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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홍콩 생활] 홍콩인의 노스탈지아, 수탉 그릇
  • 위클리홍콩
  • 등록 2022-03-08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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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개미지옥처럼 헤어나올 수 없다는 수집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그릇이다. 그릇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순식간에 내 통장이 ‘텅~장’이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나도 한때 그릇 욕심을 부렸던 때가 있었다. 길 가다가도 그릇 파는 곳이 보이면 꼭 들려야 했고, 어디서 창고 세일한다고 하면 먼 외곽에 처음 들어본 지역까지 가서 그릇을 쓸어 온 적이 있다. 

 

한때 홍콩 감성이 물씬 나는 그릇도 사 모은 적이 있다. 가장 처음 샀던 그릇이 스탠리 마켓 가게 한구석에 겹겹이 쌓여있던 그릇더미 속에서 수탉 그림이 그려진 접시였다. 수탉 그릇은 꼭 홍콩이 아니더라도 동남아시아 국가를 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홍콩 영화에서도 종종 수탉이 그려진 밥그릇을 한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면 치기를 하는 장면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주성치의 영화에서 수탉 그릇이 자주 등장한다.


수탉 그릇의 시초를 찾아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이다. 약 백 년 전, 광둥성 지역에 거주하던 객가(Hakka)인들이 처음 수탉 그릇을 만들었다고 한다. 흰색 자기에 붉은 몸통과 검은 꼬리의 수탉, 붉은 작약꽃, 초록 바나나잎이 그려진 그릇들이 대표적인 디자인이며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릇의 크기와 도안이 약간씩 달랐다.



닭을 그릇에 그리게 된 배경에는 객가 방언으로 닭을 뜻하는 ‘鸡(계)’와 집 또는 가정을 뜻하는 ‘家(가)’의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닭은 가정과 풍요를 상징했고, 작약꽃은 부와 번영,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으며, 바나나잎은 행운을 뜻했다. 그래서 과거 객가인들은 수탉 그릇에 밥을 먹으면 가정에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암탉이 아닌 수탉을 그린 이유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 때문에 수탉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설에 의하면,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과거의 객가인 부모들은 아들을 위해 수탉 그릇에 아들의 이름이나 고유의 표식을 새겼다. 향후 아들이 죽었을 때 사후세계에서 이 그릇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 수탉 그릇을 만든 건 광둥성 객가인이지만, 오늘날 수탉 그릇이 동남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지게 한 것은 태국에 살던 객가인들 덕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태국에 살던 객가 출신 중국 상인들이 저렴한 가격 때문에 수탉 그릇을 대량 주문했다. 중일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에는 생산이 중단되면서 수탉 그릇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이후 1955년에 객가 출신 이민자가 태국 람팡(Lampang)에 수탉 그릇 제조공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랑팜 공장은 지금도 유일한 수탉 그릇 제조공장이다.

 

1960년대에는 저렴한 가격, 내구성, 적당한 두께감 때문에 수탉 그릇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밥그릇 위쪽이 살짝 곡선이 져서, 밥그릇을 들어 입 가까이 대고 젓가락으로 밥알을 쓸어담아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에도 딱 들여맞았다. 또한 가격이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중산층들은 상류층들이 사용하던 용과 봉황이 그려진 비싼 그릇 대신 수탉 그릇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수탉 그릇이 대량 생산되면서 상업적 가치가 떨어졌고, 자기가 아닌 플라스틱 이미테이션 수탉 그릇도 많아졌다. 이미테이션이든 플라스틱이든, 수탉 그릇은 홍콩인들과 해외에 살고 있는 광둥성 화교들에게 노스탈지아(nostalgia)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아이템임은 확실하다. 


< 2주 후, [홍콩 생활 필수템, 옥토퍼스 카드의 역사]가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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