 음식점을 예약해 놓았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그동안 밀렸던 안부들을 서로 묻느라 주문이 한참 늦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학생들을 위해 나는 한국 젤리를 준비했고, 게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젤리를 선점하도록 하게 했다. 두 손을 이용한 ‘가위 바위 보, 하나 빼기’ 게임의 규칙을 설명해주고, 게임을 진행했다. 일차원적인 ‘가위 바위 보’ 게임이 아니라 두 손을 이용한 이차원적인 게임인지라 처음에는 헷갈려 하더니 곧 익숙해져서 웃음보가 터졌다. 

 

 

 

한바탕 웃음을 정리하고 일행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음식을 주문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를 먹어볼 수 있는 세트 메뉴를 고른 후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본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A는 옆자리 동료가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상사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거나 동료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할 때 한국어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인가? 일본계 회사에서 홍콩 사람 둘이서 한국어로 비밀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간단한 욕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도 했다. 주변 동료들은 이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척 궁금해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처럼 대화의 내용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최근에 직장을 옮긴 B도 A의 경험담에 동조를 했다. 일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게 된 B는 직장 내 동료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곤 했었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나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였던 B는 메모지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그때그때 짧게나마 한국어로 적었다고 했다. ‘짜증나’, ‘미쳤어’, ‘뭐야?’ 이런 비밀스러운 감정 표현을 혼자만 즐기면서 상대방과의 갈등을 키우지 않는 현명한 해결 방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했을 때 그 목적과 동기가 각자 다르겠지만, 한국어가 상대방과 나만의 혹은 내 감정을 아무도 모르게 표현하는 비밀의 언어로서 기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 홍콩에서 한국어는 비밀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흠모의 언어가 아닐까 싶다. 몇 달 전 지인이 사무실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시기에는 방문하는 손님과 사무실에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던 즈음이었기에 우리는 사무실 근처 차찬탱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홍콩식의 파인애플번과 밀크티를 주문하였다. 


그런데 곧 이어 우리가 앉아 있는 탁자 앞으로 젊은 청년이 오더니 갑자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국 사람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는 계산서를 올려 놓았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우리는 동시에 그 청년을 쳐다보았다. 적게는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청년은 그 차찬탱 이름이 적힌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일행과 나는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청년을 향해 엄지척을 해줬다. 그 청년이 무안하지 않게. 


사실 그 청년의 목소리는 무척 떨려 있었고 ‘저는 중국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마무리하는 데에 시간이 다소 걸렸다. 두 가지 요소로 보아, 그 청년이 지금 한국어를 처음 배우고 있거나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앞자리 지인에게 내 의견을 전달했다. 더불어 그 청년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도해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고, 해당 언어의 모국어 화자에게 다짜고짜 접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청년의 마음 속에는 외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그 언어를 사용해보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에게 한국어는 흠모의 언어였던 것이다. 

 

 

 

이러한 갈망은 비단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가의 개인적 취향이 그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있다. 한국 식당을 예로 들자면, 홍콩 사람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이 더러는 있지만 이 기업은 한국 식당 운영에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한국 식당이야?’라면서 음식의 깊이와 한국어 메뉴판의 탈·오자를 굳이 짚어내곤 했다. 그렇지만 이 기업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운영을 지속했고 급기야는 프리미엄급 한국 식당을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그 상호명은 기실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은 어휘이다. 간판명을 보는 순간, 해당 기업이 저 어휘를 선택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의 음식 문화, 한국어를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개인이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그들의 수용 태도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훈훈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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