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1호]
집에 돌아오니 집안은 어제 밤 그대로 엉망진창인 채 있었고 로이다는 계속 자고 있었다. 진호가 병원으로..
[제51호]
집에 돌아오니 집안은 어제 밤 그대로 엉망진창인 채 있었고 로이다는 계속 자고 있었다. 진호가 병원으로 업혀가기 전까지 집안에서 그렇게 난리를 치며 토하고 울고 기침을 해대도 우리 로이다는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네 애니 너네들이 돌봐라' 라는 마음에선지 제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않았다. 아무리 제 업무 시간이 끝난 늦은 밤이라 해도 집안이 비상사태면 나와서 상황이라도 살펴야 하고, 토 물질들을 치워줘야 우리도 덜 부산하게 애를 돌볼 텐데 그녀는 그렇게 계속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바로 전의 다른 메이드들도 그렇고 넬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아무리 그녀의 성질이 사납고 자존심이 강해도 아이가 밤에 열나고 아프면 같이 나와 걱정해주고 물수건 대주며 괜찮을 거라며 위안이라도 해주곤 했는데, 여기서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통하는지 자꾸자꾸 이전의 메이드들이 그리웠다.
진호는 병원에 다녀온 후 약을 먹고 잠이 들었고, 우리는 잠 한 숨 못자 눈이 벌건 채 아침을 맞았다. 로이다가 일어나 굿모닝 맘, 썰, 하는데 와락 밉살스러운 마음이 치밀어 올라왔다. 진호가 깨면 아무것도 넣지 않고 흰 죽을 쒀서 단무지와 함께 먹이도록 그녀에게 일렀다. 기름기가 있거나 소화하기 힘든 딱딱한 음식은 피하라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어 시간 지나니 진호와 서진이가 깼다. 로이다는 죽 두 그릇을 퍼가지고 와서 "서진아 아침먹어"라고 외친 후 진호에게 다가가 죽 먹자고, 이거 먹어야 건강해서 영준이하고 연우하고 놀 수 있다고 얼렀다. 쌀이 들어가면 어떤 것이든 좋아해서 별명이 밥돌이인 진호가 죽을 한 입 먹어본 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버텼다. 아프더니 어리광이 늘었나 싶어 지친 몸을 일으켜 내가 먹이마고 죽 그릇을 받아들었다. 아니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흰죽이 아니라 노란죽이 되어 있었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흰죽을 쑤라고 일렀건만 수북한 건더기는 또 웬 말인가? 수저로 휘휘 저으며 살펴보니 단무지를 깍둑깍둑 썰어 넣은 것이었다.
"로이다 너, 아무것도 넣지 않고 흰 죽 끓이라고 했잖아. 근데 여기다 뭘 넣은 거야?"
"맘이 흰 죽 끓여서 단무지하고 주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단무지 넣어 흰죽 끓였는데요. 결과는 마찬가지잖아요"
"허 그래? 그럼 너 이 죽이 무슨 맛이 나는지 알어?"
"모르겠는데요 맘"
"얼마나 끓였는데?"
"저녁까지 먹게 한 냄비 가득 끓였는데요 맘"
"헉, 그래 로이다. 저런 단무지 죽을 하루 종일 먹을 만큼 비위 강한 사람은 너 빼고는 하나도 없을 테니 너 혼자 다 먹어"
로이다에게 죽을 한 수저 떠먹어 보라고 했더니 저도 그 맛이 영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단무지 죽이라... 여러분들도 한 번 상상해 보시라. 노오란 단무지죽의 요상스러운 맛을. 닝닝 찝찌름, 들척달척, 무에서 우러난 씁쓸한 맛까지....
로이다와 한참동안 얼토당토않은 단무지죽을 가지고 부엌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우리 서진이. 그 이상스런 맛의 단무지죽을 한 톨도 안 남기고 싹싹 다 쓸어 먹었다. 세상에 어쩜 저럴수가.
"서진아 너 그거 다 먹었니?"
"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먹었어? 맛이 이상하지 않던?"
"예, 이상해요"
"근데 어케 그걸 다 먹어?"
"엄마가 먹는 건 남기지 말고, 이것저것 다 먹으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다 먹었어요"
"푸하하하하. 대단한 서진, 장하다 서진!! 그래그래, 그렇게만 살아다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로이다가 다시 자신감을 찾았는지 생글거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자기보다 비위가 강한 서진이 같은 애가 있다 이거다.
진호는 은근히 맛과 음식을 가리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엄청 먹어댄다. 서진이는 많이 먹지는 않으나 이것저것 안 가리고 잘 먹는다. 오죽하면 그 이상스런 단무지죽까지 싹싹 다 긁어 먹을까.... 전쟁이 나면 나 다음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사람이 아닌가 싶다. ^^
안마 받는 메이드
진호가 건강을 되찾고 몇 주가 지난 어느 주일 오후, 우리가족 4명은 쿤통 팩토리아울렛으로 운동복과 신발을 사러 갔다. 쿤통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 공장들의 어두컴컴하고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공장지대 근처를 지나가는 일은 사실 그다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큰 맘 먹고 찾아들어간 그곳 역시 다른 공장들과 마찬
가지로 40년은 된 듯한 노후한 빌딩인데다 컴컴하고 또 퀘퀘한 냄새까지 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엘리베
이터는 또 어땠는지, 정말 가관이었다. 육중하고 시커먼 철문을 잡아당겨 열고나면 철 울타리같이 생긴 안의 문이 또 하나 있다.
미닫이 형인데 이게 잘 못 닫히면 올라가지도 않고 무작정 서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다 중간층에 설 때마다 쿵 하고서면, 철커덩 하는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저 아래 밑바닥으로 뚝 떨어질 것 같은 충격과 공포가 밀려왔다. 겨우 7층을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나절이나 걸려 우리는 그새 괴물 같은 엘리베이터에 이력이 붙었다.
엘리베이터가 쿵 하고 서면 나와 아이들은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라도 탄 듯한 기분을 느끼며 큭큭, 킬킬, 깔깔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장시간동안 엘리베이터 여행을 한 후 아울렛에 도착했다. 스포츠용품 아울렛 매장 안에는 각종 브랜드의 신발, 운동복, 운동용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것저것 헐값에 주어들고 계산을 하던 중 계산대 옆에 있는 요상하게 생긴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손잡이 부분에 배터리를 넣으면 우두두두 떨면서 바퀴가 돌아가서 안마를 해 주는 기계였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살아서 어깨가 있는 대로 굳은 내게는 안성맞춤인지라 얼씨구나 하고 사들고 들어왔다.
무슨 물건이든 그렇지만 처음에는 호기심에 열심히 사용하다 시들해 지듯, 어깨가 결리거나 심심하면 남편더러 쓱싹쓱싹 안마 좀 해달라고 시켜 놓고 신선놀음(?) 하다가 그 놀이도 싫증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드와 아이들이 다들 방으로 들어가 조용하기에 따라 들어가 봤다. 서진이와 진호가 배터리도 없는 그 안마기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쓱쓱 굴려가며 메이드의 목 부분부터 엉치 아래에 이르기까지 아주 열심히 안마를 해주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들어서 인기척을 내자 서진이와 진호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안티가 무지 시원해 하다고 했다면서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온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나보다. 떡하니 누워 좋다고 크윽크윽 웃어대는 우리 메이드의 철딱서니 없음에 화가 났지만,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네들이 좋다고 하는 일인데 버럭 화를 낼 일도 아니지 않은가. 복잡한 심경을 누르고, '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인데 왜 네가 사용하냐'며 빼앗아 장롱 깊숙이 처박아 두었다.
엊그제 침사초이 쇼핑상가를 지나다 그것과 너무 흡사하게 생긴 안마기를 보고 안마 받던 메이드 생각이 나서 푹-하고 웃음이 나왔다.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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