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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코치에게서 온 편지 (26) - 변태여, 이제는 안녕!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10-20 13:47:58
  • 수정 2016-12-21 18: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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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나의 살던 고향은   사실 꽃피는 산골은 아니었습니다.  살기 편하고 교통이 좋은 동네였습니다. ..
[제52호]

나의 살던 고향은
  사실 꽃피는 산골은 아니었습니다.  살기 편하고 교통이 좋은 동네였습니다.  대학교를 포함한 중·고등학교들이 몰려있다시피 많아서 그 동네에서 태어난 애들은 유치원부터 최종 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구역내를 벗어날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에서 백 미터를 죽어라 달리던 친구와 고등학교 체력장 연습할 때 죽어라 옆에서 달리는 친구가 같은 곳도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동네엔 없는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카페 골목, 재래시장과 쇼핑의 거리, 그 시절 귀하던 놀이공원에 한술 더 떠서 꽤나 경쟁력 있는 홍등가까지 갖춘 ONE STOP SHOPPING & ENTERTAINMENT DISTRICT, 바로 그 곳이 나의 살던 고향입니다.

  들썩이는 동네 분위기 탓인지, 나름대로 '우범지대'라 불리는 장소들이 있었고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간판도 거리마다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볼거리 많은 동네에 살다보니 가방 무거운 등하교길이 힘들고 지루하기는커녕 너무 짧아서 아쉬운 날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같은 길을 오가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됩니다.  토요일 오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발 앞에 최루탄이 떨어져 사경을 헤매기도 하고, 분식집에서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을 마주치는가하면 학생 주임의 레이다망을 용케 벗어난 미팅 현장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등하교 길에 생기는 일들 가운데 특히 여학생들에게 불쾌한 일은 성희롱이었습니다.  갑자기 책가방을 들고 가는 순진한 아이의 엉덩이나 심한 경우는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서있을 자리도 많은 버스에서 굳이 붙어 서서 가려운 데를 비벼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만도 귀찮은데 집으로 전화까지 걸어옵니다.  워낙 우범지대를 오가며 단련이 된 저에게 언제부턴가 같은 사람이 비슷한 시간에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식구들이 받으면 끊어버리고 제가 받으면 이런 말을 합니다.

나 : 여보세요
남자 : 얘, 너 남자  본 적 있니?
나 : (반말로) 아니, 없다, 왜?
남자 : 보여줄까?
엄마 : 누구 전환데 그래? 누구야?
나 : (수화기를 가리지 않고) 어, 나보고 남자 본 적
        있느냐고 또 물어보는데?
엄마 : 너, 전화 당장 끊어버리지 못해!!!!!

차라리 때려주면 속은 편하지
  사실인지 어떤지 의학적 증거는 없지만 그런 부류의 남자들은 무조건 싸잡아 '성병환자'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성병환자'들을 가장 자주 마주쳤던 시기는 중학교 때였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는 뽀송뽀송한 여학생들이 넘쳐나는 길목에 그들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학생1 : 아침부터 짜증나게 마주친 거 있지?
여학생2 : 일곱 시 십오 분쯤에 자전거 타는 남자 아니니?
여학생1 : 맞아, 자전거만 타는 줄 아니? 맥주병까지
                들고 있더라.
여학생3 : 어? 내가 본 사람은 소주병이던데 그건 또    
                그 놈인가?
  여학생들의 아침 대화치곤 정숙한 맛이 없긴 하지만,
좋든 싫든 어차피 일어나는 그런 일들도 그 시절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한 부분이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불평 몇 마디하고 나면 잊어버리는 친구도 있고, 매점에 가서 우동 두 그릇 사먹는 걸로 마음을 달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어른보다 힘이 센 저는 주로 폭력으로 맞서는 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누군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반응을 보여주는 게
당연하게 생각돼서 버스든 길거리든 장소와 체면을 가리지 않고 맷돌 같은 책가방을 무기삼아 휘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쌓인 화를 풀어버리면 괜찮겠지만 다들 그런 성격을 타고난 것은 아닌지라 이도저도 못하고 혼자 앓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검붉은 색에 가까운 낯빛으로 학교에 왔습니다.  우리들이 말을 시켜도 대꾸를 못하고, 오는 길에 한바탕 울었는지 얼룩덜룩한 표정으로 교실에 걸린 태극기만 노려보던 그 친구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책상을 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어떤 하반신 노출자가 아침마다 그 친구 앞에 별안간 나타나 학교까지 당당하게 따라온 지가 일주일이 넘었다고 합니다.

친구1 : 얘, 걱정하지 마. 내일 아침부터 뭉쳐서 단체로
            다니자.
친구2 : 그러자, 우리가 여럿이면 자기도 어쩔 수 없겠지.
친구3 : 얘, 제발 그만 좀 울어라. 이따 끝나고 신당동 떡볶이 사줄게.
그친구 : 고오마워어어, 흑흑 우리 기왕 가는 김에  DJ있는 원조 할머니네로 가자, 엉?

/다음 주에 계속

라이프 코치 이한미(2647 8703)
veronica@coaching-zone.com
www.coaching-zone.com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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